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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쪄서 옷이 약간 작아보인다.
살이 쪄서 옷이 약간 작아보인다. ⓒ 양중모
본래는 극장 매니저의 일을 더 알고 싶었지만, 극장 매니저의 경우 다른 서비스 업체에서 오는 경우도 있고, 스태프나 슈퍼바이저의 업무를 잘 인지하고 있어야 극장 매니저로서 원활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설명에, 보다 열심히 슈퍼바이저 일을 지켜보고자 했다. 가능하면 슈퍼바이저의 모든 분야를 경험하고 싶었지만 인턴 과정을 단 하루만 하는 것이라서 하룻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자 노력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슈퍼바이저는 스태프 관리를 잘하고, 고객 클레임에 잘 응대해주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직접 경험한 슈퍼바이저의 업무는 역시 내가 보고자 했던 단맛만 있는 것이 아니라, 쓴 맛이 더욱 강했다. 복장에서부터 주름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옷에 핸드폰 등을 넣을 수 있는 주머니 역시 달려 있지 않았으며, 구두도 검은색만을 신어야 하는 등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여기에 젤을 머리에 발라 고객을 만나기 위해 신경 썼다는 걸 표현해야 한다는 등의 말을 들으면서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진이 빠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습지 교사 일을 하면서 인사법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인사를 배우는 것부터 엇나가기 시작했다. 같이 체험하는 사람이 서비스 업종에 근무한 적이 있어 아주 자연스럽게 인사를 한 반면, 내 인사는 경직되고 부자연스러운 면이 강하다고 하여 하루밖에 없는 그 짧은 시간에도 여러번 되풀이해서 인사 연습을 해야 했다.

촬영팀을 도와 체험단을 지도하던 슈퍼바이저는 별 말은 안했지만, 내 인사가 영 어색했는지, 실제로 들어와 인사를 제대로 못하면 고객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곳에서 4시간 동안 인사만 하게 시킨다고 하며 무언의 압박감을 주었다.

사실 인사 연습에 들어가기 전부터 다소 뚱뚱한 내 체형 때문에 옷이 좀 작게 느껴져 자기 관리부터 해야 한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취업하고 싶은 1지망에 서비스 업종을 올려 놓았으면서도 '서비스 업종에서는 보기 힘든 체형'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체중 감량이었다.

이어 극장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티켓 끊는 업무에 들어갔다. 그저 무슨 영화 티켓을 달라고 하면 주면 되는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건만, 이런 저런 할인카드에 신용카드, 환불, 정산 등 의외로 외워야 할 것들이 많았다. 실제로 티켓팅을 경험해 볼 좋은 경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일은 같이 체험하고 있는 여성에게 넘겼다.

체험하고 있는 극장을 꽤 많이 이용하는 고객으로서 촬영을 하든 무얼 하든 내 차례가 늦어지면 짜증이 많이 난다는 것을 알기에 일부러 티켓일을 직접 하는 것은 피했다. 그게 고객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지나고 나니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하지만 일 처리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고객을 생각하면, 잘 했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내 만족을 위해서 타인을 괴롭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물론 정식 스태프들은 훨씬 더 장기간 교육을 받은 후에 업무에 투입되고, 교육 중이라는 명찰을 달아 손님에게 양해를 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둔다고 한다. 가끔 교육 중이라는 걸 보고도 느리다고 짜증을 내기도 했는데, 처음부터 잘할 수 없는 게 당연한 것인 만큼 좀 더 이해와 배려를 못했던 게 약간 미안했다.

티켓을 끊는 업무에 비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있게 나선 게 매점 업무였건만, 그 짧은 시간 안에 지도해주는 슈퍼바이저에게 참 많이 혼났다. 매점에서는 청결을 가장 최우선시해 들어가기 전에 손을 닦아햐 하며, 반팔옷을 입었을 경우 팔목까지 비누로 깨끗이 닦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철수세미 같은 걸 이용해 손톱 등 때가 끼기 쉬운 부위도 꼭 정돈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건, 매점에 들어간 순간부터는 신체 부위 중 코나 머리 등 자칫하면 청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위를 만져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엄격한 슈퍼바이저의 눈에 그런 행위가 띄면 바로 다시 가서 손을 씻어야 한다. 다소 덜렁거리고 습관적으로 코를 자주 만지기 때문에 이 역시 쉽지 않았다. 어쨌든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고 팝콘을 푸고 콜라를 따라 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시작하자마자 혼나기 시작했다.

