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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녀석이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어떤가요? 무척 애를 쓰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
둘째 녀석이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어떤가요? 무척 애를 쓰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 ⓒ 권성권
아이가 제 힘으로 몸을 뒤집는 것은 사실 놀랄 만한 일이다. 그만큼 컸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웅이가 뒤집은 것은 첫째 딸아이에 비해 그리 놀라울 정도는 아니었다. 첫째 딸아이가 몸을 뒤집을 때만 해도, 첫째 아이라 그런지, 세상이 온통 뒤집어지는 것 같았고 그 자체가 놀랍고 신기했다. 그만큼 둘째는 아무래도 덜하다는 느낌이다.

"여보, 민웅이가 뒤집었어."
"나도 알아요."

"봤어. 언제부터 그랬는데?"
"오늘 아침에요. 당신 나간 사이에 뒤집었어요."

"난 그것도 모르고, 그럼 이야기를 해야지?"
"뭔 경사라구요. 당연히 이쯤 되면 뒤집잖아요."
"그렇기는 하지만…."

그러나 내 딴엔 뭔가 다른 구석이 있을 것 같았다. 첫째 아이와는 달리 둘째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점이 분명 있을 듯싶었다. 허다 못해 뒤집을 때 지르는 소리라든지, 웃는 모습이라든지, 힘들어하는 모습이라든지, 또 뒤집고 나서 만족해하는 모습 같은 것들….

"여보, 민주랑 다른 것은 없었어."
"뭐, 별다른 것은 없었는데요."

"그래도 뭔가 있지 않았어?"
"글쎄요. 민주보다는 목에 힘이 더 들어간 것 같기도 하고…."

"또?"
"그리고 발로 차고 올라가는 것도 좀더 센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또?"
"그리곤 뭐 없어요. 똑같았어요."

이렇게 나란히 누워 있으니 정말로 똑같지요. 이런데도 둘째 녀석이 뒤집는 날 뭔가 다른 것을 기대했으니, 실로 나의 어리석음이 컸어요. '민주야 미안해, 많이'
이렇게 나란히 누워 있으니 정말로 똑같지요. 이런데도 둘째 녀석이 뒤집는 날 뭔가 다른 것을 기대했으니, 실로 나의 어리석음이 컸어요. '민주야 미안해, 많이' ⓒ 권성권
그런 정도라면 딸아이나 사내아이나 뒤집는 데는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민웅이에게 뭔가 다른 것을 기대했다면, 그건 아직도 버리지 못한 남존 사상에서 비롯된 일이 아닐까 싶었다. 사내아이라면 당연히 소리도 좀더 우렁차고, 뒤집는 몸짓도 크게 해야 하고, 좀더 꿋꿋하고 듬직하게 뒤집는, 뭐 그런 것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 모든 것이 웃기는 일들이지 싶다. 사내아이라고 해서 다르고 딸아이라고 해서 다르다면, 그것이야말로 공평치 못한 조물주의 차별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딸아이든 사내아이든 조물주는 분명 차별이 없게 만들었다. 똑같은 사람으로 나서, 똑같은 사람으로 자라, 모두 똑같이 죽음을 경험하게 했다. 그런데도 실오라기 같은 차별을 기대했다면 그건 순전히 나의 어리석은 생각에서 비롯된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태아성별 감지 후 낙태하는 비율이 날로 치솟고 있다. 실로 놀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노인들이 이 땅에 차지하는 비율도 전체 인구에 20%로 점점 올라서고 있으니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태어나는 아이가 없어진다면, 머지않아 우리 사회는 심각한 후유증을 겪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낙태하는 비율을 줄이고, 신생아 비율을 좀더 높이려면 특별한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나 싶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 사회는 생명력 없는 고령화 사회로 급속히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 넷을 둔 어떤 분과 함께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아이를 셋 이상씩 둔 식구들에게는 무상으로 집을 빌려 주고, 대학 등록금도 반값으로 낮추어 주는 제도를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이야기였다.

둘째 아이가 뒤집던 그 날, 왠지 내 기분이 씁쓸했던 것 같다.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분위기가 조금은 많이 가라앉았던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남자 아이를 선호하는 생각에 짓눌려서, 나처럼 뭔가 다른 것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나 않을까 싶어서, 부끄럽지만 나의 속내를 스스럼없이 밝힌 것이다.

아무쪼록 사내아이든 딸아이든 차별 없이 잘 낳아 잘 키워야 할 일이다. 딸아이든 사내아이든 웃거나 우는 모습이 결코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똥오줌 싸는 모습도 그렇고, 우렁차게 내지르는 목소리도 그렇고, 5개월째에 접어들어 제 몸을 뒤집는 모습도 결코 다르지 않고 똑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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