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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재에서 속리산 가는 철계단
비재에서 속리산 가는 철계단 ⓒ 정성필
날이 무척 덥다. 땀에 전 옷이 몸에 착착 달라붙는다. 그나마 바람이 불어 윗옷을 들었다 놓으면 시원한 바람이 들어간다. 하지만 배낭을 짊어진 등짝으로는 땀과 옷과 배낭이 함께 접착제나 되는 것처럼 몸에 착 달라붙어 가렵기도하고 답답하기도했다.

배낭을 벗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마음 밑바닥부터 일지만 어차피 내가 지고 가야할 짐이면 불평 없이 지고 가기로 한다. 나무가 우거진 숲을 지날 때면 바람도 잠잠해 거의 미칠 지경이 된다. 물을 마셔도 흐르는 땀으로 배출되는 수분을 감당할 수 없다. 물이 없는 구간인데 물을 너무 마셔 속리산까지 사분의 일도 채 못 가 물을 절반이나 마셨다.

갈령 삼거리에 도착할 때 즘엔 완전히 지쳐버린다. 갈령 삼거리에서는 아예 배낭을 벗어버리고 누워버린다. 조금 누워있자니 파리떼가 모여드는데 엄청나다. 새까만 파리떼로 인해 나의 휴식은 깨져버린다.

천황봉 가는 길
천황봉 가는 길 ⓒ 정성필
파리를 쫓다가 나중엔 "파리여 네 마음대로 하십시요"하고 자포자기한 뒤 잠깐 눈을 붙인다. 잠깐의 잠이어도 피로는 풀린다. 무거운 몸으로 다시 일어선다. 형제봉 가는 길, 물이 떨어졌다. 물을 보충해야하는데, 보충할 데가 없다. 피앗재에서 만수동 갈림길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만수동 갈림길에는 매트리스를 펼 만큼 넓은 곳이 있다. 우측으로 보니 물이 있을 듯하여, 우측으로 내려 물을 뜨러 간다. 5분여 내려가니 땅이 축축하다. 물이 있다는 증거다. 그 자리에 멈추어서 조용한 상태에서 들어보니 물소리가 들린다. 물 냄새가 난다. 산에서 오랜 시간 지내다 보니 이젠 물 냄새, 물소리도 들린다.

십 분정도 더 내려 가니 길에서 좀 떨어진 바위틈에서 물이 흐르고 있다. 물통에 물을 채우고 들고 온 코펠에 물을 받아 다시 만수동 갈림길까지 올라간다. 점심을 먹고 자리를 편 김에 한 숨잔다. 잠은 얼마나 달콤한가? 잠깐의 잠이라도 자고 일어나니 몸이 회복된다.

형제봉에서 본 능선
형제봉에서 본 능선 ⓒ 정성필
오늘처럼 갈 길이 멀다고 서두르면 안된다. 갈 길이 멀수록 천천히 조심스럽게 가야한다. 산을 가장 빠르게 가는 방법은 빨리 걷는 게 아니다. 산에서 목표지점까지 가장 먼저 도착하려면 다치지 말아야한다. 아프지 말아야 한다. 사고가 없어야 한다. 산은 생존이다.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안전이다.

오늘처럼 덥고 습하고 몸이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지친다면 조심해야 한다. 조심하지 않으면 이 산 속 나 홀로 걷는 이 길에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배낭을 꾸린다. 코펠이며 버너 그리고 갖가지 짐들을 배낭에 넣고 일어선다. 두시가 약간 안 되었다. 이 정도 시간이라면 충분하다. 앞으로는 물이 없는 구간으로만 계속 가야하므로 물은 최대한 아껴 마셔야 한다.

667봉 가는 길, 쓰러진 나무를 본다. 저렇게 굵은 나무를 뿌리째 뽑아 쓰러뜨린 주인공은 누구일까? 백두대간 길에는 종종 저렇게 뿌리째 뽑혀 세월의 이끼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길 한 복판에 떡 버티고 있는 나무들이 많다.

맷돼지 피하려고 올라간 바위
맷돼지 피하려고 올라간 바위 ⓒ 정성필
무엇이 저렇게 굵고 단단한 나무를 쓰러뜨렸을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태풍이 쓰러뜨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결론이다. 굵은 나무일수록 태풍에 버티다 쓰러진다는 사실. 무어라 설명을 해야 할까? 쓰러진 나무는 길을 막고 있다. 나는 배낭이 나무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몸을 숙여 나무를 지나간다.

우측으로는 도로가 기다랗게 이어진 풍경으로 집이 드문드문 보인다. 좌측 풍경으로는 첩첩 산이 계속 이어진다. 아마도 충북알프스라 이름 붙은 산들의 위용인 듯 산에서 산으로 펼쳐지는 능선과 능선의 만남과 이어짐은 거대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나는 산과 산으로 이어지는 이곳에서 아주 작은 생물체에 불과하다.

