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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전에 약속이 있어 출근을 일찍 서두르려 했지만 엄마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줌을 싸는 엄마를 매일 씻기지 않으면 몸에서 냄새가 난다. 전날 늦게 들어온 난 아침에라도 씻겨야겠다는 생각에 엄마가 깨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잠꾸러기 엄마는 9시가 다 되어서도 뒤척이기만 할 뿐 일어나지 않았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눈도 안뜬 엄마를 서둘러 일으켜 씻기고 목욕가운을 입혀 엄마를 도와주시는 아주머니께 옷 갈아입히기를 부탁했다. 그러나 내가 목욕탕 정리를 마치고 나오자 엄마는 목욕가운을 그대로 입은 채 현관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약속시간에 급한 나머지 아주머니께 뒤쫒아 나가시라는 말과 함께 나갈 채비를 하였다. 그런데 잠시 후, 밖에서 엄마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급히 뛰어나가니 아주머니의 두 손목을 부여잡고 있는 엄마는 아무도 없는 길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 좀 살려 주세요. 나 좀 살려 주세요."

나를 보자 엄마는 이번엔 내 두 손목을 잡아채며 "여기 도둑년 잡았어요. 빨리 나 좀 도와주세요"라고 소리를 지르며 정말 도둑이라도 잡은 듯 내 손목을 움켜잡는다.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손목에 고통이 느껴질 정도였다. 딸을 도둑으로 생각하는 엄마의 눈빛은 간절하게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는 절절함만이 담겨 있었다.

"엄마, 미안. 이제 안 그럴게. 안 훔쳐갈테니까. 이제 그만 손 놓고 집에 들어가자. 목욕가운만 입어서 사람들이 흉본다니까. 잘못했어."

난 엄마에게 잘못했다며 빌기 시작했다.

"내가 니 말에 한두 번 속았냐? 니년들 다 도둑년들이야. 잘못했다고 말해 놓고 또 그러고 또 그러고. 니 말에 내가 또 속을 줄 알아? 니년들 다 경찰서에 넘겨야 돼. 어디 할 짓이 없어 남의 물건에 손을 대?"

엄마는 분하다는 듯 아주머니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악담을 해댔다. 난 갑자기 정신을 놓아버린 엄마를 달래기 위해 무조건 잘못했다며 달랬지만 소용없었다. 엄마는 내 손목을 꼭 잡아쥐고 큰 길로 가기 시작했다. 손을 조금이라도 빼려는 나의 행동이 느껴지면 엄마의 손에는 더 큰 힘이 가해지고 흥분은 더 심해졌다. 난 엄마의 하는 행동에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엄마에게 손목을 잡힌 채 집에서 백여미터 떨어진 단지내 슈퍼마켓까지 갔다. 아주머니는 한 걸음 떨어져 침울한 표정으로 우리를 따라왔다. 아침 나절이라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세 여자의 모습을 힐긋힐긋 쳐다보기만 했다.

슈퍼 입구에 서 있던 가게 아저씨를 보자 엄마는 구원병이라도 만난 듯 "아저씨, 아저씨, 빨리 경찰서에 연락 좀 해 주세요. 이년들 다 잡아 넣야 돼요"라며 도움을 청한다. 평소 가게 아주머니와 아저씨에게 엄마의 상황을 설명하고 몇 가지 당부를 해 놓았던 터라 아저씨는 엄마의 상태가 나빠졌음을 금방 눈치를 챈 듯했다.

"아저씨, 끈 좀 주세요. 이년 빨리 묶어놔야 돼요. 안 그러면 도망가요."

끈으로 내 두 손을 묶으려는 엄마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아저씨께 내 손목을 묶으라는 눈짓을 하였다. 엄마의 계속된 재촉에도 아저씨는 머뭇거렸다. 난 수박더미 옆에 걸어놓은 수박 묶는 끈을 가르키며 "아저씨, 저 끈으로 빨리 묶어주세요"라며 손을 내밀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아저씨가 내 두 손을 묶어주자 엄마는 이번에 끈을 잡아 끌며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아니, 할머니 딸이 뭘 훔쳐갔다고 그러세요. 안 훔쳐 갔으니까 빨리 집으로 들어가세요."

아저씨는 이런 저런 말로 엄마를 달래려 애썼다. 딸을 도둑년이라며 경찰서에 끌고가겠다는 말이 황당하기도 했겠지만 수박끈으로 두 손을 묶인 내가 더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그때까지 아주머니는 아무 말 없이 주변에 서 있기만 했다.

