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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 친구, 도무지 마음에 안 들어."

▲ 브루스 커밍스의 저서 <양지 속의 한국>
ⓒ W. W. Norton
낯선 사내의 목소리였다. 도서관에 앉아 수업준비에 여념이 없던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내 눈이 책에서 떨어지던 순간, 근처에 앉아있던 다른 학생들의 시선도 그 사내 쪽으로 쏠렸다. 도대체 어떤 친구가 도서관에서 이렇게 큰 목소리로 까닭 모를 시비를 걸어오는 것일까.

그 친구의 갈색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왔을 때, 그의 눈길은 내 얼굴이 아닌 내 앞의 책상 왼편에 놓인 책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브루스 커밍스의 책이 놓여있었다. <양지 속의 한국(Korea's Place in the Sun)>. 그 친구가 시비를 걸어온 대상은 그 책, 정확히는 그 책의 저자였던 셈이다. 상황을 파악한 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마음에 안 드는데?"
"저 친구, 북한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면서 떠벌이기만 해."

"하지만 북한에 대해 객관적인 정보가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커밍스의 연구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는데."
"우리가 북한에 대해서 모르는 게 뭐가 있어? 다 알고 있다고."

"뭘 아는데?"
"전쟁광, 정신병 환자, 핵으로 세계를 위협하는 악당들…. 더 이상 무슨 정보가 필요해?"


미국인들의 대북인식, 무지 속의 확신

그의 확신에 찬 '무지'는 너무나 견고해 다른 견해를 수용할 어떠한 틈이 보이지 않았다. 한국의 냉전교육이 갈망하던 반공의 화신을, 나는 70년대 한국이 아닌 21세기 미국의 분방한 대학도시에서 보고 있었다. 아무리 배우고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도 상대가 이쯤 되면 '계몽'도 쉽지 않다. 이럴 때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하고 다시 책을 잡는 게 상책이다.

그러나 당시 나는 '미국의 대중매체와 북한에 대한 인식'을 주제로 강의준비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냥 순순히 물러날 수는 없었다.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미국인들의 대북인식이 남한사회에 초래할 위험을 늘 걱정해 온 터였다.

"북한이 문제가 많은 나라인 것은 틀림없어. 하지만 대화가 불가능한 '미치광이'는 아니야. 혹시 북한이 핵 프로그램 철수 조건으로 미국에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아?"
"뭐, 협박하면서 돈이나 챙기려는 거겠지."

"가장 주된 요구조건은 상호불가침조약이야. 북한은 실제로 미국의 공격을 두려워하고 있어."
"미친 소리, 그럼 우리 미국정부가 북한을 위협이라도 한다는 거야?"

"그럼 북한이 요구하는 평화협정을 미국이 거부하는 이유를 알아? 미국이 실제로 94년에 북한 폭격 직전까지 간 일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 거야."
"그건…정확한 내용을 몰라서 당장 말하기 곤란한데."

"대다수 사람들이 너처럼 북한에 관해 잘 알고 있지 못하면서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경향이 있어. 정치인들은 그런 무지 속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국민들은 동일한 무지 속에서 그 정책을 지지하지 않아? 북한을 좋아할 필요는 없지만,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런 면에서 커밍스의 연구가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보는데."


미국의 유일한 대북정책, '적대감'

▲ 미국사회에서 북한은 합리적인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미국인들에게 북한은 "자살폭탄테러단"이자, "미친개"며, "미치광이 마녀"인 동시에 면세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로 그려진다.
ⓒ 강인규
얼마 전 '존'이라는 한 대학원생과 가진 대화의 일부다. 그는 역사학 전공이며, 미국의 아시아정책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큰 관심'을 가진 대학원생의 북한관련 지식이 이 정도라면, 보통 미국인들이 북한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어느 정도일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북한문제에 대한 정책을 입안하는 미국 정치인들의 수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공화당 소속으로 한때 주한 미 대사를 지내기도 했던 도널드 그레그는 미국정부의 대북인식을 잘 요약해 준다. 그는 "미국정부는 북한에 대해서 어떤 정책도 가져 본 적이 없다"고 잘라서 말한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 오직 "태도(attitude)"만을 보여 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 태도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적대감(hostility)입니다."

브루스 커밍스는 <북한: 또 하나의 나라(North Korea: Another Country)>에서 "미국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액수가 적히지 않은 '백지수표'와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거기에 어떤 액수가 쓰이든 모두 '액면가'로 받아들인다. 그 내용이 부정적인한 말이다. 물론 상황은 남한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의 기준은 구체적인 이슈에 대한 견해가 아니라 미국과 북한에 대한 일반적 '태도'로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남북문제에 관해 미국 입장에 전적으로 동조하지 않는 사람은 반대의 사람들에 의해 자동적으로 '친북'이 되고, 자동적으로 '반시장경제주의자'가 되며, 동시에 '자유민주주의 전복세력'에 가입하게 된다.

