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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학교여, 춤추고 슬퍼하라>
책 <학교여, 춤추고 슬퍼하라> ⓒ 이채
24년 간 교육계에 몸담고 24살이 되던 해에 남편을 잃고 두 아이를 양육했던 샐리 다운햄 밀러. 그녀는 남편이 죽던 날 자신의 인생이 180도 변했다고 고백한다. 어둠 속에 홀로 남겨졌으나 학교로 돌아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그녀는 슬픔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 왔다.

“1970년대 말이 되어서야 우리는 자신의 슬픔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홀로 슬픔을 겪어 나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슬픔에 빠진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곳에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더 이상 혼자라고 느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겠지요.”

이렇게 슬픔을 극복하는 치유사 역할을 자청하면서 학교를 운영하게 된 샐리 선생님. 그녀가 말하는 슬픔 치유의 방법은 우선 슬픔에 빠진 사람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슬프지 않은 체 하는 대신 슬픔을 받아들이는 것, 슬픔은 고통스럽지만 삶의 자연스런 부분이라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 또한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 중 몇 가지에 해당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남자들은 눈물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슬픔에 빠져도 슬프지 않은 척 해야 할 때가 많다. 저자는 그런 행동은 오히려 마음을 병들게 하고 슬픔을 치유할 수 없게 만들어 더 나쁜 결과를 불러 온다고 충고한다. 슬픔을 받아들이고 이를 삶의 일부로 수용할 때에 비로소 한 인간의 삶은 질적으로 나아질 수 있다.

책의 제목에서처럼 ‘애도하는 시간과 춤추듯 기쁜 시간’은 쉽게 측정하거나 분리될 수 없으며 그저 우리 삶 속에서 상호 작용한다. 따라서 이 모든 심리적 상태와 감정이 혼합된 한 인간의 삶을 인정해야만 우리는 슬픔을 극복할 힘을 얻는다. 기쁨과 슬픔의 감정은 모두 소중한 것이며 그것을 수용할 때에 한 개인은 좀더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울음 또한 치유의 효과가 있다. 강한 울음의 충동이 있을 때에는 오히려 슬퍼하는 것이 더 낫다. 그것을 꾹 참고 지내면 그 슬픔은 절대 긍정적 방향으로 승화되지 못한다. 자신의 슬픔이나 우리 곁을 떠난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터부는 옳지 못하다. 좋은 상담자는 슬퍼하는 이의 곁에서 지속적으로 그의 눈물과 호소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깊은 슬픔에 빠지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저자는 슬픔이란 것이 가끔 추억을 파고 들어가 부풀려질 수 있다고 경계한다. 지금 이 순간의 슬픔 때문에 인생 전체가 슬픔과 상실에 휩싸이기도 하고, 그러한 마력은 무척 강하여 우리를 연약하게 만들어 버린다. 따라서 슬픔의 소용돌이에 빠진 이들에게 자신의 곁을 떠난 이와의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특히 세상을 떠난 사람에 대한 죄책감은 많은 이들이 느끼는 슬픔의 일부이다. 저자는 슬픔과 동시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죄책감은 ‘계속해서 발을 헛디디게 하는 수렁’과 비슷하다고 단언한다. 즉 우리 안의 죄책감을 꼼꼼히 살펴서 이를 인정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고 나면 죄책감과 다른 정상적인 슬픔의 반응에 대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슬픔의 고통은 죄책감, 후회, 그리움 그리고 슬픔과 함께 우리를 정화시켜 준다. 슬픔의 고통은 일순 불편하지만, 그 슬픔의 파도는 삶에 달콤한 맛을 가져 오기도 하고, 남겨진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진’ 이들에게 존경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기억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책에는 다양한 사례들을 들어 저자와 그녀의 학교 선생님들이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어떻게 치유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슬픔은 시간이 가면 극복된다고 하지만 사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난 보낸 이들에게 이런 말은 헛된 메아리에 불과하다. 슬픔이 극복되기보다는 오히려 가슴 깊은 구석에 남는다고 해야 할까.

떠나 보낸 이에 대한 기억이 처음에는 깊은 슬픔과 죄책감, 후회, 그리움 등으로 나타나겠지만 나중에는 좋은 기억으로 남는 부분이 꽤 많을 것이다. 저자가 의도하는 슬픔의 치유 방법도 바로 그런 것이다.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을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슬픔을 승화시키고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하는 것. 하지만 지금 당장 누군가를 떠나 보낸 사람들에게 그 치유 방법이 큰 효과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은 상실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슬픔은 상실에 대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것, 자신을 파괴하는 대신 사랑과 봉사라는 긍정적인 행동을 통해 상실의 빈자리를 채우기’ 등은 이성적으로 볼 때에는 매우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슬픔과 상실에 빠진 사람들 중에 이와 같은 긍정적 스텝을 적극적으로 밟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래서 이런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군가의 손길이 간절히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학교여, 춤추고 슬퍼하라 - 이채로운 시리즈 5

샐리 다운햄 밀러 지음, 김진원 옮김, 이채(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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