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예전엔 중고등학생들과 초등학생은 쓰러진 벼 세우기에 주로 봉사를 나갔다. 이 사진처럼 가을엔 벼를 탈곡하는데는 자주 동원되지 않았지만 간혹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예전엔 중고등학생들과 초등학생은 쓰러진 벼 세우기에 주로 봉사를 나갔다. 이 사진처럼 가을엔 벼를 탈곡하는데는 자주 동원되지 않았지만 간혹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 신안군
볏단을 한 번 쉬고 집으로 와서 부리면 하늘이 노랬다. 물 한 모금이나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다시 논으로 향하는 아버지는 아직도 아들을 더 낳아야 한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딴마음이었다. 벌써 두 아들과 큰 딸까지 셋을 차례로 초등학교밖에 가르치지 않고 서울로 올려 보냈지 않은가.

며칠간 집으로 가져온 볏단을 곧바로 훑지 않았다. 낟가리를 마당에 집채만하게 차곡차곡 둥그렇게 쌓아두고 탈곡은 보리 심고 밀 갈아놓고 호박과 면화를 따고 메주 쒀 매달아놓고 땔감을 장만하고 한두 달은 지나 1할은 서생원(鼠生員)에게 갖다 바쳤다. 나머지는 눈이 펄펄 내리는 섣달에 거두면 다행이고 정월로 넘기는 일도 잦았다.

몇 년 지난 나중 일이지만 아버지는 먹을 쌀도 떨어지고 지게로 져서 나르기 힘들었던지 생애 마지막 힘을 다 쏟아 지게가 부러질 정도로 무거운 탈곡기를 논에까지 지고 나가셨다.

전날 오후 모든 준비는 다 되어 있었다. 볏단이 주변으로 사람이 보이지 않도록 쌓여있고 탈곡기 주위만 멍석이고 나머지는 포장이 깔려 있다. 이슬도 깨기 전 일요일 아침이라 붙여먹는 논배미가 넓지 않아 인부를 두엇 샀다.

콩과 벼를 떨어냈던 탈곡기가 식당 앞에 할 일 없이 서 있다.
콩과 벼를 떨어냈던 탈곡기가 식당 앞에 할 일 없이 서 있다. ⓒ 김규환
탈곡기 모양새를 꼼꼼히 뜯어보자. 쇠와 나무를 적절히 섞어 짠 틀엔 둥근 회전판이 있다. 철심을 U자나 V자 중간쯤으로 구부려 엎어서 박아놓았다. 어찌나 닳았던지 날카로운 날이 곧추 서 있기도 하고 날이 빠져 있기도 하다. 탈곡기 좌우로 윤활유를 치는 구멍이 있다. 사람이 서서 일하는 쪽인 뒤편으로 돌아가 보면 발판은 미끄러지지 않도록 평평하다.

작년에 쓰고 소지를 해뒀지만 검불이 붙어 있으니 낫으로 자르며 빼낸다. 자르르 먼지가 풍기면 만반의 준비가 끝나고 각자 위치로 간다. 회전판을 한 번 밀어 탄력을 주고 발판을 밟으면 톱날이 보이지 않고 바람을 가르며 잘도 돈다. 양쪽에 각각 한 명씩 서 있고 왼쪽에 있는 사람은 오른발, 다른 사람은 왼발로 힘껏 밟으며 짝꿍이 한 줌 떼어준 벼를 회전톱날에 펴서 올린다.

“차르르~ 찰찰찰 차알~.”

손이 경기(驚氣)를 하듯 떨린다. 꼭 잡고 있지 않으면 사람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이 심하게 당긴다. 회전 날 위에서는 황금이 뛰논다.

“후다닥 툭툭.”

벼가 밑으로 떨어지고 덮개로 튀어 오른다. 두 사람은 발에 최대한 힘을 주어 발판을 밟으며 손에 꼭 쥐고 있던 벼를 뒤집는다. 넓게 펴서 고루 닿게 요리조리 두 팔을 계속해서 돌려준다. 예닐곱 번 마찰을 하니 손이 가벼워진다. 한 손으로 들고 마저 쭉정이까지 털고 뒤쪽으로 게 눈 감추듯 지푸라기를 던져버리고 겨드랑이와 놀고 있는 손으로 다시 받아 거의 동시에 올려놓는다.

