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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아침의 스타' 이다 도시
'조용한 아침의 스타' 이다 도시 ⓒ 박영신
우리나라에서야 과묵하면 무게 있는 것으로 오인되지만 프랑스에서 과묵은 '할 말이 없는 사람' 혹은 '매력 없는', '흥미롭지 못한' 사람으로 오인된다.

'조용한 아침의 스타' 이다 도시

여기 우리에게 낯익은 '수다쟁이' 프랑스인이 있다.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 피가로>의 표현을 빌면 프랑스의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보다, 프랑스의 인기 여배우 소피 마르소보다 한국에서 더 유명한 프랑스인, 바로 방송인 이다 도시(36).

지난여름 <르 피가로>가 기획연재한 '외국에서 성공한 프랑스인' 7번째 인물로 선정된 이다 도시는 같은 신문 8월 1일자 지면을 통해 '조용한 아침의 스타'로 대서특필돼 이제는 프랑스에서도 알아보는 사람이 제법 있을 정도다.

9월의 마지막 날인 30일 저녁 7시, 이다 도시가 서울이 아닌 파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파리에 있는 38개 외국 문화원들의 축제인 '외국문화 주간'이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2일까지 열리는 가운데 주불한국문화원(원장 모철민)은 '이다 도시와의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다.

파리에 살고 있는 교포를 비롯 한국에 관심이 있는 프랑스인들이 주불한국문화원 강당을 빼곡히 채운 이날의 '특별한 만남'은 이미 몇몇 국내 언론을 통해 알려졌으나 이 소식을 접하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간략하게 소개한다.

2001~2003년까지 프랑스 국제뉴스 전문 라디오 <에르에프이(RFI)> 서울 특파원을 지낸 나탈리 투레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만남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투레의 비판적인 시각과 이다 도시의 애정 가득한 시선이 교차하며 묘한 긴장을 연출했다.

투레는 지난해 한국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베일을 벗는 한국>이라는 책을 낸 바 있다. 이것은 프랑스에서 출판된 한국 관련 서적 중 가장 최근 판이라는 점 외에도 '386 세대', 통일 문제, 노조, 입양 등 민감한 문제와 가정을 중심으로 한 한국인의 삶, 음식, 음주, 접대문화 등을 심도 있게 조명한 저서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인과 결혼해 토크쇼, TV 광고 등에서 왕성한 방송활동을 하고 있는 이다 도시의 이력을 간추려 소개한 투레는 스노브(속물)하거나 오만한 파리지엔느의 클리셰(진부함)를 벗어 던지고 '서구의 전통을 강요하지 않는' 자연스러움과 활달함을 바탕으로 한국인에 다가선 게 이다 도시의 성공요인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이다 도시는 "한국 여성들이 나를 질투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사랑받을 수 있었다"고 호탕한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한국은 마초의 나라...그러나 남자들은 다정하다"

"내가 왜 중국이나 일본이 아닌 한국을 선택했을까. 한국은 아시아의 이탈리아라고 말한다. 한국인들은 성격상 문제가 생기면 화를 내고 문제를 풀려고 한다. 기쁘면 마음껏 웃고 슬프면 전율에 떨며 울기도 한다. 표현에 인색하지 않은 한국인은 이탈리아인과 비슷하다."

라디오 'RFI' 기자 나탈리 투레, 3년 간 서울 특파원을 지낸 인연으로 이날 사회를 맡았다
라디오 'RFI' 기자 나탈리 투레, 3년 간 서울 특파원을 지낸 인연으로 이날 사회를 맡았다 ⓒ 박영신
"내게는 일본인 친구가 없다. 일본인을 만나면 그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일본인들이 '예스'라고 말할 때 정작 속으로는 '노'를 외치고 있지 않을까, '노'라고 할 때는 '예스'가 아닐지 불안하다. 한국인들은 순간의 반응을 즉각 알 수 있다. 웃다가도 잠시 후에 싸울 수 있고 또 즉시 끌어안고 울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한국에 집착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인천공항 개통과 한일 월드컵,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등 일련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열거할 때 이다 도시는 '대~한 민국'을 외치고 손으로는 단상을 두드리며 흥을 돋우기도 했다.

일단 프랑스인들이 한국에 대해 물어볼 때 빠지지 않는 질문이 '여성의 지위' 만큼이나 가부장적인 '한국 남자'에 대한 것.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오른 이 질문에 대해 이다 도시는 "한국이 마초의 나라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면서도 "그러나 한국 남자들이 매우 다정하다"고 귀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처럼 뜨거운 한국 사랑을 열변한 이다 도시도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몸소 체험한 고부갈등, 시집살이, 명절 차례상 차리기에 얽힌 일화를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한국 '며느리'들이 갖는 애환이 오롯이 묻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을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낳은 지금은 모든 것이 순조롭다"며 재치를 뽐냈다.

"프랑스인에 흰 피부를 가진 건 내게 행운이었다"

"내가 프랑스인이고 '백설공주'처럼 하얀 피부를 가졌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국제결혼을 보는 한국인의 시각에 대한 질문이 나왔을 때는 '솔직히 말해 한국에서 피부색의 문제는 현실'이라며 한국의 인종차별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했는데 이 같은 발언이 과장이라고 반론을 제기하는 한 교포에게 던진 이다 도시의 대답은 단호했다.

