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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복이 지나니 가을이 더욱 기다려지는데, 지난 여름을 거두기에는 아쉬운지 광복의 열기만큼이나 더위가 식을 줄 모르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은 광복절과 함께 한 여름의 마지막 휴가기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해질 녘이면 창문을 통해 피부에 와 닿는 선선한 바람에 가을이 함께 묻어 있습니다. 또한 막바지 여름이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곧 이 여름이 가고 다시 가을이 올 것이며 또 엄연한 자연의 섭리대로 어느새 새 가을이 우리를 반겨줄 것이기에 기다려집니다.

부드러운 질감, 보기 드문 고흐의 풍차 그림

그래서 오늘은 보는 것만으로도 낭만적인 그림이 될 것이며 시원한 바람이 절로 불어올 것만 같은 풍차와 관련한 고흐(Vincent Van Gogh, 네덜란드, 1853~1890)의 작품을 감상할 것입니다. 한 독자의 요청으로 엄선한 그림들임을 밝혀두며, 평소 보기 어려운 귀한 그림입니다.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고흐의 작품들은 그가 사망하기 전, 말년 3년 동안 제작한 것이 대다수입니다. 이 앞에서 소개하였던 밀밭 풍경이 대표적인 그의 말년 작품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감상할 아래 작품은 그보다 앞서 그렸던 것들이며, 고흐 특유의 꿈틀거리는 열정과 함께 다소 부드러운 붓의 질감과 동양적인 여백의 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 고흐의 자화상(Self Portrait), Oil on cardboard, 1887, 16.54 x 13.39 inches [42 x 34 cm], Rijksmuseum, Amsterdam
ⓒ Van Gogh
고흐는 직접 그린 다양한 느낌의 자화상을 많이 남긴 화가로도 유명합니다. 보고 있는 것과 같이 고흐는 각각의 자화상에서 각기 다른 특징과 표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자화상을 포함하여 아래 감상할 그림 모두 반드시 클릭하여 본래의 큰 그림으로 실감나게 감상한 뒤, 가슴에 더 와 닿는 그림은 바탕화면으로도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고흐의 자세한 약력은 이 앞에서 소개하였던 내용도 참고하시고, 오늘은 간략한 그의 삶과 아래 그림을 그렸던 시기를 중심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이때는 동생 테오에게 경제적인 생활과 미술기법에 필요한 책 그리고 미술도구, 물감 등을 전적으로 의존하던 시기입니다.

1853년 3월 30일, 고흐는 네덜란드 브라반트 지방의 포르트 춘데르트(Zundert)란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엄격한 개신교 목사인 테오도루스 반 고흐 Theodorus van Gogh(1822~1885)와 외향적인 안나 코르넬리아 반 고흐-카르벤투스 Annaornelia van Gogh-Carventus(1819~1906) 사이에서 맏아들로 행복하게 자랐습니다.

행복했던 성장기와는 달리 짧은 삶을 자살로 마감한 고흐

1869년 7월 고흐는 숙부의 권고를 받아 헤이그의 구필 화랑에서 판화와 복제그림을 파는 일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는 열성적이고 세심하며 유능한 직원이었으며, 날마다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예술적 감수성을 일깨웠던 시기입니다. 1872년부터 아우인 테오가 화랑에서 함께 일하게 되면서 헤이그에서 보낸 시절은 고흐의 삶에서 가장 밝은 시기였습니다.

1886년에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파리로 갔는데, 당시 파리는 새로운 인상주의 양식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활발했던 시기입니다. 이 곳에서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네덜란드, 1606~1669)와 당시 작품활동을 하던 밀레(Jean Francois Millet, 프랑스, 1814~1875), 그리고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프랑스, 1796~1875)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됩니다.

1886년 봄부터 1888년 2월까지 파리에서 인상파의 영향을 받으면서 화법의 변화를 보입니다. 그때까지의 렘브란트와 밀레 풍의 어두운 그림에서 밝고 강렬한 분위기로 바뀌었으며, 색조도 다채로워졌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자신의 개성적인 화풍과 붓놀림을 창조해냈던 것입니다.

