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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 10·26 재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홍사덕 한나라당 전 원내총무.
경기도 광주 10·26 재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홍사덕 한나라당 전 원내총무. ⓒ 오마이뉴스 이종호
"홍 총무가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건가."

홍사덕 전 의원의 낙선이 확실시되자, 한나라당 한 의원은 "광폭행보를 자랑하는 분이라 그가 복귀했다면 기자들은 재미있었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공천에 불복하고, 자신이 총선대책위원장과 국회부의장에 이어 원내총무로서 '탄핵정국'을 주도했던 한나라당을 탈당해 무소속 후보로 경기 광주 재선거에 나섰던 홍 전 의원. 그러나 '탄핵주역'이라는 낙인은 끈질기게 그를 괴롭혔다.

월등히 높은 인지도와 지지도를 확보했음에도, 이번 재선거에 다시 '탄핵역풍'이 불 것을 우려한 한나라당은 정진섭이라는 사실상 정치 신인을 내보냈다. 큰 판에서 다른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만류가 있었으나, 홍 전 의원은 "내가 이기면 당도 나도 탄핵 부담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한 때 노 대통령과 한 배 탄 '광폭 행보'

홍 전 의원은 1964년 굴욕적인 한일수교협상에 반대하는 대대적인 '6·3시위'를 통해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등장한 이른바 '6·3세대'다. 이번 재선거에서 적이 된 '40년 지기' 김덕룡 의원과의 인연도 이 때 시작됐다.

홍 의원은 81년 11대 국회에 민주한국당 의원으로 당선돼 정치를 시작했고, 87년 대선에서 DJ와 YS 분열 때는 '후단파'(후보단일화파)에 섰다.

그 뒤 88년 13대를 제외하고 16대까지 내리 당선돼 5선의 경력을 쌓았다. 14·15대때는 강남을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고, 16대 때는 오세훈씨에게 지역구를 넘기고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는 신한민주당과 '꼬마민주당-통합민주당'을 거치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유인태·원혜영 의원 등 현재의 열린우리당 핵심 인사들과 통추(국민통합추진회의)활동을 같이했다.

그에 대해 '여야를 넘나드는 광폭행보'라고 하는 한나라당 중진들의 경계는 이런 데서 나온 것이다.

갑작스러운 한나라당 입당... "공천 불복은 넘어선 안 될 선"

대중적인 인기가 높던 그에게 결정적인 흠이 난 것은 16대 총선 직전인 2000년 1월이다.

새 정치를 하겠다며 장기표씨와 함께 무지개연합을 결성해 한창 목소리를 높이던 중 갑자기 "힘에 부친다"는 이유로 한나라당에 입당해 국회의원 총선거 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것이다. '새천년 정치철새'라는 비난이 그를 따라다녔다. 그 뒤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2003년 6월에는 김덕룡 의원의 양보 속에 원내총무에 출마, 당선해 최병렬 당대표 아래 2인자가 됐다. 이어 "나도 이라크에 가겠다"며 파병에 적극 나선 데 이어 2004년 초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주도하면서 '탄핵 주역'이라는 그의 정치인생 최대의 오명을 자초했다.

이번 재선거 출마에 대해 많은 당 관계자들은 "단기로 당에 들어와서 당의 배려로 선거대책위원장과 국회부의장을 했고, 그 뒤 원내총무까지 했다"며 "당대표 경선까지 나섰던 분이 공천 불복한 뒤 탈당해 무소속을 출마한 것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평탄치 않은 정치이력을 쌓아온 그였지만, 17대 낙선에 이어 또 낙선함으로써, 사실상 정치적으로는 재기불능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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