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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버스터미널 앞에 줄줄이 걸려 있는 방폐장 유치 찬성 펼침막
영덕 버스터미널 앞에 줄줄이 걸려 있는 방폐장 유치 찬성 펼침막 ⓒ 조혜진
"신고도 안 했는데 부재자 등록... 투표용지는 이장 손에"

다른 신청지역과 마찬가지로 영덕에서도 허위 부재자신고와 관권개입, 향응제공 등 불법투표운동이 잇달아 접수되고 있다. 지난 10월 25일 서울에서 공무원 개입 사실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던 영덕군 핵폐기장 설치 반대 대책위원회(영덕 반핵대책위)는 "기자회견 이후에도 제보가 계속 접수되고 있다"며 "방폐장 주민투표는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덕 반핵대책위가 허위 부재자신고 등 불법적인 사례를 확인하기 위해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모으고 있다.
영덕 반핵대책위가 허위 부재자신고 등 불법적인 사례를 확인하기 위해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모으고 있다. ⓒ 영덕 반핵대책위
주민들의 증언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 살고 있는 윤모씨는 "일주일 전 이장으로부터 부재자투표를 하라는 전화를 받았는데 그 때 내 투표용지가 이장한테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서 "이장이 투표용지를 집에 갖다 줄테니 영덕을 위해 찬성표를 던져달라는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실을 접수받은 대책위 남정태 조직위원장은 "더 많은 주민들이 본인도 모르게 부재자로 등록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주민투표는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주민투표 부정선거 감시활동을 하고 있는 대책위 권경만 홍보위원장은 "영덕 공무원들은 방폐장 주민투표 절차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정보를 전달하지 않고서 방폐장 유치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며 "심지어 객관적 정보를 전달해야 할 공무원들이 무지한 시골 사람들에게 유치 홍보를 벌이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때가 어느 땐데... 말도 안 되는 소리"

반대 대책위는 또한 찬성 입장을 갖고 있는 지역의 단체나 인사들이 반대측을 공공연히 협박하고 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대책위 한 관계자는 "방폐장에 반대하면 지역 발전을 가로막는 세력"으로 낙인찍어 거의 '관리대상'이 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로 인해 반대측의 논리는 지역에 전혀 전파되지 않고 있다는 게 대책위의 주장.

반대측 농성장이 훼손되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 10월 27일 오전 5시경 영덕군 축산면에 설치돼 있는 반대 대책위 농성장에 술에 취한 2명이 찾아와 천막을 칼로 찢는 일도 벌어졌다. 당시 농성장에서 자고 있던 축산면 대책위 박동필 대표는 "유치측으로 추정되는 2명이 칼을 갖고 와 욕설을 퍼부으며 반대운동을 하지 말라고 위협하더니 결국 농성장 천막을 찢었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해 둔 상태.

이같은 대책위 주장에 대해 찬성 측 입장은 한마디로 "터무니없다"는 반응이다. 범영덕군 방폐장유치위원회 박재화 간사는 "때가 어느 땐데 허위 조작 선거를 할 수 있느냐"면서 "반대 대책위의 주장은 억지주장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영덕군 방폐장 대책반 김명중씨 역시 "반대 측이 제시하고 있는 각종 자료와 '불법 부당행위' 주장은 침소봉대의 전형, 근거 없는 모략에 불과해 대꾸의 소지도 없다"면서 "공무원들이 방폐장 유치활동에 매달릴 여력도 없을 뿐더러 투입된 인력들도 적법한 선에서만 활동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지난 10월 28일 오전 5시경 영덕군 축산면 핵폐기장 반대대책위 농성장에 술에 취한 두 명의 청년이 찾아와 천막을 칼로 찢고 행패를 부렸다. 대책위는 이 사건을 경찰에 의뢰한 상태다.
지난 10월 28일 오전 5시경 영덕군 축산면 핵폐기장 반대대책위 농성장에 술에 취한 두 명의 청년이 찾아와 천막을 칼로 찢고 행패를 부렸다. 대책위는 이 사건을 경찰에 의뢰한 상태다. ⓒ 조혜진
주민투표 이후 더 걱정... 지역 쪼개질라

지역 분위기도 뒤숭숭하다. 주민투표일이 다가오며 고소고발도 잇따르고 있어 자칫 지역 분열로 치닫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영덕 반핵대책위는 그동안 접수된 불법 사례를 증거로 영덕군수에 대해 주민투표법 및 공직선거위반에 대한 고소·고발장을 4차례 신청해 이미 이 문제는 지역을 떠난 상태.

부정행위나 관권개입에 따른 갈등과 상호 비방 역시 주민투표 이후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을 예고하고 있다. 영덕군 공무원들도 이런 사실을 인정하는 분위기. 한 관계자는 "솔직히 분란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있다. 현재 유치율을 높이기 위해 앞만 보며 달리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현재 투표율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다른 것을 염두에 둘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반대 대책위는 "이번 주민투표는 온갖 부정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에 원천무효"라면서 투표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고 있는 상황이며 유치위원회 한 관계자는 "결과에 승복하겠지만 그 차이가 굉장히 근소하다면 재검토를 요구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보여 주민투표 이후 또 다른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찬반 대립, 과열 양상, 상호 비방... 영덕 역시 안정성과 경제성에 대한 생산적 접근은 없었다. 경주나 군산 같은 지역감정은 없었지만 지역 분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어느 지역보다 높았다.

주민투표일이 다가오면서 찬반 대립도 심화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월 13일 영덕군방폐장유치위원회가 주최한 방폐장 유치 궐기대회 모습
주민투표일이 다가오면서 찬반 대립도 심화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월 13일 영덕군방폐장유치위원회가 주최한 방폐장 유치 궐기대회 모습 ⓒ 오마이뉴스 이승욱
11월 2일 주민투표 이후에도 영덕이 예전의 조용한 '대게의 고장'으로 돌아갈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앞만 보고 달려온 것'에 대한 과제가 이미 영덕에 던져져 있기 때문이다.

한 군민의 말은 주민투표 이후 영덕군의 현실을 잘 대변하고 있었다.

"우리가 무서운 것은 방폐장이 들어오느냐 아니냐가 아니야. 주민투표 끝나면 조용해질 것 같아? 우리 지역 딱 쪼개지게 생겼다고. 이 동네가 이렇게 험악해질 줄 누가 알았어. 이 노릇을 어떻게 할 거냐고. 나는 그게 무서운 거야."

한 고구마밭에서 만난 영덕 농민들은 풍부한 농수산물을 포기하고 방폐장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한 고구마밭에서 만난 영덕 농민들은 풍부한 농수산물을 포기하고 방폐장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 조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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