“이옹이옹” “아옹아옹” “이양이양”

아무렇게나 들리는 탈곡기가 공회전하는 소리다. 집 앞 가까이에 있는 기름진 논과 들이 빤히 보이는 곳은 중고품으로 사온 탈곡기에 떨어내니 획기적인 변화였다. 앵앵거리는 소리를 따서 ‘앵앵이’ 또는 ‘양양이’라고도 하는 탈곡기는 기계화로 가는 서막이었다.

바닥엔 얼마 지나지 않아 알곡이 듬뿍 쌓여 있다. 일일이 짚 다발을 묶는 한 사람이 갈퀴로 검불과 큰 덤불을 걷어내서 잘 훑어진 벼와 구분하여 당그레로 한쪽으로 밀쳐둔다. 알곡이 모인 쪽은 곧바로 담아도 무난할 듯싶다.

감홍시가 붉어질 때 벼를 수확한다. 예년엔 남부지방이 한달 정도 늦게 시작했는데 요즘은 거의 온 나라가 동시에 끝이 난다.
감홍시가 붉어질 때 벼를 수확한다. 예년엔 남부지방이 한달 정도 늦게 시작했는데 요즘은 거의 온 나라가 동시에 끝이 난다. ⓒ 김규환
한참 밟아대며 벼를 훑고 있는데 갑자기 기계가 멈춰 섰다.

“아따 힘이 팔린 갑소.”
“정신 바짝 차려야제 글다 사고 나겠구먼.”

탈곡기 다루는 것도 요령이 필요하다. 대개는 벼를 쥐고 맨 끝을 위에 살짝 올려 회전판 날이 얼마간 빼앗아가도록 그냥 올려놓기만 한다. 서너 바퀴 돌고나면 그때서야 두 손으로 꼭 눌러주고 돌려주면 위아래와 안쪽까지 남김없이 훑어낸다.

욕심을 부려 한꺼번에 털어내려고 했다간 떨어지지 않으려는 벼와 앗아가려는 기계 날의 마찰력에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한 줌을 가득 쥐고 전체를 쑥 너무 안쪽으로 밀어 넣거나 쥐는 아귀힘이 세지 않으면 어른도 몸까지 끌고 들어가 손을 할퀴는 경우가 허다했다. 형들도 그런 사고에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새꺼리나 묵고 한판 쉬었다가 헙시다.”

논일은 힘으로 한다. 힘을 보충하는 데는 밥이 최고였다. 뱃심이 있어야 발과 손, 어깨가 휘둘리지 않고 자유자재로 움직일 마음이 생기니 새참을 세 번은 먹어줘야 한다. 그러니 모내기나 가을걷이 때는 최소 하루 다섯 번은 먹어둬야 지치지 않고 해낼 수 있다.

반찬이랬자 갈치조림에 배추 겉절이와 돼지고기장조림에 들어 있는 고추다. 여기에 가을철엔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것이 무생채다. 짚불을 피워 양재기를 데워 우리는 맛있다고 헐레벌떡 먹어치우는데 아버지는 혀가 까칠까칠하다며 두어 숟가락 뜨고 막걸리로 대신하였다.

벼 이삭 하나도 허투루 대하지 않았던 그 때가 농사지을 맘이 났다.
벼 이삭 하나도 허투루 대하지 않았던 그 때가 농사지을 맘이 났다. ⓒ 김규환
짚 다발을 대여섯 다발 뉘이고 누워보니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털린 이삭을 잘라 이쑤시개로 쓰며 공상에 빠졌다. 그래, 20여년 후에도 지구가 멸망하지 않고 있을까? 그 땐 달나라에 맘껏 여행갈 수 있다는데 난 그 돈을 어떻게 다 마련하지? 우리도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내 꿈을 앗아가는 어머니 소리가 들렸다.

