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춥지 않아?"
"바람이 찬데."
"설악산엔 첫눈이 왔대."
"그러게 말야. 겨울은 싫은데."
추위를 많이 타는 아내는 겨울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치악산에서 느끼는 바람이 꽤나 찬 걸 보니 겨울이 멀지 않은 거 같습니다. 산을 오르다가도 바람이 온몸을 휘감고 지나가면 싸늘한 냉기가 느껴집니다. 그래도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에서 내려오는 따스한 햇살이 있어 아내의 추위를 한결 덜어줍니다.
급경사 돌길을 넘어 능선으로 접어드니 나뭇잎은 대부분 떨어졌습니다. 그 위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아내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둘이서 배낭 메고 등산한 기억이 별로 없는 터라 아내는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즐거워했습니다. 단풍이 사라진 능선에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아내의 모습이 단풍보다 아름답습니다.
오르다보니 햇살이 들지 않는 곳의 낙엽 위로 하얀 가루가 덮여 있습니다. 처음엔 서리가 내려 녹지 않은 것이라 여겨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위로 올라갈수록 흰 가루의 양이 많아졌습니다.
"이게 서리야, 눈이야?"
"눈 아냐?"
"치악산에 첫눈 왔다는 뉴스는 없었는데…."
함께 산을 오르는 분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눈이라고 합니다. 많은 양이 내린 건 아니지만 치악산에도 밤새 첫눈이 내린 겁니다. 산 아래엔 단풍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데 산정에는 벌써 눈이 내렸습니다.
산정의 나무들이 모두 잎을 떨어뜨린 이유를 알 거 같습니다. 성큼 다가선 겨울을 준비하기 위함이겠지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계절의 변화를 느껴 제 모습을 바꿀 줄 아는 현명함이 돋보입니다. 계절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어도 단풍보다 짙은 색깔론의 향수에 젖어 사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에 비하면 계절이 바뀌기도 전에 단풍잎 다 떨어뜨리고 다가올 계절을 준비하는 나무들이 훨씬 똑똑합니다.
치악산 정상 비로봉에서 바라본 가을 하늘이 눈부시게 푸릅니다. 1288미터 치악산 정상에서 사진 몇 장 찍고 햇살 잘 드는 양지쪽에 앉아 준비해간 김밥을 먹었습니다. 이따금 바람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보온병에 담아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되돌려 보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