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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나의 세탁소> 겉그림
<아름다운 나의 세탁소> 겉그림 ⓒ 리즈앤북
최근 들어 이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교육 환경도 좋고 넉넉한 생활도 즐길 수 있는 곳을 찾아 해외로 떠난다. 그만큼 복지형 이민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계형 이민이 다수였다.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무작정 떠났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때만 해도 여유롭지 못한 시절이라 많이 힘들었다. 영주권이 나오기 전까지 신변 문제 때문에 전전긍긍해야 했다. 허드렛일을 하는 일터에서 숙식도 해결해야 했다. 유색인종이라며 무시하는 사회적 모멸도 참아내야 했다. 모든 여유도 접고 죽자 살자 그저 돈 모으는 데 온 힘을 쏟을 뿐이었다.

그토록 힘든 터널을 지나면 서서히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한다. 세를 내는 집이 아니라 떳떳한 자기 집을 갖게 됐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자녀들도 웬만한 좋은 대학에 다니게 된다. 차도 좋은 걸로 사고 틈틈이 여행도 다닌다. 가끔씩 한국에 들어왔다 나갈 여유도 얻게 된다.

하지만 이런 꿈은 길바닥에 깔려 있는 낙엽을 줍듯 쉬운 일만은 아니다. 설령 그런 꿈을 이뤄냈다 하더라도 물질적인 노예에 빠져 있는 이들이 한둘이 아닌 듯하다. 한평생 물질만을 위해 살다가 훗날 정신적인 궁핍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익명이 보장돼 있으니 살림이 안정권에 접어들면 도박과 마약이라는 족쇄에서 빠져드는 일도 흔한 듯하다.

그럼 이민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까? 모범 답안이야 없겠지만 참고할만한 책도 없는 것은 아니다. 양대석님이 쓴 <아름다운 나의 세탁소>(리즈앤북·2005)는 이민 생활에 따른 실제적인 이야기들을 엮어내고 있다. 언론인 출신인 그가 이민생활을 시작하며 어떻게 세탁업에 뛰어들게 됐는지, 그 일을 하며 다른 인종과 또 어떻게 어울리며 사는지, 이민생활 속에서 겪는 고통과 위험들은 무엇인지를 담고 있다.

"미국에 와서 얼마 안 돼 내가 세탁소를 차린다고 하니 많은 사람이 의아해 했다. 한국에서 대학도 나오고 미국에서도 한인 커뮤니티 언론사에 있다가 웬 뚱딴지같은 변신이냐는 것이다. 한국의 가족들은 영문도 모른 채 내가 선택한 일이니 반대는 못했지만 못마땅하다는 눈치가 역력했다."(102쪽)

사실 그는 미국 내 한인 사회에서 언론 기자였다. 이민사회에서 이른바 대우 받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때에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선배가 빨래방을 꾸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됐고, 거기에 도전을 받아 세탁업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물론 세탁업을 직접 차린 것은 아니었다. 그전부터 운영해 오던 것을 인수한 것뿐이었다. 그래도 그것을 인수하는 데에는 우리 돈으로 2억 5천이 넘게 들었다. 이민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에게, 그것도 집도 자기 것이 아닌 사람에게 2억 5천은 실로 큰 돈이었다. 다행히 한국에서 5천만 원을 끌어올 수 있었고, 나머지 돈은 '전 주인 융자 방식'(오너 파이낸싱)으로 은행에서 빚을 얻고서야 그 가게를 인수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일을 시작하면서 그는 첫날부터 개혁에 들어갔다. 그 전까지 일해 오던 사람 셋을 두지 않고서 직접 자질구레한 일을 해 나갔고, 쓰레기통 숫자도 절반으로 줄였고, 이전에는 없던 음악기기 주크박스도 들여 놓아 휴식처로 만들어 나갔다.

다행히 지역 주민들이 보내는 반응은 참 좋았다. 이전보다도 더 많은 일감들을 맡겼고, 그때마다 손님 한 분 한 분의 옷을 정성스레 매만졌고, 생전 처음 해 보는 일에도 모든 정성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그러자 2년이 지나면서 1억 5천이라는 빚을 갚게 됐고, 나머지 1억은 10년 상환으로 갚을 일만 남았다고 한다. 그 사이 집도 장만하고, 자녀들도 대학에 들어가는 등 조그마한 행복도 조금씩 쌓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다보니 그 조그마한 행복을 맛보기까지는 무려 10년이 걸린 듯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가족들과 함께 많은 고통과 위험을 겪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남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외로움, 외국인들이 자녀들의 이름을 부를 때 겪는 잦은 놀림들, 세탁소에 찾아 든 강도떼로부터 당하는 위협, 세탁물 속에서 튀어나오는 마약과 총기류 때문에 겪어야 하는 갈등 등은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민생활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나름대로 깨달은 교훈들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한국에서 누렸던 학력과 경력 때문에 육체노동 같은 일을 기피하려 한다면 하루하루가 고통뿐이라는 것. 집을 얻거나 돈을 꾸려고 할 때는 과감하게 모기지 이자 상환 방식 같은 각종 융자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할 것. 사업을 하려면 대도시를 찾기보다는 경쟁이 적은 중소도시를 찾아 시작할 것. 다른 유색인종과도 묵묵히 참아내며 그들의 쓴 소리도 다 받아 줄 것.

그밖에도 많이 있는데, 정말로 소중한 깨달음 하나가 있다. 그것은 살림이 안정기에 찾아오는 갖가지 유혹들로, 그것을 뿌리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도 애써 돈을 벌어, 자녀들까지 안정이 되다보면 어느새 마약과 도박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고 한다. 그것을 한 번 두 번 즐기다 보면 이슬비에 옷이 젖듯 어느새 중독이 되고, 가정과 경제는 순식간에 파단이 난다는 것이다.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이 도박의 덫에 걸리면 가족은 서서히 금이 가 버리는 것이다. 주로 소매업에 종사하는 한인들은 매일 현금을 만진다. 이 현금을 들고 남편이나 아내가 애틀랜틱시티에 놀러갔다가 돌아올 자동차 연료를 살 돈조차 날려 버려 그냥 그곳에 주저앉았다는 이야기도 부지기수다."(157)

아무튼 그것을 뿌리치지 못하면, 이제껏 힘들게 쌓아 올린 아메리칸 드림은 한낱 모래성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그때까지 꿈꾸며 쌓아 올린 그 꿈은 일장춘몽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탁업을 꾸리며, 주위에서 자신만의 꿈을 이루려다 잘 성취한 사람도 많지만 그렇지 못하고 패가망신한 사람들을 종종 보았던 그가, 이민 생활을 꿈꾸며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진지하게 이야기 하고 있는지 귀담아 들어야 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이민생활의 참 교훈서로서, 이민생활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이 책을 꼭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름다운 나의 세탁소

양대석 지음, 리즈앤북(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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