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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동양면에서 왔다는 김향선(58) 아줌마. 얘길 맛나게도 잘 하시더니 포즈 부탁엔 표정이 영 안풀셨다가 촬영이 끝나자 활짝 웃으셨다.
진안 동양면에서 왔다는 김향선(58) 아줌마. 얘길 맛나게도 잘 하시더니 포즈 부탁엔 표정이 영 안풀셨다가 촬영이 끝나자 활짝 웃으셨다. ⓒ 곽교신
"무시(무)가 무식허게 커버렸당게. 중복에 싱근(심은) 놈이여."

도무지 도회지의 채소 값과 균형이 맞지 않을 만큼 싼데, 그래도 사는 이들은 깎거나 "짜근 놈 한 개 더 얹어보랑게" 하며 흥정이다. 실한 놈 네 개 묶인 한 다발을 샀다. 단돈 5000원.

타히티로 간 고갱이 원색을 즐겼듯이 자연에 묻히면 누구나 원색 취향으로 바뀐다. 농어촌 시장에 울긋불긋 원색 옷이 많은 것을 '촌스럽다'고 하면 그리 말하는 이가 오히려 감각이 촌스러운 사람이다.
타히티로 간 고갱이 원색을 즐겼듯이 자연에 묻히면 누구나 원색 취향으로 바뀐다. 농어촌 시장에 울긋불긋 원색 옷이 많은 것을 '촌스럽다'고 하면 그리 말하는 이가 오히려 감각이 촌스러운 사람이다. ⓒ 곽교신
트럭에 옷가지를 싣고 진안을 비롯해 임실, 장계, 관촌, 금마장을 돈다는 '트럭 사장님'은 이런 재래 시장을 잘 홍보해 달라고 하면서도 얼굴은 찍지 말란다. 매상이 나날이 떨어진다고 걱정하면서도 "지금보다야 더 나빠지겠냐"며 웃는다. 아마 이 땅의 필부 필부들은 조선 고려 삼국시대부터도 '지금보다야 더 나빠지겠냐'면서 집권자에게 희망을 걸고 웃으며 산 착한 백성들이었으리라.

산에서 "실헌 놈"을 만나 땄다는 오갈피. 왼쪽은 서울선 보기 힘든 '고소'라는 채소. 특이한 향에 못먹는 이도 많지만 "한 번 그 맛에 익어뿔면 마약이랑게요" 한다.
산에서 "실헌 놈"을 만나 땄다는 오갈피. 왼쪽은 서울선 보기 힘든 '고소'라는 채소. 특이한 향에 못먹는 이도 많지만 "한 번 그 맛에 익어뿔면 마약이랑게요" 한다. ⓒ 곽교신
좌판을 벌인 아줌마 동네인 진안군 정천면 마을 뒤 '회꼴산'에서 땄다는 자연산 오갈피는 산에서 만난 듯 싱싱했다. "약장시한테 사면 쬐깐한 소쿠리루 5천원이요, 난 그냥 땄싱게 싸게 파는 것이요, 사씨요!" 하시는데 옆에 있는 '고소'만 한 다발 샀다. 2천원.

사는 이는 점잖게 지팡이로 이 놈 달라 저 놈 달라 가리키고, 아줌마는 열심히 봉지에 담고...
사는 이는 점잖게 지팡이로 이 놈 달라 저 놈 달라 가리키고, 아줌마는 열심히 봉지에 담고... ⓒ 곽교신
생선을 이것저것 꽤 많이 사시는 할아버지께 여쭈니 "8대 조부 지앙(기제사) 모실려구" 준비하신단다. 진안군 마령에서 장 보러 나오신 이균상(79) 할아버님. 아들이나 며느리 시키시지 왜 직접 나오셨냐니까 "그래두 내가 봐야허지라"며 표정이 엄숙하시다. 미더덕과 조개를 덤으로 받고도 막걸리 값을 "쬐깐히" 빼달라고 하셨지만, 아줌마는 생선 값에서 너무 많이 빼드렸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장터에 꼭 있는 철물좌판. 번성하던 옛 시절에 비하면 "심심풀이" 라고.
장터에 꼭 있는 철물좌판. 번성하던 옛 시절에 비하면 "심심풀이" 라고. ⓒ 곽교신
진안장에서 유일하게 남았다는 철물 좌판은 허름한 외양과는 달리 장인이 몸이 안 좋으셔서 사위가 대를 이은 "이래 뵈도 내력이 깊은" 2대째 가업이라고. 기술이 좋아 장을 기다려 5일을 참지 못하고 근처 장계 임실에서도 톱을 벼리러 오는 데 "톱을 재게(날카롭게) 벼려주고 4~5천원을 받으면 기름값은 나온다"며 여유로우시다.

