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등검은메뚜기 짝짓기하며 뛰어다니는 중입니다
등검은메뚜기 짝짓기하며 뛰어다니는 중입니다 ⓒ 권용숙
메뚜기과 곤충들의 짝짓기 사진을 찍으며 늘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암컷에 비해 수컷은 비교도 안 되게 작다는 것입니다. 마치 모르는 사람들은 처음 볼 때 엄마가 아이를 업은 바로 그 모습입니다. 방아깨비도, 벼메뚜기도, 등검은 메뚜기도 암컷의 넓은 등 위에 수컷이 업혀있습니다.

추운 늦가을에 짝짓기를 하는 등검은 메뚜기는 벼메뚜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짝짓기를 하면서 쉴 새 없이 뛰어다닙니다. 행여 떨어질까 암컷 등에 딱 달라 붙어있는 수컷 메뚜기. 여기저기 수컷을 등에 업고도 저 가고 싶은 곳 다 뛰어다니는 암컷 메뚜기의 지치지 않는 힘. 메뚜기 세계에선 단연 암컷이 강자입니다.

암컷의 등에 업힌듯 짝짓기중인 등검은메뚜기
암컷의 등에 업힌듯 짝짓기중인 등검은메뚜기 ⓒ 권용숙
암컷이 강자란 걸 증명이라도 하듯 어디선가 메뚜기 두 마리가 내 발 앞에 툭 떨어졌습니다. 하마터면 밟을 뻔 했는데 자세히 보니 두 마리는 짝짓기 중입니다. 어떡하다 수컷이 암컷 등에서 떨어졌는지는 모릅니다. 보기에도 처절하리만치 암컷에 의해 끌려 다니는 수컷이 불쌍하기조차 합니다.

수컷의 두 배도 넘을 것 같은 암컷의 당당함! 암컷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수컷의 생사를 건 짝짓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무리 힘들고 위험해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저러다 수컷의 다리 날개가 성할까 걱정을 하며 훔쳐봅니다.

그 와중에도 암컷은 저 앞에 먹을 것이 있으면 야금야금 식사까지 합니다. 질질 끌려 다니는 수컷은 추운겨울이 오기 전 성공적인 짝짓기를 위해 인내합니다.

내 발 앞에 툭 떨어진 메뚜기 두 마리. 자세히 보면 꼬리 부분이 붙어있다.
내 발 앞에 툭 떨어진 메뚜기 두 마리. 자세히 보면 꼬리 부분이 붙어있다. ⓒ 권용숙
암컷이 잎사귀 위로 뛰어올랐는데, 수컷은 아무 힘이 없이 끌려 다닌다
암컷이 잎사귀 위로 뛰어올랐는데, 수컷은 아무 힘이 없이 끌려 다닌다 ⓒ 권용숙
가랑잎 위의 암컷의 당당함, 수컷의 처절한 눈빛,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가랑잎 위의 암컷의 당당함, 수컷의 처절한 눈빛,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 권용숙
제발 그만좀 움직여! 이때부터 짝짓기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제발 그만좀 움직여! 이때부터 짝짓기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 권용숙
수컷을 끌고 여기 저기 튀어 다니던 암컷이 지쳤는지 저의 색깔과 비슷한 말라빠진 가랑잎 위에서 꼼짝 않고 쉽니다. 나도 덩달아 조그만 바위에 걸터 않아 쉬고 있습니다.

한 십 분이 흘렀을 때 수컷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눈 깜짝할 새 암컷만 남기고 포르르 날아갔습니다. 짝짓기를 무사히 끝낸 수컷의 비행입니다. 잠시 후 수컷이 말도 없이 날아간 것을 눈치 챈 암컷도 어디론가 날아갔습니다. 암컷은 산란을 할 것이며 목숨 건 짝짓기에 성공한 수컷은 이제 날씨가 더 추워져도 내년에 태어날 2세를 생각하면 아무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나와 풀무치는 높이 나는 메뚜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봤습니다.

풀밭의 신사 풀무치
풀밭의 신사 풀무치 ⓒ 권용숙

덧붙이는 글 | 수컷은 5미터 정도, 암컷은 그 배인 10미터 정도는 한번에 날았습니다. 나는 것도 암컷이 더 멀리 더 높이 날았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