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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교정의인 아들 주원씨의 진료실을 찾은 '내장산 산신령' 이기영 원장.
치과교정의인 아들 주원씨의 진료실을 찾은 '내장산 산신령' 이기영 원장. ⓒ 정종인
'1년이 예전의 10년'이라 일컬어지는 격변기인 요즘 수대에 걸쳐 '가업(家業)'을 이어온 사람들의 얘기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던져준다. 세상을 꿋꿋이 지키며 대를 이어온 사람들의 모습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들만의 숙명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며느리도 치과의사

환경운동가로 '내장산 산신령'이라는 닉네임이 더 잘 알려진 70대 치과의사 이기영씨와 그의 40대 아들인 이사랑부부치과 이주원 원장의 세상사는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정읍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보원치과를 개원하고 있는 송미령(38) 원장은 이기영 원장의 며느리이자 이주원 원장의 아내여서 더욱 이채롭다.

"여보세요. 환경운동가이자 치과의사인 이기영 선생님 댁이지요?"

<전라일보> 사회부 차장시절에 인터뷰를 통해 인연을 맺은 후 지역사회의 어르신으로 모셨던 치과의사 이기영 원장과 어렵게 재회한 것은 지난달 초였다.

지금은 전북 정읍시 칠보면으로 이전했지만 구 시장 모퉁이에 위치했던 '내장산불고기'에서 육회를 나누며 세상사는 삶의 지혜를 전수받았던 이 원장을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노익장 과시하며 현업 치과의사로 활약

이기영 원장과 아들 이주원 원장. 며느리도 정읍에서 개원한 치과의사다. 며느리와 아들 그리고 시아버지가 치과의사다.
이기영 원장과 아들 이주원 원장. 며느리도 정읍에서 개원한 치과의사다. 며느리와 아들 그리고 시아버지가 치과의사다. ⓒ 정종인
내장산의 모든 것을 머금고 있는 이사랑부부치과 2층에 마련된 이기영 원장의 작업실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박물관이었다.

근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 원장은 산뜻한 명함을 한 장 건네주었다.

'대한산업보건협회 전북산업보건센타 치과의사 이·기·영'

'내장산 산신령' 이기영 원장의 최근 공식적인 직함이다. 여기에 작은 글씨로 ▲내장산 자연생태계 보존협의회장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 가사조정위원이라는 부업(?) 직함이 곁들여져 있었다.

홍조가 트레이드마크인 이 원장은 산업현장에서 근로자들의 건강을 돌보는 치과의사로 왕성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었다.

며느리도 치과의사로 의술 펼쳐

잠시 화제를 바꿔보자.

지난주 편집국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정읍 북면농공단지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라고 밝힌 40대 중반의 제보자는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무료 치과진료를 해주는 '칭찬하고 싶은 치과의사'가 있다고 서두를 꺼냈다. 미담의 주인공은 이사랑부부치과의 이주원 원장이었다.

'리틀' 이 원장의 부인인 송미령 원장도 정읍시외버스터미널 부근에서 보원치과를 운영하며 치과의사로 맹활약하고 있어 시아버지, 남편 등과 '3총사'를 이루고 있다.

외국인근로자들에 대한 인류애 실천

'리틀' 이 원장은 치과의사 가운데에서도 희소가치가 높은 치아교정 전문의다. 치아교정 전문의 가운데 세심한 시술로 정평이 나 있는 이주원 원장의 외국인 근로자 무료진료는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어느 날 저녁 9시뉴스를 보던 '리틀' 이 원장은 한국인 사용자가 자신의 회사에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해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심한 자괴감을 느끼게 된 것.

뉴스를 지켜보던 '리틀' 이 원장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입국한 외국인근로자들의 열악한 근무여건과 무자비하게 자행되는 인권탄압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으로 '무료진료'를 결심하게 된다.

실제로 이사랑부부치과를 찾았던 수십 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은 이 원장의 따뜻한 환대 속에 무료 치아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무료치료를 통해서라도 상처받은 외국인근로자들에게 미안함을 대신하고 있을 뿐 호사스럽게 홍보할 내용은 아니다"며 겸손해했다. 이어 이 원장은 "아버님이 이루신 인간사랑과 자연사랑은 아들이 아닌 후배 치과의사로서도 존경한다"며 "여건이 허락하는 한 의사로서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길을 걷겠다"고 말했다.

2대째 치과의사의 외길을 걷고 있는 '리틀' 이 원장은 송미령 원장과 사이에 은공(9·정읍서초등3)군과 은인(7)군 등 아들만 둘을 두고 있다. 그들 가운데 큰아들인 은공군이 아빠엄마 직업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 '3대째 치과의사 집안' 전통을 이어갈지도 관심거리다.

이기영 원장은 사재를 털어 내장산 신선 약수터를 개발하는 등 환경운동가로도 유명하다.
이기영 원장은 사재를 털어 내장산 신선 약수터를 개발하는 등 환경운동가로도 유명하다.
한평생 바친 내장산 사랑

30년 넘게 '치과의사'의 길을 걷고 있는 이기영 원장의 '환경에 대한 사랑'은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다. 이사랑부부치과 건물 2층에 마련된 이 원장의 작업실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생태박물관'이다. '내장산의 사계'를 담은 대형 액자는 물론 각종 방송테이프, 자신이 직접 발로 뛰며 촬영한 필름은 수만 자가 넘는다.

내장산자연생태계 보존협의회장 직함을 지난 93년부터 지금까지 맡으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형제간의 우애와 자연사랑 그리고 봉사'를 평생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내장산산신령' 이기영 원장의 휴먼스토리는 지난 87년 문화방송 '인간시대'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국립공원 내장산 신선봉 아래에 있는 '신선약수'도 이 원장이 사재로 관정을 파서 만든 '불후의 역작'이다.

12년 넘게 비행청소년 35명과 40명에 달하는 소년·소녀가장에게 사재를 털어 장학금을 전달하는 이 원장은 '나눔의 미학(美學)'을 실천하고 있는 '살아있는 히포크라테스'다.

덧붙이는 글 | <서남교차로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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