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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잃어 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인도, 러시아인도, 일본인도 아닌 무국적자가 되어 낯선 땅, 낯선 하늘에서 조국과 부모 형제를 그리다 끝끝내 망향의 넋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사할린 동포들입니다.

지난 6월 사할린에 다녀왔습니다. 사할린 동포들의 지난하고 한스러운 삶을 보고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현재 사할린에는 3천 명이 넘는 1세대 동포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일제의 징용에 의해 사할린으로 끌려가신 분들입니다. 나라 없는 서러움을 안고 등 떠밀려 조국을 떠나와야 했던 분들입니다.

그러나 조국의 해방이 동포들의 서러움과 골수에 맺힌 한을 풀어주지 못했습니다. 해방 이후 사할린이 소련으로 편입되어 버리자 돌아갈 조국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일본과 소련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사할린 동포들은 조선 출신의 무국적자들이라는 이유로 논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것입니다.

일본은 사할린에 거주했던 일본인만을 귀국시키고 정작 그들의 필요로 조국을 떠나야했던 우리 동포들은 내팽개쳐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해방된 조국이 사할린에 남겨진 동포들을 감싸 안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조국은 이미 해방되었지만 그들에겐 돌아갈 조국이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동포들의 가슴에 더 크게 남겨진 상처는 일본의 만행보다 자신들을 외면한 조국의 냉담함이었습니다. 그렇게 버림 받고 잊혀지면서 60년을 살아왔습니다.

동포들의 한스러운 세월을 듣노라니 부끄러움으로 감히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동포들이 살아왔던 신산한 삶 앞에 마치 법정에 선 죄인처럼 제 고개는 수그려졌습니다. 고개 숙인 두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그 눈물마저도 죄스럽기만 했습니다. 싹조르스크 탄광촌을 방문했을 때 한 할머니가 제 손을 잡고 항변하듯 주신 말씀이 가슴을 찌릅니다.

"자식이 깡패에게 맞아 상처를 입었으면 그 깡패를 찾아가기 전에 먼저 내 새끼의 상처에 간장이든 된장이든 약부터 바르는 것이 어미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우리 조국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조국은 우리를 모르는 자식이라 내쳐 밀었어요."

끝내 울음으로 변한 할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정치권이, 바로 아이를 버린 비정한 부모였다는 생각에 죄스러움으로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고개만 주억거렸습니다.

냉전체제가 와해되고 소련이 무너지면서 1989년부터 한인동포 1세대들의 모국 방문 행사가 시작되었고, 1994년 사할린 동포들의 영주귀국사업에 대한 한일간 합의로 안산 고향마을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는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이 사할린 동포들의 가슴에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영주귀국시설 건립비용을 일본이 제공한 자금에 의존한 결과 현 시점에서 영주 귀국을 희망하는 사할린 1세대 동포들이 귀국할 수 있는 방법은 안산 고향마을에 빈 방이 생기는 것뿐입니다. 더구나 어렵게 모국으로 돌아오게 된 분들도 자식들과의 동반 귀국이 허용되지 않아 또 한 번의 이산가족이 되어 두 내외만이, 심지어 홀몸으로 남은 여생을 조국에서 보내야 하는 처지입니다.

사할린 동포의 국내 교류가 15년을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사할린 동포들과 관련된 법률과 제도가 체계적으로 마련되지 못한 채 외교통상부의 '사할린 교포 영주귀국 업무처리지침'에 의해서 영주귀국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8일 저는 사할린 동포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국가차원에서 해결하고자 '사할린 동포 귀국촉진 및 정착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위한 입법공청회를 가졌습니다.

주요 내용은 ▲ 사할린 동포의 영주 귀국, 국내정착 및 생활지원 등을 대한민국 정부의 의무로 규정하고 ▲ 영주 귀국 대상을 사할린동포 1세 및 그 직계비속 1가족으로 하며 ▲ 국무총리 산하에 '사할린동포 지원위원회'를 신설하고 ▲ 사할린 잔류를 희망하는 동포들에 대한 지원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강구할 것 등입니다. 그날 공청회장을 찾아주신 사할린 동포들은 이제야 평생의 한이 풀릴 수 있게 됐다며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아직까지 귀국을 희망하는 수많은 1세대 동포들이 조국이 손 내밀어 주기만 기다리며 힘겹게 세월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 분들 대부분은 연로하신 분들입니다. 이제 정부는 더 이상 동포들을 버려두어선 안 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고향 땅에서 보낼 수 있도록 한시라도 빨리 조국으로 모셔 와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무관심과 냉대를 반성하는 자세로 정부도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입니다. 그것은 식민의 고통을 온 몸으로 감당해 오신 동포들에게 우리가 누려온 조국해방의 감격과 경제발전의 성과를 조금이나마 나누어드리는 일일 것입니다.

공청회가 끝나고 의원회관으로 돌아오면서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고 눈에 밟히던 싹조르스크 탄광촌 할머니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조국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리듯 울려옵니다. 이제 시작의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고 험합니다. 싹조르스크 탄광촌 할머니와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타 정치웹진에도 함께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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