"여기 이 푸는 게 왜 이렇게 되어 있겠어요? 이렇게 퍼야 푸기 쉽겠죠? 그리고 이 곳으로 이렇게 퍼야 팝콘이 부서지지 않고 잘 들어가요. 아까 중모씨가 한 것처럼 하면 다 부서져요."

친절이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목소리는 아름답기 그지 없었지만,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기에 다소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대충 푼 후에 미소를 보여주면 그만일 뿐이라는 내 생각이 부끄러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슈퍼바이저가 아닌 마치 스태프가 하는 일 같다고 묻자, 슈퍼바이저는 원래 한 달간 스태프들이 하는 일을 직접 체험해보고, 바쁠 때는 열심히 도와준다고 한다. 그 일을 직접 할 줄 알아야 하고, 바쁠 때 뒷전에서 이래라 저래라만 하는 관리자에게서 결코 좋은 서비스를 하는 직원들이 나올 수 없다는 설명. 많은 청년들이 관리직에 도전하는 것이 보다 편하게 일하기 위한 것임을 생각해보면 새겨들을 만한 말이다.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기에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쯤, 골드 클래스라는 소수의 인원이 두 배 정도 되는 가격을 내고 들어가 편안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공간에서 연인들을 위한 이벤트가 열렸다. 이벤트를 위해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 출연 중인 주현 아저씨와 오미희씨가 무대 인사를 와서 바로 눈 앞에서 좋아하는 주현 아저씨를 볼 수 있었기에 힘이 불끈 솟았다.

골드클래스는 입장권이 비싸다보니 서비스도 굉장히 친철한 편인데, 음식을 갖다 줄때는 무릎을 꿇기까지 한다고. 서빙을 하면서 무릎을 꿇고 고객을 바라보는 건 또 색다른 경험이었다. 사실 모든 직업이 이처럼 뚜렷하게 표가 나지 않을 뿐이지, 때론 자존심을 버리거나 꺾어야 할 일이 한 둘이겠는가.

극장 안을 다 돌아다닌 후에 어디 또 갈 곳이 있을까 싶을 무렵, 영사실로 올라가자는 말에 따라 갔다. 영사실이야 여자친구가 영사 기사를 하고 싶어해 영상 자료원에 우연한 기회에 들어가 한 번 본 적은 있지만, 상업 영화관의 영사실은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보다도 궁금한 것은 슈퍼바이저가 영사실에 왜 갈까 하는 것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슈퍼바이저가 자주 오는 곳은 아니지만, 아주 혹시라도 영사 기사님이 아프다거나 천재지변이 있거나 하면 영화는 돌려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슈퍼 바이저가 영화를 돌리는 정도는 알아둬야 돌릴 수 있죠."

영사기를 돌린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체험단을 지도해주는 슈퍼바이저의 말을 듣는 순간, 이 직업에 대한 쓴 맛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기본적인 업무에도 강해야 하고, 스태프들을 관리하려면 인간 관계에도 신경써야 한다. 그뿐인가. 돌발 상황에 대처할 능력까지 갖추어야 하며, 때로는 극장 특성상 휴일에도 근무해야 하는 만큼 강한 체력은 필수라는 말로 슈퍼바이저의 모습이 그려지자, 단 하루지만 체험해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직업에는 사실, 사람들이 보는 것처럼 화려한 면만 있는 것이 아니고 힘들고 어두운 뒷면도 있는 것인데 그 면을 보는 것은 직접 체험해보지 않는 이상 쉽지 않다.

고객 응대와 스태프 관리를 하면서 미소 짓는 슈퍼바이저를 보고 그 일에 도전하려고 했다면, 막상 들어가고 나서 현실과 다른 면을 보고 갈등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체험을 통해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더 잘하자고 굳게 마음을 먹는 계기가 되었다. 보다 중요하게 느끼게 것은 속된 말로 '날로 먹으려 하지 말자'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에도 하기 싫은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고, 편해 보이는 가운데도 힘든 부분이 있을 것이 분명하니, 무엇을 하든 긍정적인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글 | 청년 실업에 대해 수치상인 기록만이 나와 실제 겪고 있는 입장에서 어떤지를 말하고 싶어 기획해서 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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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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