그러던 1890년 7월 27일, 당시 고흐의 나이 서른 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계속되는 신경증과 발작, 폭력성을 이기지 못하고 그가 그림으로도 즐겨 그렸던 밀밭 언저리에서 자신의 가슴에 총을 겨누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살며 거쳐갔던 오베르, 아를, 암스테르담 등에 선물을 주고 떠난 셈입니다.

하지만 그는 죽은 이후에도 불행했던 사람입니다. 자살을 했기 때문에 교회에서가 아닌 식당에서 장례식을 치르게 됩니다. 침울했던 테오는 장례식에 온 사람들에게 고흐의 그림을 추억으로 선물하였습니다. 6개월 뒤인 1891년 동생 테오도 갑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되었고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고흐의 곁에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 바람 이는 풍차(Le Moulin de la Galette), Oil on canvas, 1886, Kroller-Muller Museum, Otterlo, Netherlands
ⓒ Van Gogh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화가 고흐의 작품은 전해지는 것만도 1000여 점에 이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작품이 그가 사망하기 전, 10년 동안에 제작된 것들입니다. 그 가운데 후반기인 1886~1890년에 그린 그림들이 그의 대표작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위 그림을 포함한 다섯 작품은 모두 고흐 창작 후반기 가운데서도 초기에 가난한 화가들이 많이 모여 살던 몽마르트(Montmartre)의 언덕과 그 풍경을 그린 것들입니다. 여기에서 베르나르(Emile Bernard, 1868~1941)와 러셀(John Russell, 1858~1931),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 등을 만나 교류하게 됩니다.

▲ 지느러미 모양의 풍차 날개(Le Moulin de Blute-Fin), Oil on canvas, 1886, Bridgestone Museum of Art
ⓒ Van Gogh
방 하나를 화실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그의 작품에는 색채가 제자리를 잡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부터 파리의 지붕과 몽마르트의 풍차들을 그리면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강렬한 색채와 인상주의 회화의 분위기, 살아 움직이는 역동성, 그리고 이를 넘어선 실존적 의미의 붓질도 볼 수 있습니다.

파리에 도착하자 고흐는 "프랑스의 공기는 나의 생각을 맑게 해주어 작업을 더없이 훌륭하고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게 해준다"라고 편지에서 적고 있습니다. 베르나르와 가깝게 지내면서 그의 고향 풍경을 그리기도 하였고, 더 많은 색채를 보게 되었으며, 파리로 돌아오자마자 함께 전시회를 갖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입니다.

당시의 배경이 된 이 몽마르트는 채석장이 있던 마을이었는데, 위 그림은 그런 풍경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들판과 흙을 검붉게 채색하였을 뿐만 아니라 분할된 화면 위 쪽 반 이상을 회색빛 하늘로 굵고 어지럽게 붓질하여 어두운 구름이라도 몰고 올 듯한 당시의 하늘과 날씨를 짐작하게 합니다.

위 두 그림 모두 화면을 약간 기운 사선으로 분할하였으며, 후기 가운데서도 말년 그림들에서 대표적인 특징으로 나타나는 가늘고 강한 붓의 질감보다는 굵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사람의 움직임도 역동적이며 풍차의 지느러미 하나하나까지 강조하여 생동감 있고 생생하게 묘사되었습니다. 또한 하늘의 구름과 대기의 기운에서도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 바람 이는 풍차(Le Moulin de la Galette), Oil on canvas, 1886, Public collection
ⓒ Van Gogh
그의 작품 활동 10년 가운데 첫 번째 전성기인 전반기에는 데생과 수채화에만 전념하였으며,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뚜렷한 윤곽과 강렬한 색채의 효과를 통하여 주제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애썼던 시기였습니다. 반면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제작된 이 그림에서는 그런 특징을 볼 수 없습니다.