'반미주의자'가 아닌 한 우리가 북한에 대해서 보여야 할 태도 역시 정해져 있다. 북한체제에 대한 모든 발언이 반드시 비난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모든 담론은 '찬양'이며, 그 발언의 주인은 '친북세력'이 되는 동시에 앞에서 '반미주의자'가 거쳐 간 과정을 자동으로 지나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미국의 이해관계는 남한의 이해관계와 다르다." 하지만 필자를 '친북'으로 시작해 '자유민주주의전복세력'으로 끝나는 멀고 험난한 길로 안내하기에 앞서 한 마디만 더 들어주었으면 한다. 앞의 말은 내 견해가 아니라, 미국행정부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한 고위관리의 발언이다.

리차드 펄 "남한과 미국의 이해관계는 다르다"

1994년, 대부분의 남한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는 또 다시 제 2의 한국전쟁을 향해 가고 있었다. 미국이 북한 영변의 '의혹시설'을 폭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구체적인 일정에 따라 주한 미국 관리들을 미국으로 소환할 계획까지 세워둔 상태였다.

▲ 지난 15년간 미국의 시사잡지 <타임>과 <뉴스위크>에는 북한관련 표지기사가 두 번씩 실렸다. "머리 없는 괴수," "닥터 이블" 등의 표제가 말해주듯 북한에 대한 모든 기사는 '위협'의 맥락에서만 다루고 있다. 지난 15년간 남한사회는 단 한 차례도 표지기사로 다루어 지지 않았다.
ⓒ TIME/ Newsweek
커밍스에 따르면, 미행정부에서는 전면전의 위험 없이 북한의 핵발전소를 '정밀폭격(surgical bombing)'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오랫동안 논의한 상태였다. 결론은 불가능하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폭격계획을 실행하기로 결정한다.

미 국방성이 예측한 남한 측의 피해상황은 상상하기에도 끔찍하다. 이에 따르면, 예상되는 사상자의 수는 서울에서만도 450만 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행정부는 폭격을 결심했다. 전 미국대통령 지미 카터가 평양을 방문해 극적으로 중재에 나섬으로써 파국은 면했지만, 이후로도 카터는 공화, 민주당 모두에게 불만을 샀다고 관계자들은 증언한다.

당시 오랫동안 국방성의 고문을 지냈던 리차드 펄(Richard Perle)은 미국의 공영방송(PBS)에 출연해서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그는 럼스펠드와 더불어 부시 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을 선두에서 이끈 주역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그는 인터뷰에서 "부시 행정부가 남북화해에 역점을 두는 남한의 대북정책에 협력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남한사람들의 이해관계는 우리나라의 이해관계와 다르다. 물론 (남한이 미국과 북한문제에 다르게 접근하는 것이) 이해는 된다. 서울은 북한으로부터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공격권 안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한이 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미국과 다른 견해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부시 대통령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단연 미국의 안보다."

▲ 2000년 평양에서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미국시사잡지 표지를 장식한 것은 '서바이버'와 윌리엄 왕자였다. 미국언론의 보도행태가 잘 말해주듯, 미국사회에서 한국은 그다지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 TIME/ Newsweek
미국이 그토록 끔찍한 남한의 피해상황을 예측하고도 북폭을 결정한 이유는 '남한과 다른 미국의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군사정책은 '예방전쟁'과 '선제공격(Preemptive attack)'으로 대표된다. 다시 말해 '위험한 나라'는 그 위험이 닥치기 전에 미리 공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 내에서 북한은 그 '위험한 나라' 가운데서도 가장 위험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북한 문제 전문가인 셀리그 해리슨은 미국의 이런 태도를 미국의 '냉전적 사고(Cold War mindset)'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냉전시대에 고정되어 있어, 이미 냉전시대가 끝나고 화해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냉전적 사고에 익숙해진 미국사회는 북한과 화해와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남한을 불편한 눈으로 응시하고 있다.

▲ 한국에서 <공동경비구역>과 <태극기>가 개봉된 2002년과 2004년에 미국에서는 북한을 주적으로 다룬 두 편의 영화가 각각 상영되었다.
ⓒ MK 픽쳐스 등
가깝게는 북한에 대한 정보부족으로부터 멀리는 동양문화에 대한 편견 및 인종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요인들은 미국의 언론으로 하여금 북한을 "이성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미치광이 나라"로 담론화 하도록 한다. 전 세계를 이목을 사로잡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미국의 주간지 표지의 더 중요한 화젯거리는 '리얼리티쇼'와 '윌리엄 왕자'였다. 남한에서 <공동경비구역>과 <태극기>가 개봉된 2002년과 2004년에 미국에서는 북한을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적으로 그려낸 <007 다이 어나더데이>와 <팀아메리카>가 상영되었다.


