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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말아톤'으로 유명한 김진호(19·부산체고 2년)의 입국을 보기 위해 인천공항을 찾았다. 김진호는 체코에서 열린 세계장애인 수영대회에서 금, 은, 동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뤘고, 특히 배영 200m에서는 세계기록을 3초 이상 앞당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공항에는 이미 수 십 명의 취재진이 몰려와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프라하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공항에 내리고 1시간쯤 지나자 어머니 유현경(44)씨와 함께 진호가 웃음 가득한 얼굴로 출국장을 빠져 나왔다.

ⓒ 배우근
그가 나오자마자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순간 진호는 움찔 놀라며 당황했지만 곧바로 미소 띤 얼굴로 취재진을 응시했다. 나는 자폐증세가 정확하게 어떤 것이지 잘 모르지만, 얼핏 보기에 진호는 잘 생긴 청년으로만 보였다.

출국장을 빠져 나오던 김진호는 여러 겹을 이룬 취재벽을 뚫고 나올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중간에 걸음을 멈췄고, 취재진의 요구에 따라 여러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순진한 웃음을 지으며 시키는 대로 포즈를 취하는 진호에게서는, 일반적인 유명인이 가지고 있는 알량한 자존심과 거드름이 보이지 않았다.

ⓒ 배우근
그래서인지 취재진은 마구잡이로 달려들어 여러가지 포즈를 요청했다.

"이쪽으로 와라, 저쪽으로 가라, 이쪽을 봐라, 금메달을 물어봐라, 메달을 전부 들어서 보여달라, 조금더 환하게 웃어봐라, 이쪽 보고도 해 달라, 메달을 들고 키스해라"

상호간의 존재를 확인하는 기본적인 인사나 안부의 일차 방어선이 생략된 채, 취재진은 진호를 전부터 알고 있는 사이처럼, 아니면 어린 아이를 대하듯 너무나 편하고 쉽게 자신의 요구 사항을 쏟아냈다. 각 언론사에서 나온 그들에게는 진호를 배려하는 인간성보다는 자신들의 마감에만 매진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진호는 자발질하듯 반복되는 요청을 순한 양처럼 자분자분 이행했고, 그의 이마와 인중에 송글송글 맺혀 있던 땀은 어느새 비처럼 흘러 내렸다. 취재 대상자에게 '자폐'라는 장애가 있음을 뻔히 알고 있으면, 정상인보다 더 편하게 대해 주고 적당한 선에서 물러나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까탈스런 인터뷰는 계속해서 이어졌고, 진호는 공항 로비에 서서 끊임없이 치고 들어오는 마이크과 번쩍이며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를 손사래 없이 소화해야 했다. 그렇게 빈틈 없이 둘러쳐진 성곽처럼 취재진은 만족할 때까지 새근발딱거리며 힘들어 하는 진호가 빠져나갈 빗장을 열어주지 않았다.

열띤 취재 경쟁을 벌이는 취재진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진호의 얼굴은 무척이나 순수하고 천진하게 보였다. 얼이 굴러다니는 곳이 얼굴이라면, 진호의 얼굴에는 순수하고 맑은 영혼이 거울처럼 드러나 보였다.

일반인에 비해 조금은 모자란다고 생각했던 자폐아, 하지만 수십 명의 취재진이 보인 무례에도 불구하고 성심을 다해 질문에 답변하고 포즈를 취하는 진호가 내 눈에는 훨씬 성숙하고 이윽한 사람처럼 보였다.

숲을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보다 숲속 깊숙이 빠져 들어가 천천히 거니는 사람이, 더욱 숲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처럼,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자폐아는 어쩌면 각박하고 각다분한 삶에 내몰리는 현대인보다 훨씬 자신을 사랑하고 잘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어렴풋이 생각이 들었다.

ⓒ 배우근
자폐(自閉)라는 단어의 의미 또한 <자신을 닫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현대인은 스스로를 닫고 있고 그 정도의 차이만 있다고 할 수 있기에 오늘날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은 어느정도 자폐증세를 가지고 있고, 그것은 나또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폐증세는 사회적 관계와 의사소통 능력이 결핍되어 타인과 주변 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발달장애일 뿐이지 빠르게 눈알을 굴리며 스스로를 은폐하고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는 우리보다 훨씬 인간적일 수 있다.

