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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픽업나온 호텔직원
공항픽업나온 호텔직원 ⓒ 이세규
공항에서 사진을 찍고 앞뒤로 가득한 베낭을 메고 다니는 유럽인들을 진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그럴듯한 맵시의 아오자이를 입고 활보하는 여인들 택시기사들을 보며 여유를 부려본다. 나오기로 한 한 명이 나오지 않아서 슬슬 심심해 진다. 베트남을 오가며 사업하는 친구가 준 5000동이 있다. 주머니에 5000동으로 무얼 사먹을 수 있나 시도해보기로 한다. 매점에 갔더니 물 한 병이 6000동이다. 그 외 스낵 및 아이스크림은 8000동부터 시작한다. 오호 통재라. 결국 입맛만 다시고 돌아왔다.

1시간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으니 뭔가 이상하다. 네 명이 힘을 합쳐 도저히 더는 못기다리겠다고, 우리 먼저 가겠다고 손짓 발짓. 제 3자 영어통역을 하니 당황한 눈빛의 직원이 갈등하더니 결국 가잔다. 택시 타고 숙소로 향한다.

그린사이공호텔. 호치민 토박이 사장님이 매우 친절하다. 혹자는 간섭이 심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것저것 원하는 것들에 대한 정보도 알려주고 분위기나 보안상태. 심지어 길건너는 법(이거 매우 중요하다. 섣불리 그냥 당황하면 사고가 날 위험이 매우 크다)까지.

호치민시의 거리풍경
호치민시의 거리풍경 ⓒ 이세규
오후 5시 정도에 짐을 풀고 시내로 나간다. 이미 사장님께(파파김이라 불린다) 3번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는 방법을 듣고 나왔다. 소매치기 주의, 중요물품은 꼭 들고 다닐 것, 길 건널 때는 나란히 횡대로 건널 것 등 잔소리(?)도 빼놓지 않고 하셨다.

시내의 중심은 호치민 동상이 앞에 서 있는 시청건물이라 할 만하다. 자애로운 표정의 호치민은 소녀를 안고 있다. 저녁을 카드되는 곳에서 먹자는 세규. ATM을 찾을 수 없는 탓이다. 물론 환전한 현지 동화가 있지만 양이 작아서 다 써버리면 필요할때 못쓸까봐서 였다.

가이드북에 소개된 베트남하우스에서 식사. 럭셔리한 분위기가 그럴 듯하다. 조갯살조림, 볶음밥, 타이거 2병(이때부터 싱가폴맥주 타이거와 우리는 여행내내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까지. 무려 20만동이라는 숫자가 계산서에 찍혀나왔다(우리 돈으로 약 만 삼천원의 식사다. 맥주 두 병에 럭셔리한 내용물을 본다면 거저나 다름없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이렇게 쓴다는 것은 배낭여행자의 처지에 위배되는 듯한 느낌이다).

식사 시작 전, 가게 앞 좌판에서 담배를 샀다. 아주머니가 영어는 잘하지 못하지만 숫자는 말할 수 있는 듯했다. 손가락으로 둘, 셋을 펴 보이며 이야기 했다.

"5000동?"
"아니다. 피쁘띠!"

5만동에 담배 두 갑을 샀다. 고무줄로 예쁘게 묶어서 건네는 손길이 정겹다. 럭키스트라이크. 그나마 들어본(?) 담배였다. 나머지는 너무 흔하거나, 두렵거나 하여 선택하기 힘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수입담배와 베트남산 담배의 가격차는 매우 컸다. 우리 나라의 현실과는 사뭇 다르다. 게다가 성분 표시나 경고문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기 힘들었다. 좀 불안하기 까지 하다. 하지만 베트남은 흡연자의 천국이었다. 어느 식당에서도 재떨이를 요구할 수 있었다.

어둑어둑 해지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베낭여행자들의 거리라는 데탐거리를 향해 걸었다. 그 곳엔 베트남에 온 거의 모든 외국여행자들을 진두지휘하는 신카페가 있고, 킴카페, 그 외 무슨브라더스, 무슨트래블 등이 빼곡히 들어선 곳이다. 주변에 숙소도 많고, 술집도 밤새 흥청이는 곳.

길 건너는 것에 익숙해졌다. 신카페에 들러서 여행패키지 안내서를 한 장 들고 건너편 조그만 바에 들어갔다. '사이공포(saigon pho)' 바다. 간단한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맥주 만동, 타이거 큰 병 만오천동. 안주없이 그냥 맥주만 마시자! 우리 둘은 입이 찢어져라 좋아했다.

