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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삼베 조각 : 청국장을 고이 싼 모양에서 금방이라도 어머니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어머니의 삼베 조각 : 청국장을 고이 싼 모양에서 금방이라도 어머니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 이호준
청국장을 잔뜩 머금은 삼베 조각 : 콩 하나마다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 배어있는 것 같다. 흘러 넘치도록 담은 어머니의 사랑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청국장을 잔뜩 머금은 삼베 조각 : 콩 하나마다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 배어있는 것 같다. 흘러 넘치도록 담은 어머니의 사랑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 이호준
정말 재미있었던 것은 그 삼베 조각이 희한하게도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메주를 쑬 만큼 커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한약을 짜내기에 딱 좋을 만큼 줄어들기도 하니 정말 놀라웠다.

어린 마음에 그 삼베 조각으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메주도 시장에서 사게 되고 떡을 먹을 일도 점점 줄어들면서 삼베 조각을 보는 일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 뒤에 서울에 거처를 마련하고 독립하게 되면서 그 삼베 조각에 대해 거의 잊어버리고 살았다.

그런데 그 뒤에 정말 우연히 그 삼베 조각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아들의 건강을 걱정하고 계시던 어머니가 청국장을 만들어 주셨는데 그때 청국장을 그 삼베 조각으로 싸주신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말이 절로 나왔다.

빛 바랜 삼베 조각 : 아무리 거칠고 낡았어도 이 삼베 조각은 언제나 어머니 냄새가 난다.
빛 바랜 삼베 조각 : 아무리 거칠고 낡았어도 이 삼베 조각은 언제나 어머니 냄새가 난다. ⓒ 이호준
사랑을 머금은 청국장 : 소중한 사연을 담은 삼베 조각에다 사랑을 가득 담은 청국장까지 받게 되었다. 그 삼베 조각에 깃든 사연처럼 어머니를 포근하게 지켜드리고 싶다.
사랑을 머금은 청국장 : 소중한 사연을 담은 삼베 조각에다 사랑을 가득 담은 청국장까지 받게 되었다. 그 삼베 조각에 깃든 사연처럼 어머니를 포근하게 지켜드리고 싶다. ⓒ 이호준
"아, 이 삼베 조각, 제가 어릴 때 어머니가 메주 쑤실 때 쓰던 그거죠!"

어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답하셨다.
"그래 맞다. 이 삼베로 메주도 쑤고 한약도 다리고 그랬었지."

나는 신기해서 재차 여쭤보았다.
"그런데 이거 정말 오래 쓰시네요? 이렇게 오래 써도 끄떡 없나보죠?"

어머니는 잠깐 생각에 잠기시더니 말씀을 이어가셨다.
"사실 이 삼베는 내가 시집올 때 너희 외할머니가 한 두루마리를 챙겨주신 거다. 필요할 때 적당한 크기만큼 잘라서 쓰면 되니 그게 낫다고 하시면서 말이야. 그래서 아껴 뒀다가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잘라서 쓴 거란다."

우리 집으로 이사온 조각 하나 : 어머니의 소중한 기억을 나에게 물려준 귀한 친구.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
우리 집으로 이사온 조각 하나 : 어머니의 소중한 기억을 나에게 물려준 귀한 친구.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 ⓒ 이호준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 갑자기 외할머니의 얼굴이 떠오르며 마음이 아련해졌다. 외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시집가는 딸을 위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셨을까. 그리고 어머니는 그 삼베 두루마리를 조금씩 잘라 쓰면서 외할머니를 얼마나 그리워하셨을까.

그 사연을 들으며 그때서야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았다. 늘 우리 곁에 있었던 삼베 조각은 사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받은 두루마리에서 조금씩 잘라다 쓴 거였다. 모양이 같으니 나는 항상 같은 삼베 조각인 줄 알았고 크기가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놀라운 기능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머니가 일흔 가까운 인생을 살아오시면서 고이 간직해 오신 그 사연을 나눠가질 수 있었다는 데 대해 나는 정말 감사한다.

손자와 함께한 어머니 : 자식을 품어주던 그 손길로 이제는 손자를 따뜻하게 감싸주신다. 자식들에게 퍼주신 사랑만큼 앞으로도 더욱 건강하시길 소망한다.
손자와 함께한 어머니 : 자식을 품어주던 그 손길로 이제는 손자를 따뜻하게 감싸주신다. 자식들에게 퍼주신 사랑만큼 앞으로도 더욱 건강하시길 소망한다. ⓒ 이호준
언젠가부터 어머니는 삼베 조각들을 하나씩 자식들에게 딸려 보내고 계신다고 했다. 나는 그 삼베 조각을 통해 어머니가 외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사랑을 자식들에게 나눠주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받은 삼베 조각을 소중히 간직할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내 아이가 컸을 때 나도 어머니처럼 그 삼베 조각을 아이에게 보물처럼 건네주면서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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