ⓒ 배우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자폐는 일종의 정신지체로 인식되었고 정상인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철저히 배제되고 배척되었다. 자폐아는 정상인이 생활하는 울타리 밖으로 밀려 나갔다.

그런 사회적 현실 때문인지 진호 역시 중학생 때 수영대회에서 입상을 하며 훌륭한 성적을 거뒀지만, 일반학교의 진학이 무수히 거부되었고, 결국 서울을 떠나 진호를 받아주는 부산까지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장애는 멀리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누구나 해당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장애는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내가 사고를 통해 당사자가 될 수 있고, 내 자식이 장애아로 태어날 수도 있고, 친구나 친척의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호처럼 장애아로 태어난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는가.

하지만 단지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장애인은 장애인끼리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생활하게 되었고, 그 속에서 장애인은 자신들은 다르다는 피해의식으로 스스로를 가두게 되었다.

만약 장애인을 정상인과 함께 섞어 놓으면 자신이 가진 장애로 인해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장애인 역시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이다. 태어났으면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반드시 있기에 차라리 정상인 속에서 나는 너와 다르다는 상처를 직접 느끼고 극복하는 것이 훨씬 적극적인 해결 방법이다.

또한 정상인도 옆에 있는 장애인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삶과 함께 자신과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을 체험하게 된다고 생각된다.

ⓒ 배우근
취재진의 요구에 따라 수십 번씩 금메달을 입으로 깨무는 진호를 바라 보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장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자페가 스스로를 닫는 것이라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폐를 앓고 있고, 단지 진호는 그것을 조금 더 통제하지 못하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호의 조금은 어설퍼 보이고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를 성처럼 옭아매고 있는 취재진의 벽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금메달을 멋지게 자랑질하지 못하고 순진하다 못해 허부죽하게 보여지는 진호의 투미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그를 보면서, 봄에 피어난 코스모스의 안타까움이 느껴졌고 세상을 잘못 선택한 슬픈 향이 짙게 배어났다. 그리고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죽기를 바란다는 장애아를 가진 어머니들의 옹이진 외마디가 귓가에 맴돌았다.

ⓒ 배우근
하지만, 진호는 자신이 좋아하는 수영에 온 몸을 던져 매진했고 세계 정상의 자리에 섰다. 그래서 지금 수많은 조명을 받으며 서 있고 그 옆에는 언제나 함께 한 어머니 유현경씨가 함께 하고 있다.

인생의 룰이 정형화 되어 있지 않듯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도 정해져 있지 않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의 정당성을 외치듯이 각자 나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면 된다. 모든 생명에는 제 나름의 필연성과 이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함부로 진호를 포함한 장애우를 판단할 수 없다.

단지 바람이 있다면 가난이 죄가 되고 돈이 없는 것이 부끄러운 된 우리네 사회에서, 진호와 같은 자폐증을 가진 장애자가 경제적인 부담없이 치료를 받고, 색안경을 낀 시선 없이 올바르고 체계적인 교육을 평생 받을 수 있는 교육시설이 완비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고통 분담 없이 고통을 전담시키며 빈익빈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돈 없는 장애인의 가족들의 고통과 절망이 깊어지지 않기만 바란다.

▲ 신문에 마감한 진호의 사진이다. 자폐증세를 가진 진호가 금메달을 따냈다는 신기함이 아닌, 평범한 우리의 친구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마중나온 가족을 향해 팔로 하트를 만드는 자연스런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자랑질 하듯 금메달을 보여주는 사진이 아닌 순수하고 맑은 진호의 모습이 내 눈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 배우근
내년 전국체전에 출전해, 진호가 일반선수와 당당히 겨뤄 8강에 들기를 바란다는 진호 어머니의 웃음 뒤에 보이던 오기.... 그동안 세상의 편견에 대항해 당알지게 싸워 온 그 오기가 느껴지던 눈동자가 울멍지듯 잊혀지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직접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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