무지가 부르는 위험

도서관에서 가끔 '존'과 마주친다(나는 아직 그 친구의 성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서로 가볍게 웃으면 손을 흔들며 미소 짓곤 한다. 한때는 며칠 잠을 못 잔 피곤한 기색으로 근처를 지나다가 멈춰 서서 한동안 '대학원생의 삶'을 한탄하기도 했다.

긴 셔츠의 소매를 정갈하게 걷어 올린 채 책을 끼고 다니는 키가 훤칠한 그 친구를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그 선량한 웃음의 친구가 북한이 미국의 위협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고 믿는 70%의 미국인 가운데 한 명이고, 대북외교가 실패하는 경우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믿는 33%의 미국인 가운데 한 명일 것이라고.

▲ 한국사회에서 특정한 정보만 흐르도록 규제하는 국가보안법은 오히려 합리적인 판단을 흐림으로써 국가안보를 위협한다. 사진은 북폭기사에 달려있는 네티즌의 댓글.
ⓒ <조선일보>/ <네이버>
우리는 1994년 한국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결정된 전쟁의 위기 속에서도 아무런 정보 없이 (따라서 아무런 걱정 없이) 잘 지냈다. 오히려 몇 년 후 북폭 보도를 접한 우리들 가운데는 무릎을 치며 당시의 폭격보류를 안타깝게 여기는 이도 있었다. 그들이 읽은 기사에 남한이 핵 공격으로 입을 수십만 명의 인명피해가 언급되어 있던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도 미국의 뜻에 따르는 것만이 한국의 이익과 안녕에 부합하는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신문을 펴놓고 아침식사를 한다. 사실 선택의 여지도 없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을 어기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국가보안법'은 오히려 다양한 견해를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국가의 안보를 위협한다.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오직 '사악함'의 영역에서만 파악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법에 따르면 입장이 아닌 사실의 문제를 다루는 것-예컨대 북한이 남한보다 문자습득률이 더 높고(99%), 성차별폐지를 더 빨리 입법화했으며, 1970년대 후반까지 남한과 비슷한 경제성장 및 국민소득을 누렸다는 미국중앙정보국의 보고서를 인용하는 것까지- '찬양' 및 '고무'에 해당하는 범죄행위가 될 수 있다.

북한사회가 많은 모순과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를 거부함으로써 우리가 얻는 것은 증오와 무지 속에서 다가오는 위기뿐이다. 1994년의 위기는 남한과 다른 '이해관계'에 따라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현재진행 상태이다.

북한사회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은 다양한 견해 속에서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과정을 거쳐 얻어지는 것이지, 검찰이 학자를 구속하고 기업이 학생들의 채용을 거부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장경제'를 그토록 신봉하는 사람들이 '사상의 공개시장'은 거부하며 국민들의 생각을 중앙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를 알기 어렵다.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학자의 말 몇 마디로 붕괴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야말로 체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데서 오는 불순한 '반체제적인' 사고가 아닐까.

1994년의 위기, 그리고 '정밀폭격'의 환상

▲ 1994년 미국이 폭격을 결정했던 북한 영변의 핵발전시설.
ⓒGlobal S.
북핵위기의 발단은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에너지 부족에 시달리던 북한이 천연우라늄 원료에 흑연으로 핵반응을 조절하는 매그녹스(Magnox) 원자로를 가진 발전소를 영변에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두 가지 천연자원을 이용한 경제적인 발전방식이었지만, 미국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대단히 위험한 시도였다. 천연우라늄을 원료로 한 이 발전과정에서 핵무기의 재료인 플루토늄이 부산물로 생산되기 때문이다. 기묘하게도, 대다수의 군사시설을 지하에 건설한 북한이 유독 원자로와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로 보이는 건축물은 지상에 건설하기 시작했다.

물론 북한은 미국의 정찰위성이 영변의 시설을 24시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미국과 북한의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해 있던 북한은 의무적 사찰을 받는 가운데서도, 몇 군데 의심스러운 시설에 대해서는 '군사시설'이라고 말하며 사찰을 거부했다. 그 '의심스러운 시설'은 미국정보기관이 정찰위성으로 찍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제공한 것이었다.

북한은 '미국의 지시'에 따라서 군사시설의 사찰을 요구하는 국제원자력기구의 중립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자국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부당한 행위이기에 따를 수 없다고 주장하며 사찰을 거부했다. 만일 그 군사시설에 대한 사찰을 원한다면 수백 개의 전술핵이 배치된 남한 내의 미군시설 역시 사찰에 포함시켜야 균형이 맞는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클린턴 행정부가 그동안 중단되었던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하자, 북한은 이에 맞서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하겠다고 협박했다. 북한은 팀스피리트 훈련을 자신들에 대한 핵위협의 일부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훈련과정에는 핵 공격의 시나리오 및 군 장비들이 동원되었으며, 개전 한 시간 이내에 핵공격을 감행한다는 작전("H+1")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채택한 기본전략의 하나이기도 하다. 북한의 이런 움직임에 맞서 클린턴 미행정부는 영변의 핵발전소를 폭격하기로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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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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