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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빛깔의 피데기 오징어 맛은 더 좋다. 도동항에서
불은 빛깔의 피데기 오징어 맛은 더 좋다. 도동항에서 ⓒ 추연만

울릉도 하면 으레 오징어가 떠오르듯 울릉도 저동은 오징어 항으로 유명하다. 예로부터 저동항은 울릉경제를 쥐락펴락해 울릉도의 젖줄이라 불렸다. 그래서 울릉도 오징어의 원조를 만나려면 저동항으로 가야 한다.

지난 9일 아침 5시경 숙소인 울릉도 도동을 출발해 10여분을 걸어 저동항에 도착하니 항구의 상징인 촛대바위가 어슴푸레 눈에 들어온다. 그 뒤 죽도 근처에 오징어배가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집어등을 켠 배들이 수십 척 모여 있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 할 만하다. 이를 본 누군가는 어화(魚花)라고 표현했다.

촛대바위 옆의 갯바위에는 밤새도록 낚시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울릉도는 지금 방어낚시가 제철이다. 수평선 너머로 여명이 동터오는 가운데 여기저기서 짜릿한 방어낚시 손맛을 느낀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어! (방어가) 왔다. 이번엔 씨알이 큰 놈이네!" 옆에 있던 낚시꾼들이 장난기가 발동해 "어이! (줄이) 터져라. 터져라"를 연발한다. 방어는 워낙 요동치는 힘이 세어 낚시 바늘에 걸려도 가끔은 낚싯줄이 끊어지는 경우도 있나보다.

방어낚시 미끼로 오징어 눈알을 쓰고 있었다. 참 특이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대여섯 개를 하나의 바늘에 꿰었다. 오징어 눈은 바다 속에 들어가면 반짝거려서 방어를 쉽게 유혹한다고 한다. 해마다 방어 철이 오면 울릉도 주민들은 방어회와 매운탕을 실컷 먹는다고 한다. 길이 1m 정도의 방어 한 마리도 만원이면 거뜬히 산다고 하니 이때는 횟집도 장사가 잘 안 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것 같다.

울릉도 저동의 오징어 배. 울동도의 '젓줄'인 저동항의 죽도 앞에 배들이 불을 밝힌 채 오징어를 낚고 있다.
울릉도 저동의 오징어 배. 울동도의 '젓줄'인 저동항의 죽도 앞에 배들이 불을 밝힌 채 오징어를 낚고 있다. ⓒ 추연만

울릉도 태하동의 오징어 손질. 오징어를 '할복'하면 20마리씩 대나무 꼬쟁이에 꿰고 그 걸 물에 씻어 건조장으로
울릉도 태하동의 오징어 손질. 오징어를 '할복'하면 20마리씩 대나무 꼬쟁이에 꿰고 그 걸 물에 씻어 건조장으로 ⓒ 추연만

울릉도 도동의 오징어 말리기. 금방 넌 오징어의 흰 색이 참 곱죠? 7일 도동항 덕장에서
울릉도 도동의 오징어 말리기. 금방 넌 오징어의 흰 색이 참 곱죠? 7일 도동항 덕장에서 ⓒ 추연만

수평선 너머로 붉은 해가 불끈 솟구치면 저동 수협 어판장도 북적이는 사람들로 생기가 돈다. 밤새 잡은 오징어가 플라스틱 상자에 일정하게 담겨 칸칸이 쌓여 경매시간을 기다린다. 경매사가 '딸랑딸랑' 종을 흔들며 입찰을 알린다. 중매인들 눈이 반짝인다. 경매사는 중개인이 적어낸 플라스틱 팻말을 보고 낙찰 가격을 선택한다. 언뜻 한 상자에 4500원(잘못 들었을 수도 있음)이란 낙찰가가 귀에 들린다. '오징어 최대항구라 입찰가격이 이렇게 싼 것인가'란 생각도 들었다.

"거기 이까, 이리 가 온나!" 경매가 끝난 오징어 가운데 말릴 것은 그 자리서 작업을 한다. 작업하는 아주머니들은 오징어를 '이까'라 불렀다. 외래어지만 참 오랜만에 들어 본 말이라 정겹다. 칼로 오징어 배를 따고 누런 오징어 똥창(내장)을 드러내는 작업을 한다. 이어 아주머니들이 대나무 꼬쟁이에 오징어 스무 마리(한축이라 부름)를 꿰놓으면 아저씨들은 오징어 꿴 꼬챙이를 하나씩 들고 물통에 덤벙덤벙 씻은 후 트럭에 싣고 건조장(덕장)으로 운반한다.

"오징어 배를 따는 데 얼마 받습니까?" 작업하는 아주머니께 묻지 못하고 길가에 커피 잔을 든 아저씨께 질문하니 "한 꼬지(20마리)에 500원"이라고 말한다. 손에 익은 분들은 하루에 100꼬지도 너끈히 작업하고 하루에 10만원을 버는 분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억척스런 아주머니들이 없다면 울릉도 마른 오징어 맛도 볼 수 없으리라.

저동에는 커피 잔을 든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아침나절 찬 기운을 녹여주는 따뜻한 커피. "커피 한 잔 해라!"가 아침인사가 된 모양이다. 한 때 울릉도에는 다방이 36개나 생겼을 정도로 커피가 많이 팔렸다고 한다. 커피 잔을 든 아주머니 모습이 아직도 아련히 떠오른다.

울릉도의 청정한 날씨와 더불어 당일 잡은 신선한 오징어를 바로 작업해 말리기 때문에 울릉도 오징어는 더욱 맛이 있다. 나는 마른 오징어 못지않게 살짝 말린 '피데기'를 권하고 싶다. 하루 이틀 정도 말린 촉촉한 피데기는 도톰한 살이 씹히고 고소한 맛도 오래 입안에 남아 더욱 일품이다. 두 딸에게 피데기 한 축을 사 주었는데, 이틀 만에 아이들이 다 먹은 모양이다. 그리고 울릉도 피데기 두 축을 주문한 친구는 막상 먹어보니 "너무 맛있다"고 하면서 "한 축은 처갓집에 반드시 줄 것"이라고 했다.

울릉도 개척민들이 울릉도에 처음 정착한 마을인  태하동
울릉도 개척민들이 울릉도에 처음 정착한 마을인 태하동 ⓒ 추연만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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