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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책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 다밋
“대학 병원에서 어려운 게 바로 입원이다. 환자는 많은데 병실은 부족하니 입원을 하려면 좀 기다려야 한다. 원무과에서는 환자에게 ‘연락해 줄 테니 집에서 기다려라’고 말한다. 물론 전화는 잘 걸려오지 않는다. 마음이 급해서 전화를 걸면 ‘기다리라’는 말을 반복할 뿐이다.

사람들이 응급실에 가서 드러누워 있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거기서 한 사흘 정도 누워 있으면 병실 배정에서 우선권을 획득할 수 있으니까. 대학 병원의 응급실이 사람들로 북적대는 이유가 여기 있고, 그러다 보니 정작 응급실에 있어야 할 환자는 빈 곳이 없어 못 들어오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책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은 의사 수련 과정을 모두 마쳤으나 개업은 하지 않은, 결국 직종을 전업하여 ‘기생충 박사’라는 칭호로 대학 교수를 하는 서민이 쓴 의학 실용서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정말이지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듯한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의료계가 가진 병폐를 속 시원하게 낱낱이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병원의 잘못된 관행이 위에 언급한 예 하나 뿐이겠는가. 올해 초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고 우리 나라에서는 최고라는 대기업 소유의 대형 병원에 입원하면서 우리 가족 또한 종합 병원의 온갖 폭력을 경험한 바 있다.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예들이 거의 다 우리 가족에게도 닥쳤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이니 말이다.

병실과 응급실 문제, 교육 병원이라는 이름으로 환자를 실험 대상처럼 취급하는 병원, 원무과 직원 몇몇에 의해 병실이 쉽게 나올 수도 있고 ‘수술 동의서’라는 이름으로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무언의 폭력들. 위급한 병을 얻어 큰 병원을 드나들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이 억울함에 대해 저자는 하나하나 예를 들며 전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들을 피해가기 위해 환자가 알아야 할 요령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 물론 그런 병원의 잘못된 행태들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도 빼놓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의사였기 때문에 철저한 의학적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하여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독자들에게 있어 이와 같이 양심적인 의사는 많은 도움이 된다.

콜레스테롤 수치나 고혈압 등에 대한 과민 반응도 지적한다. 현 의료계는 이것들이 성인병의 원인이라고 단정지어 지나치게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그다지 걱정할 정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평균치’를 넘는다고 협박을 하여 약품을 팔기 위한 제약 회사의 농간일 수도 있다. 물론 기본 수치를 넘는 경우 주의를 할 필요가 있다는 언급도 빼놓지 않는다.

의료 사고의 현황도 신랄하게 토로한다. 영국에서는 해마다 4만 명 정도가 의료 사고로 숨지며 이 사고의 절반은 입원치료 과정, 25%는 수술 과정, 나머지는 처방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영국인 사망 원인 가운데 넷째로 많은 것이 의료 사고’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영국의 경우 그나마 이런 것들이 통계 수치로 남아 있어 사람들이 의료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어떠한가? 영국, 미국 보다 의료 사고의 발생 빈도가 덜하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환자의 편의보다 의사 입장에 놓인 의료법 덕분에 그 빈도가 덜한 느낌을 줄 뿐이다. 환자 가족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그 병원 가지 마라, 우리 부모님 병은 그 병원에서 다 망쳐 놓았다’라는 말이 나오는 경우도 꽤 많은 걸 보면 우리의 의료 사고 또한 만만치 않다.

우리 나라에서는 의사 출신 변호사가 현저히 부족하다 보니 억울한 환자가 의료 사고 소송에서 승소할 확률이 매우 낮다. 대형 병원의 경우 철저한 의학 전문 변호 팀을 구성하여 의료 사고 소송에 대비하고 있는데, 의학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환자와 변호사가 아무리 노력해 봤자 ‘바위로 계란치기’가 아닌가. 의료계의 이러한 실태를 잘 알고 있다면 더 이상 병원에 당하고 살 수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의학의 진보가 많은 병을 고치고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하여 그것이 지닌 불편과 폭력을 그대로 묵인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저자는 용감하게 그 폭력적 요인에 대해 지적한다. 그리고 병원에서 알 수 없는 다양한 질병들에 대한 상식들을 하나하나 제공하고 있다.

맥주를 많이 마신 사람의 방광을 발로 차면 방광이 터져 즉사할 위험이 있다는 것, 술 마시고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면 옆으로 뉘어주어야 살릴 수 있다는 것, 알레르기성 비염의 난치성(難治性), 독감 백신의 유용함 등 자칫 지나치기 쉬운 상식이지만 유용한 얘기들이 많다. 책의 시작이 의료계에 대한 고발이라고 한다면 중간 부분은 재미있는 의학 정보에 집중한다.

책의 마지막은 헬리코박터, 피임약 등에 대한 잘못된 의학 지식을 바로잡는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헬리코박터 균이 위암의 정확한 발병 원인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피임약은 신체의 유기적 질서를 교란시키므로 피해야 한다는 것. 이러한 작은 의학 상식만 제대로 알고 있어도 살면서 몸이 아파 불편한 일들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난무하는 온갖 의학 정보들 중에 옥석을 가려내는 눈. 그것은 독자가 갖추어야 할 몫일 게다. 병원의 횡포 때문에 억울한 경험이 있는 사람, 여기저기 귀찮게 아픈 사람, 주변에 똑똑한 의사 친구나 친인척을 두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의학 상식은 알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래야 내 몸을 지킬 수 있는 ‘험난한’ 세상이니 말이다.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다밋(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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