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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이 거의 없었던 엄마의 추어탕과는 좀 다르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통미꾸라지가 들어있다.
국물이 거의 없었던 엄마의 추어탕과는 좀 다르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통미꾸라지가 들어있다. ⓒ 이승열

요렇게 미꾸라지가 보여야 비로소 추어탕이란 느낌이 든다. 갈은 것은 영 추어탕이 느낌이 나지 않는다.
요렇게 미꾸라지가 보여야 비로소 추어탕이란 느낌이 든다. 갈은 것은 영 추어탕이 느낌이 나지 않는다. ⓒ 이승열

그래도 언제나 통미꾸라지에 싱싱한 제 철 야채, 깻잎과 미나리가 듬뿍 들어간 추어탕이 그리웠다. 엄마의 손맛이, 어린시절 흙탕물이 흐르는 도랑가 수초를 훑던 추억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푸른 호수를 지나야 닿는 양평군 양서면 철길 아래 20년쯤 된 오래된 추어탕 집이 있다. 지나치기만 할 뿐 몇 년째 들어가 본적이 없는 곳이다. 별 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추어탕을 시켰는데 아주머니가 "갈아서요, 통째로요"하고 되묻는다.

세상에 이렇게 가까운 곳을 두고 10년 넘게 갈아 만든 텁텁한 추어탕만 줄곧 먹은 것이 억울하고 안타깝다. 전골냄비 속이 궁금하여 뚜껑을 살짝 열었더니 열기에 한껏 달아오른 미꾸라지들이 냄비 밖으로 반을 탈출해 버렸다. 아주머니가 급히 와서 사태를 수습한다. 다 끓을 때까지 절대 열면 안 된다고 했다. 통미꾸라지에 한번 도전해 보겠다고 호기롭게 도전했던 친구는 도저히 미꾸라지를 건지지 못하고 국물과 야채만 열심히 먹는다.

요 장면에서 사람들은 거의 경이로운 눈으로 날 바라보기 시작한다.
요 장면에서 사람들은 거의 경이로운 눈으로 날 바라보기 시작한다. ⓒ 이승열

얼굴이 보이는 생선 매운탕을 저어한다는 배지영 기자의 기사를 보고 내가 조금 이상한가를 생각해봤다. 좀 이상하긴 하다. 난 통미꾸라지가 들어 있어야 추어탕으로 치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미꾸라지를 하얀 쌀밥에 얹어 먹어야 잘 먹었다는 느낌이 드니 말이다. 나뿐만 아니고 우리 집 딸들 모두 다 똑같다. 처갓집에 가면 추어탕을 아예 먹지 못하는 사위들은 처음엔 너무 기가 막혀 말도 못하고 멍하니 추어탕 삼매경에 빠진 마누라들을 바라만 본다.

지치지도 않고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미꾸라지를 잡다가 밑동이 빠진 체 때문에 집에 들어가기가 겁이 났던 비 오는 날의 풍경이 아직도 선명하다. 아무래도 날굿이를 하러 나가야할 것 같다. 산성비 때문에 머리가 빠질 염려도, 흙탕물에 얼룩이 질 옷에 대한 염려도 잠시 접어두고, 막바지 여름 황토빛 흙탕물을 만나러 가야겠다. 그 많던 미꾸라지들이 오늘도 거센 물살을 피해 수초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감상일까.

덧붙이는 글 | '날구지'인가 '날궂이'인가 정확히 확인하려고 국어사전을 열심히 찾았으나 없는 단어입니다. 흔히 쓰던 말인데 사전에 없는것을 보니 우리 고향에서만 쓰던 말인가도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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