“아야 라디오에서 짚 다발에 누워 있으면 글다가 유행성출혈열인가 뭔가 걸린다고 안 그려?”
“잠깐인디 뭔 일 있을라고요?”
“글도 안돼.”
“알았어라우.”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가 일 나가시면 밭고랑이나 논둑 사이에서 엎어져 잤는데 쥐가 더 늘어난 모양이다. 하여튼 잠시도 맘 놓고 쉬지 못하게 한 쥐 때문에 탈곡기 옆으로 갔다. 한사코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지게질까지는 허락해도 탈곡기를 만지는 건 가만두지 않았으니 어른들이 쉬고 있는 동안 조심조심 접근했다.

처음부터 발판을 밟았다간 바로 제지당할 게 빤하기 때문에 발판 주변에 있는 검불을 치우고 윤활유가 떨어진 아래쪽을 청소했다. 곧 회전판에 길게 낀 볏짚을 꺼냈다. 그냥은 안 되는 건 애어른 가릴 것 없이 다 아는 사실이다. 천천히 돌려가며 말끔히 청소하는 척했다. 내 작업을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애초에 내 꿍꿍이는 따로 있었다. 날을 밀어 슬슬 돌려주니 힘을 받아 발판이 위 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 번 밟아놓고 한 줌 작게 떼어 회전하는 날이 보이도록 저속으로 회전하는 곳에 갖다 댔다.

몇 가닥이 되지 않지만 꽤 큰 힘으로 잡아당긴다.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키가 작아서 간신히 안쪽을 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내 맘 같지 않게 곧 탈곡기가 힘을 잃어 곧 그칠 모양이다. 다시 두 발을 올려 세차게 밟아보지만 내 힘으론 감당하기 어려웠던지 멈추고 말았다.

볏단을 잘 풀어서 두어 줌 떼어주는 건 주로 어린 우리들 차지였지만 오후 두세 시가 되면 졸립기 마련이었다.
볏단을 잘 풀어서 두어 줌 떼어주는 건 주로 어린 우리들 차지였지만 오후 두세 시가 되면 졸립기 마련이었다. ⓒ 김규환
아쉬웠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내 자리로 돌아가 나락 다발을 풀고 한 깍지씩 떼어주는 자리로 돌아왔다. 곧 어른들이 제자리를 잡아 오전 9시 반쯤에 일이 시작되었다. 위나 옆으로 튀지 말라고 대나무를 쪼개 비닐포대를 덮어놓은 망에 후두두 비가 쏟아지듯 벼가 쉼 없이 때린다. 더 말랐던지 먼지를 풀풀 뱉어낸다.

점심을 먹고 아버지는 짚단 묶는 일로 돌아서자 놉이 어머니와 탈곡을 하였다. 차차 힘이 팔리자 요란하던 소리도 가물가물 잦아들었다. 나는 몇 줌을 미리 준비해놓고 중간에 끼어 발판에 올라타 젖 먹던 힘까지 쏟아내 같이 밟았다.

아버지는 가마니에 바로 담을 벼를 구분하여 몇 가마 넣고는 나와 형이 달리듯 한 다발 두 다발씩 들고 가서 던져 올려주면 짚을 차곡차곡 쓰러지지 않게 잘도 쌓으셨다. 일이 끝나갈 때는 누구 집이나 어머니가 제일 바쁘다. 가마니에 담고 포장을 털어 쏟고 벼이삭을 골라 마저 훑어낸다. 한 톨이 아까워 허투루 대하는 법이 없었다.

달구지라도 있으면 모를까 옮길 일도 보통이 아니다. 그래도 해지기 전에 일찌감치 마쳤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탈곡기만 남겨두고 턴 알곡 열두어 가마를 지고 오가는 아버지는 다음날 결국 사흘 동안 눕고 말았다. 어머니도 탈진 직전이었지만 다음날 논으로 나가셨다.

끝날 무렵 아버지는 짚 단을 논 가장자리나 길가에 높이 쌓았다.
끝날 무렵 아버지는 짚 단을 논 가장자리나 길가에 높이 쌓았다. ⓒ 김규환
70년대를 풍미했던 추억의 인력탈곡기는 이제 박물관이나 헛간 어디쯤에 박제된 유물로 고이 모셔져 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이야기는 경운기가 등장할 예정입니다. 거의 사라진 줄만 알았던 자동탈곡기를 찾아 장성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주말에도 금곡영화마을엔 탈곡하느라 여념이 없겠네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이 기자의 최신기사역시, 가을엔 추어탕이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