거대한 나무 밑에 서면 나는 너무 초라하게 작다. 거대한 바위 위에 올라선다 해도 나는 바위에 붙어 있는 작은 벌레만큼이나 작다. 나는 산을 걷는 것일 뿐, 산을 정복하는 것도 아니고 산에 흔적은 남기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산 길을 걸으며 나를 돌아보고 싶은 아주 작은 존재다.

이정표
이정표 ⓒ 정성필
667봉에 도착한다. 667봉에서 본 풍경은 장관이다. 아름다운 능선이 출렁이는 햇살에 반짝이는 저마다의 선을 드러내놓고 있다. 667봉까지 가느라 몸이 많이 지쳤다. 힘을 배분하지 않으면 속리산까지 가는 길이 무척 힘이 들 것이다.

667봉 지나 잠시 쉬는 사이에 큰 짐승이 밟는 듯한 낙엽 부서지는 소리를 듣는다. 온 몸의 털이란 털이 다 서는 듯 긴장한다. 혹시 맷돼지가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바위 위로 올라간다. 올라간 바위에서 소리가 나는 쪽을 살핀다. 사람도 아니고 짐승도 아니고 소리만 크게 들린다. 보이는 것도 흔들리는 나무도 없다. 그러나 소리는 난다.

나는 나의 존재를 먼저 인식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가 나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래서 내 쪽에서 먼저 소리를 낸다. "야호" 라 했다가 반응이 없어, "거 혹시 사람입니까?" 하고 묻기도 한다. 얼마간 큰 소리를 내다 조용히 상대의 반응을 듣기 위해 잠잠하게 기다려 본다.

뒤돌아 본 능선
뒤돌아 본 능선 ⓒ 정성필
소리가 사라졌다. 감쪽같이 거대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사라졌다. 나는 소리의 주인공이 맷돼지라 짐작하고 맷돼지가 더 멀리 갈 때까지 조금 더 바위에서 쉰 후에 길을 떠나기로 한다.

천황봉은 가도 가도 끝이 나타나질 않는다. 이미 온도는 삼십 도를 훌쩍 넘긴 무덥고 습하고 끈적끈적한 날씨였다. 물을 아껴야 하므로 꿀꺽꿀꺽 마시지도 못하고 입술만 축이곤 계속 걷는다. 사탕을 먹어도, 참나물이나 취나물을 먹으며 해갈을 해도 흐르는 땀이 너무 많아 자칫 탈수증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하지만 가야할 길을 가야 물이 있고 쉬는 곳이 나오니 여기서 멈추면 더 위험할 수 있다. 가야할 길이면 가야한다. 머뭇거려서는 안된다. 서두르지는 않더라도 천천히 가야할 길이라면 가야한다.

속리산 안내도
속리산 안내도 ⓒ 정성필
천황봉까지는 계속 오르막길이어서 힘이 배가 더 든다. 능선과 하늘이 만나는 스카이라인을 보고 얼마 만큼 가면 끝이 나겠구나 생각하고 가지만 올라가 보면 스카이라인은 저만치 물러나 있다. 다시 올라가면 스카이라인은 내가 간 만큼 물러나 심리적으로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 힘든 길을 왜 가고 있을까? 온갖 회의가 밀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하다. 나는 나에게 도전하고 싶다. 나는 나의 삶을 바꾸고 싶다. 나는 나이 사십까지 살아왔던 그 모든 삶에 변화를 주고 싶다.

천황봉 밑 엄청나게 큰 바위 밑에 샘터를 발견한다. 반가워서 물을 마시러 갔더니, 물엔 도룡알이 둥둥 떠 있다. 사실 깨끗한 물이지만, 내 물통에 물도 좀 있고 해서 그냥 가기로 한다. 곧 정상일 것이라는 희망으로 힘을 낸다. 희망이 있음은 힘이 솟는 일이다. 희망 없이 걷는다면 마음도 몸도 지칠 대로 지치고 말 것이다. 그러나 희망이 있으면 마음이 심리적 안정감이 내 몸을 격려해준다.

천황봉에서
천황봉에서 ⓒ 정성필
끝없는 길을 가는 것처럼 절망적인 보행자는 없다. 끝없는 길을 가는 사람에 비해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하루의 끝이 있고, 백두대간의 끝이 있는 분명히 끝나는 지점을 향해 가는 나는 어쩌면 일상의 지루하고 끝없는 반복을 하는 현대인보다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것은 분명하다.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 탈출한 상황이다. 오늘 같이 힘들고 단내 나는 입안 가득 백태가 낄 정도로 몸이 망가져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끝없는 일상을 탈출해 여기 나만의 공간에 이렇게 당당하게 살아있지 않은가? 드디어 속리산 천황봉에 도착했다. 천황봉에서 바라보니 비로봉 신선봉, 입석대, 문수봉까지 다 보인다. 문수봉까지만 가면 물이 있고, 텐트 칠 공간이 있다. 그게 오늘 하루의 끝이고 목표다. 걸음이 가벼워진다.

덧붙이는 글 | 2004년 5월 16일부터 7월 4일까지 무지원 단독 종주로 걸었던 백두대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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