"현재 국제결혼의 사례가 늘고 있고 그사이 많은 인식의 변화가 있기는 하나 '프랑스와 마찬가지로’한국에도 엄연히 인종차별주의는 존재한다. 현재 한국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대표적인 외국인은 두 명인데 미국인 한 사람(하일씨를 지칭하는 듯)과 바로 본인이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둘 다 백인이다."

"오래 전 한국에서 본 광고 한 편을 예로 들고 싶다. 남아선호사상을 꼬집는 캠페인이었는데 지하철역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던 이 광고에서 사모관대 차림에 어색한 표정의 새 신랑 뒤로 전통 혼례복을 입고 가마에 오른 신부는 '흑인'여성이었다. 태아의 성감별을 통해 딸일 경우 낙태하는 사례가 허다해 나중에는 흑인 여성을 며느리로 맞는 '불상사'를 피할 수 없음을 경고하는 광고였다.

내 흑인 친구에 얽힌 웃지 못할 일화도 있다. 오래 전에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있었던 일인데, 수영장에 간 흑인 친구가 물 속으로 뛰어드는 순간 물 속에 있던 한국인들이 일제히 밖으로 빠져나와버렸다고 한다. 한국을 향한 내 모든 애정에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겠나."


국제결혼 사례는 나날이 증가하고 그에 대한 인식변화도 빠르지만 자신이 결혼을 할 당시만 해도 한국인들이 떠올리는 국제결혼의 대상은 주한미군이었다고. 통일교를 통한 결혼을 제외하면 서양인 여자와 한국인 남자의 결혼이 결코 흔한 일은 아니었다고 이다 도시는 회상했다.

앞서 언급한 <르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내 아이들은 한국에서 살 것이나 나는 노후를 한국에서 보내고 싶지 않다'고 밝혔던 이다 도시가 한국의 '빠른' 삶이 맘에 들고 행복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장성하고 내가 늙어갈 때는 여유도 부리면서 느리게 살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미래를 설계하는 것으로 이날의 만남은 막을 내렸다.

"한국 여성들이 나를 질투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 사랑받을 수 있었다" 이다 도시(왼쪽)와 나탈리 투레
"한국 여성들이 나를 질투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 사랑받을 수 있었다" 이다 도시(왼쪽)와 나탈리 투레 ⓒ 박영신
이다 도시는 한국판 아멜리 뿔랭?

지난 93년 인턴사원으로 한국에 첫 발을 디딘 뒤 유명 방송인이 되기까지 우여곡절과 각별한 한국 사랑을 과시하는 시간으로 장식된 이날의 만남은 이다 도시 특유의 익살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한국을 알고 싶어하는 프랑스인을 대상으로 좀더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한국의 정치상황을 묻는 질문에 "정치에 관심 없다"고 일갈하거나 한국의 빈곤계층에 대한 돌발 질문을 던진 오스트레일리아 기자를 향해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한국에도 빈곤층은 존재하지만 프랑스처럼 거리의 부랑자나 걸인들을 볼 수는 없다" "한국인들은 잘 산다" "소비가 왕성한 나라"라는 등 피상적인 대답으로 일관해 실소를 자아냈다.

실례로 한국의 '빨리빨리 병'을 지적한 투레를 향한 이다 도시의 대응은 다소 과장스럽기까지했다.

"활동적이고 끓어오르는 한국인의 특성이 맘에 든다. 한국을 떠난 외국인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도 바로 이 점이고 다시 프랑스의 리듬에 적응하는데 적잖은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속도전이다. 만약 당신의 컴퓨터가 고장이 났다고 가정해 보라. 기사를 부르면 쏜살같이 달려오는 곳이 한국이다."

한 나라를 알기 위해 단 하나의 시각만 통한다면 오해가 생길 가능성도 크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나라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면 그 오해는 치명적이다. 여기에서 미지의 나라는 한국이며 한국을 말하는 '하나의 시각'은 이다 도시다.

이다 도시는 어쩌면 한국에 개봉돼 프랑스의 이국적 정취를 알리는 한편 '파티스리(프랑스식 달콤한 과자) 영화'라는 핀잔을 사기도 했던 <아멜리에>(장 피에르 주네, 2001) 주인공의 한국판 재현이었는지도 모른다. 빈곤과 소외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대 사회에서 '세상의 모든 사람은 아름다워', '인생은 아름다워'를 부르짖는 순진하고 귀여운 여자 아멜리 뿔랭 말이다.

한국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흥미있게 들려줬음에도 이다 도시의 이야기가 한국관광공사에서 제작한 '한국방문의 해' 광고 비디오를 연상시키는 이유다. 물론, 장소가 주불한국문화원이었고 유난히 많은 한국 언론이 참가한 자리였기 때문에 이다 도시의 발언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국 언론사 기자들을 마주하고 또 한국을 알리기 위해 기획된 자리에서 준비되지 않은 비판을 내놓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게다가 사소한 '실언' 하나만으로도 무수한 '안티'를 양산해내는 한국의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이다 도시가 비판의 말을 아낀 것은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정치, 사회, 문화를 동시에 체험한 사람으로서 '역동적인 나라', '만사가 순조롭게 돌아가는 나라', '모든 사람이 친절한 한국' 등 화려한 수사로만 일관할 게 아니라 한국에 대한 좀더 의미 있는 분석을 보여줄 수는 없었을까. 적어도 이날 그녀를 만나러 온 이들에게 이다 도시 스스로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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