지평선 아래로 보이는 나무와 들풀들은 땅과 하나가 된 듯하며, 푸른 색채의 하늘 위로 그려진 나무와 잎새조차 하늘과 하나가 된 듯 인상적인 윤곽만을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푸른 빛 하늘과 하얀 구름 그리고 바람이 마치 하나가 된 듯 휘몰아치고 있는 형상을 굵은 붓질로 표현하여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까마귀 떼 역시 최소한의 속도감 있는 검정색 선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구름 사이로 날아가 사라지는 원근감을 주고 있어 실제로 보이는 대기보다 더 넓고 시원하게 느껴지며, 말년에 그렸던 "까마귀가 나는 밀밭 풍경"을 연상시킵니다. 특히 풍차 아래로 덧칠된 붓질은 뚜렷하고 신중하게 분리되어 있으며 이러한 회화양식은 20세기 회화, 특히 표현주의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 몽마르트의 채석장과 풍차(Montmartre: the Quarry and Windmills), Oil on board, 1886, Van Gogh Museum, Amsterdam
ⓒ Van Gogh
그가 그린 그림은 표현주의적인 동시에 상징주의적이며, 그리는 방법은 자연스럽고도 본능적인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자연의 어떤 효과나 분위기를 포착하기 위하여,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격렬하게 그렸던 것입니다.

부드러운 사선과 곡선으로 그려진 지평선과 초록색 풀밭 아랫 쪽 채석장의 붓질은 비교적 굵고 부드럽게 표현되었습니다. 그러나 캔버스를 찌를 듯 매우 빠르고 역동적인 질감을 보여주고 있어 그림 전체에 안정감과 운동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풍차의 위 쪽으로 밝게 표현된 하늘의 구름도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듯 굵은 붓질로 부드럽게 표현하였습니다.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먼 원근감을 주어 강조한 구름에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으며, 풍차에서 불어나오는 바람인 양 무척 강하고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 몽마르트의 채석장과 풍차(Montmartre: the Quarry and Windmills), Oil on canvas, 1886, Van Gogh Museum, Amsterdam
ⓒ Van Gogh
오늘 감상한 다섯 그림 가운데 제일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의 인상적인 그림입니다. 채석장과 풍차가 있는 해질 녘 어스름 풍경을 빛의 색채와 붉은 빛으로 통일시킴으로써 매우 안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하늘 멀리 위 쪽 가장자리를 굵고 어두운 붓질로 원근감을 강조함으로써 화면 전체에 공간적인 넓이와 깊이를 더하여 주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곡선의 지평선과 지느러미 모양의 풍차 날개, 노을 빛에 반사되어 부드럽고도 오밀조밀한 윤곽으로 표현된 집들과 언덕을 오르는 길까지 빛과 하나가 된 듯하며 빛을 주물러 빚어 놓은 듯 매우 인상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이 들게 합니다.

절제된 강렬함과 부드러운 풍취가 시원함을 더해줘

이상과 같이 풍차와 관련한 그림 5점 모두에서 고흐 특유의 강렬한 열정과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으며, 그 강렬함이 다소 부드럽게 절제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각각의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생동감과 풍차를 통해 불어오는 바람의 풍취와 분위기, 그 느낌은 사뭇 다르게 다가옵니다.

이처럼 고흐는 단지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1000여 점이나 되는 많은 작품을 그렸습니다. 더구나 그 작품들 가운데 다양한 색깔과 분위기, 그 안에 숨쉬는 부드러운 정취와 생명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이런 작품들을 통하여 느끼는 고흐의 열정과 광기에 놀랍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가 평생 동안 그린 800점 이상의 수채화와 유화와 700점 이상의 데생 가운데, 살아 생전에 팔린 작품은 1점뿐이었을 만큼,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삶을 살았다고 하니 그의 그림을 다시 보게 되며 대하는 마음도 숙연해집니다. 한편 풍차를 통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마음까지 즐겁게 합니다.

덧붙이는 글 | - 고흐의 초상과 그림, 약력, 설명은 천년의 그림여행(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과 "반고흐, 영혼의 편지(Dear Theo: The Autobiography of Vincent Van Gogh, 도서출판 예담 1999)", 반고흐미술관(http://www.vangoghmuseum.nl)과 Art Renewal Center(http://www.artrenewal.org), Olga's Gallery(http://www.abcgallery.com)를 참고하였으며, 번역한 글을 포함, 종합하여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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