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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대신 메뚜기 모습을 찍어보라고 카메라를 줬습니다. 조심조심 다가가 찍어보려고 애쓰지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철 만난 메뚜기가 다소곳이 앉아 있을 리가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벼 포기 뒤로 숨거나 멀리 뛰어 달아납니다. 콩잎에 앉은 메뚜기를 겨우 찍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허탕을 쳤습니다.

자꾸 돌아다니면 메뚜기가 놀라 달아날 테니 논두렁에 앉아 기다리다보면 사진 찍을 메뚜기가 보일 거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과연 한참을 기다리던 광수는 벼 포기 사이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카메라를 들이댔습니다. 그리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와 자랑을 했습니다.

ⓒ 이광수
"짝짓기 하는 메뚜기 찍었어요."

어린 시절 짝짓기 하는 메뚜기를 '어부랭이'라고 불렀습니다. 짝짓기란 말은 알지도 못한 채, 엄마 메뚜기가 새끼 메뚜기를 업고 다니는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빈병 들고 메뚜기 잡으러 다니다가 어부랭이를 보면 먼저 잡았습니다. 혼자 뛰는 메뚜기보다 행동이 느릴 수밖에 없어 잡기도 쉬웠습니다.

잘 찍었다고 칭찬을 해주었더니 광수 녀석은 신이 나서 또 찍겠다며 앞장서서 걸었습니다. 메뚜기만 찍지 말고 다른 것도 찍어보라고 했습니다. 벼 포기와 공생하는 게 메뚜기만은 아닙니다. 방아깨비도 있고 섬서구메뚜기도 있습니다. 거미도 살고 있습니다.

"아빠, 여기 와 봐요."

앞서 가던 광수가 급하게 외쳤습니다. 징그러운 뱀이라도 발견한 것인가 걱정이 되어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왜, 무슨 일이야?"
"거미줄에 메뚜기가 걸렸어요."

ⓒ 이기원
광수 말 그대로였습니다. 거미는 줄에 걸린 메뚜기가 달아나지 못하게 거미줄로 메뚜기를 칭칭 동여맸습니다. 메뚜기는 앞다리만 겨우 까닥대다 말았습니다. 지지리도 운이 나쁜 녀석입니다. 가을 한철이 메뚜기를 위한 계절인데 말입니다.

"광수야. 사진 찍어야지."
"싫어요."

"왜?"
"메뚜기가 불쌍해요."

결국 광수 손에서 카메라를 넘겨받아 내가 사진을 찍었습니다. 광수는 거미 쫓아버리고 메뚜기 살려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 광수 녀석의 손을 잡으며 그냥 가자고 했습니다.

광수의 표정은 이내 시무룩해졌습니다. 녀석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나도 어린 시절, 광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미줄에 걸린 메뚜기나 잠자리를 구해준다고 거미줄을 막대기로 걷어버린 적도 있고, 개구리를 쫓아가는 뱀에게 돌을 던진 적도 있습니다.

인위적인 잣대 들이대면서 또 다른 생명체를 위협하는 게 더 큰 잘못이라는 걸 깨달은 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고 볼 때 참다운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 걸 광수도 깨달을 날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광수를 앞세우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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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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