난 엄마가 혹여 사람들에게 '망령난 노인네'의 행패로 보여질까 걱정이 되었다. 내가 집에 없는 동안 온전히 아주머니의 보호를 받아야 할 터인데 엄마에게 이번 일로 정나미가 다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더 컸던 것이다. 사태를 빨리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엄마, 미안해, 잘못했어. 정말, 이제 정말 다시는 안 그럴테니까 이번 한 번만 용서해줘. 내가 다 물어줄게"
"매일 잘못하긴 뭘 잘못해? 말이나 못해야지. 그리구, 니가 무슨 돈이 있어서 다 물어줘? 말로는 뭘 못하냐?"
"엄마, 정말 안 그래. 약속하자. 자, 약속. 이번 한 번만 용서해줘. 엄마 이 끈 좀 풀어줘. 봐봐. 피 날려고 해. 잘못했으니까 끈 좀 풀어줘"
"내가 니 말을 어떻게 믿냐? 이번에는 내가 경찰에 다 집어 넣으려고 했어. 정말 속상해서."

잘못했다고 비는 딸의 말에 마음이 풀어졌는지 아니면 손목이 아프다는 말에 안쓰러움이 생겨서인지 노기어렸던 엄마의 목소리는 힘없이 작아져 있었다.

"딸 손에 피 날락칸다. 언니, 어서 딸내미 끈 좀 풀어주라. 이제 안 그란다고 빌지 않나? 어서 풀어주자."

여세를 몰아 아주머니가 나를 거들며 얼른 끈을 풀기 시작했다. 드디어 수밖끈에서 해방된 나는 엄마를 꼭 안았다.

"엄마, 잘못했어. 정말 안 그럴테니까 이번만 용서해줘. 알았지? 우리 때문에 가게 장사 못하니까 빨리 집에 가자. 집에 가서 약 먹고 밥 먹자. 응?"

엄마는 그제서야 순순히 따라나선다. 백여미터 되는 짧은 거리를 힘겹게 힘겹게 걸어 한참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 나 혼자 있었으면 히껍을 했겠다. 엄한 소리 해가며 떼를 쓰기는 해도 오늘 같이는 안했는데"라며 혀를 차고 한숨을 쉬는 아주머니의 눈치를 보며 엄마의 옷을 갈아 입혔다. 엄마가 왜 갑자기 정신을 더 놓으신 걸까? 순간 난 목욕할 때 엄마에게 장난 쳤던 일이 생각났다. '아, 그래서였구나' 나는 비로소 엄마의 이상한 행동의 원인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의 손에는 내가 생신 때마다 선물로 해 드린 쌍가락지와 루비반지가 끼워져 있다. 그런데 며칠 전 장신구에 욕심이 많은 엄마는 내 손에 끼워져 있던 금반지를 빼서 당신 손에 끼고는 주지를 않는 것이다.

그 반지는 '행운을 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사업을 시작하면서 끼고 다니던 것으로, 내게는 유일한 액세서리였다. '행운'을 위해 반지를 지니고 있어야 될 것 같은 생각과 너무 많은 반지 때문에 엄마 손이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에 목욕을 하며 자연스럽게 반지를 빼려 하였던 것이다.

"엄마, 이 반지 하나 나 줘. 응. 엄마는 반지가 이렇게 많은데 나는 하나도 없잖아?"

반지를 빼려 두어 번 시도를 했지만 엄마가 손을 움켜쥐며 '저항'하는 바람에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잠도 깨지 않은 상태로 목욕을 하던 엄마는 엄마의 손에서 반지를 빼려는 나의 행동이 당신의 물건을 내가 훔치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혼돈하는 것이 바로 치매환자 병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순간적으로 엄마가 보인 행동의 변화가 그때서야 이해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치매에 걸린 노인들 모두가 난폭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치매에 걸린 엄마와 6여년 동안 함께 생활해 온 결과, 치매환자가 난폭해지거나 폭력적으로 변할 때는 원인이나 이유가 있었다. 이를테면 오줌을 싼 환자에게 억지로 옷을 갈아입히려 하면 환자는 저항하며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환자의 이러한 현상은 주변에 누가 있다고 상상하여 옷벗기를 거부하거나 오줌 싼 것을 스스로 수치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노인이나 환자에게는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환자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은 것이 바로 문제의 원인인 것이다.

치매환자가 보여주는 이상한 말과 거친 행동을 '망령난 노인네의 망령된 행동'으로 치부해 버리지 말고 원인이 무엇인지 환자가 무엇을 바라는지를 알고자 노력한다면 치매환자와의 생활이 고통만이 아니라 행복의 시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번 '수박끈'사건은 우리의 귀여운 치매엄마가 아직도 당신의 마음을 온전히 읽지 못하는 딸에게 한 수 가르침을 주기 위해 마련한 '교육용 이벤트'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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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오마이뉴스의 정신에 공감하여 시민 기자로 가입하였으며 이 사회에서 약자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글로 고발함으로써 이 사회가 평등한 사회가 되는 날을 앞당기는 역할을 작게나마 하고 싶었습니다. 여성문제, 노인문제등에 특히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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