팔려가서 복실이도 되고 흰둥이도 될 강아지들. 모두 6마리가 다 한 배 형제자매라고.
팔려가서 복실이도 되고 흰둥이도 될 강아지들. 모두 6마리가 다 한 배 형제자매라고. ⓒ 곽교신
주인은 "진도개 종자라닝게 그러네" 하다가 기자가 아닌 것 같다고 자꾸 되묻자 "아따, 거 뭣이냐 순종은 안되야도 반종은 된다고 봐야지라, 이-" 하며 사람좋게 웃었다. 하기사 순종 진돗개 사겠다고 이 장터를 기웃거린다면 그 사람이 되려 우습다. 주인 말대로 "이 개새끼덜 에미를 아는디 잘 키워 뿔면 든실허다니께"가 맞다면 그걸로 족하다.

장터엔 뭔 약을 팔던 약장수가 없다면 어딘가 허전하다.
장터엔 뭔 약을 팔던 약장수가 없다면 어딘가 허전하다. ⓒ 곽교신
"쥐새끼 두더지 다 잡아삘구 속 편히 사시요 덜!"을 외치는 약장수는 "똑같은 미제 '나비타'가 쬐깐한 놈 한 병에 16만원인디, 이건 두 봉지에 만원이구. 효과두 훨썩 낫소!" 하며 자신에 찬 얼굴이다. 약장사 죄판이 매상을 올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약효에 관한한 자신감에 넘치는 얼굴 그거 하나면 족하리라.

추억의 뻥튀기도 진안장에 하나 뿐.
추억의 뻥튀기도 진안장에 하나 뿐. ⓒ 곽교신
스스로 개량한 첨단 장비로 편안히 앉아 양 쪽 기계의 불을 지키는 아저씨도 어머니의 가업을 이은 대물림 사업장이다. 이 자리에서만 55년이라고. 4리터 짜리 자동차 엔진 오일 한 통 분량의 옥수수 쌀 등을 튀겨주고 4천원을 받는다. "(뻥튀기 기계) 아가리에 쑤셔 넣기 편한께로" 입구가 네모난 엔진오일 깡통을 쓴다고.

만두 하나 빚는데 대략 평균을 잡아보니 10초 정도. 정상급 숙련공이다.
만두 하나 빚는데 대략 평균을 잡아보니 10초 정도. 정상급 숙련공이다. ⓒ 곽교신
임실, 장계, 장수, 진안 장을 돌며 부부가 함께 장사를 하고 5일 째는 쉰다고. 만두, 찐빵, 도너츠가 종류에 상관없이 무조건 천 원에 네 개. 맛이 아주 깔끔한데 크기도 커서 천 원 어치 이상 먹기가 힘들었다.

국밥 대신 커피.
국밥 대신 커피. ⓒ 곽교신
아무리 다녀도 싸고 맛있는 국밥 좌판이 안 보여 물어보니 국밥은 시장 안 상설 식당에서만 판다고. 대신 촌로들은 커피나 생강차를 나누며 얘기판을 벌였다. 자연히 국밥집에서 막걸리 한 사발 놓고 나누는 회포보다 시간도 짧고 용건은 간략해질 수밖에. 솥을 내걸은 국밥 좌판집과 막걸리 사발이 있었다면 기자도 취재고 뭐고 어울려 보고 싶은 장터였건만, 이 모습은 현대화인가 추억의 상실인가. 종이컵을 든 어르신들의 표정도 뭔가 허전하다.

돌아보니 대체로 마트보다 물건 값이 싸고, 먹거리마다 내 새끼들 먹일 것인 듯 정성을 들인 것이 눈이 그대로 보인다. 우리의 정이 깃든 전통 5일장은 전국 곳곳의 도시 근처에 의외로 많이 살아 있다.

채소값이 금값이라고 연일 뉴스를 듣건만 깨끗하고 싱싱한 채소를 미안하도록 잘 다듬어 마트의 절반 값에 살 수 있는 곳. 팻말에 적힌 정가를 10원까지 정확히 계산해 기계적으로 내고 기계가 토해내는 영수증을 받아오는 곳이 아니라 정을 팔고 사는 곳. 우리의 그리운 시장인 5일장이 아직도 곳곳에서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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