계속해서 노상이 들락거리면서 물건을 팔려고 한다. 엽서와 책, 액세서리, 담배 등 좀 지친다. 너무들 열심이라 대꾸하면 끝이 없다. 한 소녀는 약 13살에서 15살 사이의 나이처럼 보이는데 담배를 판다. 우리가 제법 술을 마시고 있으니까 와서 시가를 권한다. 여기서 그네들의 전략적인 장사 수완을 엿볼 수 있었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흥정이 대단하다.

"얼마냐?"
"2달러다."
"한 개에?"
"그렇다."
"안 산다."
"얼마면 되나?"
"2만동으로 하자."

잠시 소녀는 생각한다.

"가위바위보로 하자"
(에~엥?)
"내가 이기면 6만동에 두 개 사고, 내가 지면 4만동에 팔겠다."
"하하. 그래 해보자."

삼세판이라는 것을 주지시키더니 내리 3번을 이겨버린다. 어이가 없다. 결국 6만동을 주고 시가 두 개피를 사서 핀다. 미국산이다. 두터운 것이 아주 그럴싸해보인다. 취기가 오를 무렵 세규가 종업원 중 영어 좀 하는 애를 붙잡고 이야기를 한다.

첫째, 호치민 좋냐? 둘째, 나 한국사람인데 당신은 한국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첫 번째 질문은 어쩌면 뻔히 예상되는 답변이다. 어디를 가든 호치민의 동상과 영정이 있고 길가 카페에서 그의 초상화를 걸어놓은 것도 볼 수 있다.

두번째 질문이 제대로 였다. 약간은 과거사가 미치는 영향력을 테스트해 보려고 한 질문이었는데, 그녀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한국 사람 별로라고 했다. 이유가 뭐냐고 했더니 자기 나라 가난한 딸들을 돈 주고 사간다고 했다. 그 수가 매우 늘어나고 있는데 한국 가서 행복한 사람 별로 못 봤고, 이혼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열변을 토했다.

한참을 이야기 하다가, 어느덧 눈물이 글썽해져서 우리를 바라보는 눈이 매섭다. 이야기 하는 내용의 반 정도만 단어로 유추해 본다. 주변에 직접 친구가 한국에 가 있는듯 했다. 세규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동조한다. 나는 슬슬 입이 근질거린다. 결국 끼어들었다.

내가 시골 사는 농부인데 우리 나라 시골 사정이 좋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도 그것을 문제로 생각하고 있으나 시정되기 힘든 일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나는 결혼할 여자친구 있다고 손사래를 쳤다(그녀는 내가 농부라고 하자 매우 놀라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까 생각하는 듯 했다). 언어가 좀 더 잘통했다면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서로의 영어 실력이 짧아서 피상적인 수준의 대화만 가능한 것이 매우 아쉬웠다.

어느덧 얼큰하게 취해서 일어났다. 계산서를 보여달라고 하자 20만동이 넘게 찍혀져 나왔다. 세규가 카드로 하겠다고 하자, 웃으면서 카드는 불가라고 말하는 종업원. 카드 결제가 가능한 곳은 미리 알아보고 들어가야 한다. 그냥 먹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결국 오후에 숙소 사장님한테 20불 환전한 베트남 동화로 10만동 두 장을 쓰게 되었다.

택시, 오토바이, 시클로. 우리에겐 선택권은 많았으나 워낙 바가지에 대한 주의를 들은지라 쉽사리 타게 되질 않는다. 게다가 밤이라 두려워 일단 그냥 걷다가 그냥 숙소까지 계속 걸었다.

지도를 몇 번이나 확인하고 이 길이 맞는지 되새기며, 불안불안한 상태에서 한 시간여를 걸었다. 발바닥이 타는 듯하다. 신발이 꽉 죄는 듯하다. 아직도 길가에 나와서 카드놀이나 맥주 한 잔을 하는 젊은이들이 보인다. 웃통을 벗고 있는 아저씨와 담배를 피고 있는 할머니. 그네들을 말없이 지나치는 우리의 등뒤에 그네들의 시선이 와닫는 것을 느낀다.

오토바이, 자전거들이 우리를 한 번씩 흘깃 바라보고 지나친다. 시간은 자정에 가까워 온다. 힘들다. 노래 부르고, 소리 지르고…. 취한 것 같다. 물론 사람이 없는 조용한 거리였고, 쩌렁쩌렁 울릴 정도는 아니었으나 봤다면 무척 쑥쓰러운 일이다. 첫날이라 기분이 좋아졌나. 한 시간여의 행군. 결국 머릿속에 입력해 두었던 숙소 맞은편의 쇼핑센터가 보인다. 아자!

덧붙이는 글 | 사진을 제공한 이세규님께 감사드립니다.

☆환율 : 1달러는 약 1만5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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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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