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국군의 날인 10월 1일(토요일) 아침, 작은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막내야, 오늘은 사리라서 물이 많이 빠지니까 큰형님 모시고 민이와 게 잡으러 가자! 그리고 도구는 각자 챙겨서, 나중에 우리 집에서 만나자!"

무엇이 필요한지 막막해서 나는 손전등 2개만 챙겼습니다. 그런데 작년 이맘때쯤 삼천포 신도로 낚시를 가서 아이들과 생선내장으로 작은 게를 잡았던 생각이 문득 났습니다. 아내는 '생선은 없고, 마침 국 끓이고 남은 것이 있다'며 오징어 다리를 서너 개 건네줍니다.

마산 진동을 지나 한참을 가다보면 '고성 동해면'이라는 이정표가 나타납니다. 다시 그 길을 따라서 쭉 가다가 새로 놓인 마산 진동과 고성 동해면을 잇는 동진연륙교를 건넙니다. 해변도로의 옆에는 밤낚시를 즐기는 강태공의 차량들이 드문드문 주차되어 있습니다. 그 곳을 지나자마자 왼쪽 바닷가에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손전등으로 바다를 비추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입니다. 사람들은 머리에 전등을 부착하고 도로 위에서 뜰채로 잽싸게 바다 속의 게를 낚아챕니다. 그런데 우리는 뜰채를 준비하지 않아 낭패가 났습니다. 예상과는 달리 물도 제법 깊어서 그냥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이 준비한 오징어를 내놓자, 큰형님은 급히 주위에서 꼬챙이를 하나 주워 그 끄트머리에다 오징어 다리를 걸어 낚싯대에 매달았습니다.

▲ 민꽃게잡이 낚싯대(끝에 오징어다리를 매달았다)
ⓒ 한성수
"오늘 우리가 잡으려는 게가 돌게(민꽃게)인데, 다른 게는 사람을 보면 피하는데 이 놈은 집게발을 쳐들고 위협을 하는, 힘이 세고 성질이 사나운 놈이다. 또 한 번 집게발로 물면 놓아주지 않아서 큰놈에게 물리면 피가 철철 나는 경우도 있는 독종이란다."

예순이 훨씬 넘으신 큰형님은 또 예순이 넘으신 작은형님과 우리들에게 주의를 줍니다. 민꽃게는 지방에 따라 박하지, 벌떡게, 방칼게(빤장게), 돌게(독게) 등으로 불리는데, 꽃게보다 살은 없지만 담백해서 주로 게장을 담가 먹는다고 합니다. 나는 작은 형님이 가져온 면장갑을 끼고, 그 위에 다시 코팅장갑을 꼈습니다. 이제 조금 둔하지만 적이 안심이 됩니다. 낚시도구가 둘뿐이어서 작은형님과 민이 부자, 큰형님과 내가 각기 조를 이루었습니다.

▲ 방파제에서 탐색에 열중인 부자
ⓒ 한성수
우리는 방파제 둑에 앉아 손전등 불빛으로 돌 사이와 바닷물 밑을 훑듯이 비춥니다. 물 밑에는 불가사리가 잔뜩 붙어 있습니다. '어패류를 사정없이 먹어치우는 저 바다의 포식자'가 너무 많아서 마음이 우울합니다. 손전등을 비추자 불가사리 옆에 게가 있습니다. 게 옆에다 조심스럽게 오징어 다리를 갖다 댑니다.

▲ 게 가까이, 더 가까이(불가사리가 조밀하게 붙어있다)
ⓒ 한성수
오징어다리에 대한 민꽃게의 반응은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아예 도리질을 치면서 바다 깊숙이 내려가거나 돌 속으로 숨는 부류입니다. 이들을 유인하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요구됩니다. 오징어다리 하나를 잃는 불상사(?)가 있더라도 참아야 합니다. 섣불리 들어올리다가는 그대로 줄행랑을 치기 일쑤입니다.

▲ 민꽃게가 미끼를 건드린다
ⓒ 한성수
다른 부류는 우선 사정없이 오징어다리를 베어 뭅니다. 이제 아주 천천히 힘을 가하면서 끌어당깁니다. 그러면 게는 집게다리로 미끼를 잡은 채로 바닥이나 수초, 심지어 불가사리를 잡고는 작은 다리로 버팅기면서 힘겨루기를 시도합니다. 이때에도 무리하게 당기면 미끼를 놓고 도망을 치므로 주의를 요합니다. 잠깐의 실랑이 끝에 마침내 게가 바닥에서 떨어져 나옵니다. 그러나 아직 좋아하기에는 이릅니다.

▲ 드디어 미끼를 문 민꽃게
ⓒ 한성수
낚싯대를 물 밖으로 쭉 들어 올리면 물 속과 바깥의 기압차이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십중팔구 게는 집게로 잡은 미끼를 놓으면서 물 속에 '퐁' 빠져버립니다. 또 물 속에서 잡으려고 허둥거리면 게가 도망치는 속도가 사람들의 손보다 빠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도 몇 번이나 '다 잡은 게를 놓치고 빈 장대만 쳐다보는' 실패를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해결 방법을 찾았습니다.

게를 서서히 당겨 물 위에 띄운 후, 물 속으로 손을 뻗는 대신에 미끼를 수면 바로 위에 살짝 올립니다. 게는 살길이 생겼다는 듯이 기장 먼저 바닥을 움켜잡습니다. 그리고 집게로는 부지런히 오징어다리를 끊으려고 시도합니다. 바로 그 순간에 서서히 접근해서 두 손으로 덥석 게를 움켜쥡니다. 그러나 아직도 '게 잡이'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손바닥만한 게는 몸통을 돌려 집게발로 사정없이 장갑을 뭅니다. 장갑을 세 켤레나 꼈는데도 가벼운 통증이 느껴집니다. 만약에 맨손으로 잡다가 물리면 아픈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피가 철철 난다'는 말이 빈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손가락의 절반을 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를 넣은 쌀자루가 꽤 소란스럽습니다. 이미 시계가 세 시를 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잡은 민꽃게를 세 몫으로 나누었습니다. '큰형님과 작은형님 댁은 게장을 담아서 드시겠지만 우리 집은 된장찌개만 몇 번 끓여 먹으면 된다'고 해도 큰형님은 우리 집 몫에 막무가내로 더 넣습니다. 옆자리에서 낚시하던 사람은 우리들의 게 낚시를 신기한 듯 구경하다가 '좋은 추억이고, 좋은 형제들입니다'란 말로 부러움을 표현합니다.

▲ 우리가족 몫
ⓒ 한성수
우리 형제는 새벽을 가르며 다시 도회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열린 차창 사이로 찬 새벽공기가 우리의 가슴들을 훑으며 지나갑니다. 하늘에 별들이 쏟아질 듯 매달려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