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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귀뚜라미가 온다>
책 <귀뚜라미가 온다> ⓒ 문학동네
사람들은 흔히 비정상적인 사랑의 모습을 '변태스럽다'고 말한다. 도대체 변태스러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는 무엇일까? 네이버 사전 검색을 해 보니 '변태'라는 항목의 네 번째에 '변태 성욕'의 준말이라고 나온다. 이 단어에는 '본능의 이상(異常)이나 정신의 이상으로 나타나는 변질된 성욕'이라는 설명이 되어 있다.

그렇다면 본능의 이상, 정신의 이상의 수위는 어디까지일까? 사실 정상적인 사랑과 비정상적인 사랑의 경계를 엄밀히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순전히 주관적인 판단과 사회적인 잣대에 의지한 애매모호한 경계일 뿐인 것이다. 예를 들자면 과거엔 변태로 치부되었던 '동성애'가 이제는 어엿한 성 문화로 자리잡은 것은 결국 정상과 비정상이 아주 미묘한 한 치 차이임을 증명한다.

책 <귀뚜라미가 온다>는 정상적인 사랑과 비정상적인 사랑의 경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단편 소설집이다. 전체적인 소설들이 모두 특이한 사랑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과연 '이 시대의 사랑은 이렇게 슬픈 모습이어야 할까'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이 책에 대한 평가에서 "데뷔작 <광어>에서 근작 <배꽃이 지고>에 이르기까지 백가흠의 모든 소설들은 다 사랑 이야기였다. 다만 그 사랑의 방식이 기이했을 뿐인데, 피학적 헌신, 가학적 폭행, 강간, 신성 모독 등이 백가흠의 주인공들이 주로 택한 방식이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독특한 방식으로 사랑 이야기를 풀어가는 백가흠의 문체는 매우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진행된다. 소설의 소재도 특이하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작가의 솜씨는 보통이 아니다. 2001년 신춘문예 당선작 <광어>는 횟집 주방장으로 일하는 남자의 편향적 사랑 이야기이다.

술집 여종업원을 사랑하여 그녀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남자. 그는 선량하면서도 순수한 사랑의 소유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어를 뜨는 그의 손놀림은 놀라울 만치 정교하고 예리하기만 하다. 마치 그가 현실에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날카로운 사랑을 꿈꾸는 것처럼….

"회를 치려면 칼이 제일 중요하다. 모든 것은 내 손이 하는 것이 아니라 칼이 한다. 살을 바를 때는 칼의 느낌이 중요하다. 가시, 그놈들의 뼈 위로 살짝 살을 남겨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시에 칼을 붙이고 살을 바르면 그놈들도 고통스러워하기 때문에, 살을 살짝, 아주 살짝 남겨 놓아야 한다. 그러면 그놈들 대부분이 자기가 회쳐지고 있는지 모르게 된다."

생각은 날카롭고 예리하나 직접적인 현실의 모습은 어설프기만 하여 자신의 짝사랑에게 속임을 당하는 주인공. 바보 같은 주인공의 모습은 비단 이 작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매일같이 아들에게 매를 맞는 달구의 어머니('귀뚜라미가 온다' 중에서)나 남편 대신 몸을 팔아 돈을 버는 여자('밤의 조건' 중), 과수원 집 주인에게 성상납을 하는 장애인 여성('배꽃이 지고') 등 작품의 인물들은 하나 같이 모자라고 피해를 당하는 사회적 약자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와 같은 삶을 그저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그들을 괴롭히는 가해자가 있다. 어머니를 때리면서도 죄책감 하나 못 느끼는 아들 달구, 아내를 때리며 성적 희열을 느끼는 남편, 장애인 여성을 일꾼으로 고용하여 성적 노리개로 삼는 과수원집 주인까지. 피해를 입히는 사람들은 피해당하는 이들의 고통을 마치 즐거움처럼 여기고 산다.

소설 전반에 나타나는 이런 '비정상적인' 성적 표출들은 과연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도록 한다. 세상에는 기이한 모습의 삶이 너무도 많다는 것, 그것이 우리 눈에 띄지 않을 뿐 어느 숨겨진 곳에서 '비정상'의 행동들은 일어나기도 한다는 사실.

백가흠의 소설이 보여주는 이 모든 어두운 현실은 독자로 하여금 세상의 치부(恥部)를 들여다보게 한다. 흔히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나 우리가 결코 '보고 싶지 않은' 아름답지 못한 세상의 어두운 단면들을 말이다. 그러기에 그의 소설은 현실적 가치를 획득하고 독특한 위치를 고수할 수 있다.

그의 첫 단편집인 <귀뚜라미가 온다>는 문체나 묘사, 표현력 면에서 백가흠이라는 작가 고유의 개성이 살아 있다. 그의 다음 작품집이 어떠한 형태일지는 모르겠으나, 처녀작을 뛰어넘는 개성과 사회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담긴 독특한 작품들이기를 기대해 본다.

귀뚜라미가 온다 - 개정판

백가흠 지음, 문학동네(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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