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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수버들 옆에 서서 나와 삶을 논했던 강아지
능수버들 옆에 서서 나와 삶을 논했던 강아지 ⓒ 김유자
아침부터 장대비가 내리더니 눈 앞에 바라다 보이는 저 능수버들의 가지가 빗물처럼 넘실거립니다. 어쩌면 저 능수버들이 푸르른 게 아니라, 능수버들의 잎을 타고 미끄러지는 장대비가 더욱 더 푸르게 느껴집니다.

오늘 같이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은 톰 웨이츠(Tom Waits)의 노래 'Rain Dogs'를 듣곤 합니다. 저음에다 지독한 허스키 보이스인 톰 웨이츠의 우울한 음성에, 그 노곤한 듯한 음색에 차츰 감염되어 갑니다. 내 우울의 색깔도 푸르고 넉넉해서 저 능수버들처럼 넘실거립니다.

Inside a broken clock, splashing the wine with all the rain dogs
Taxi, we'd rather walk, huddle a doorway with the rain dogs
For I am a rain dog, too

Oh, how we danced and we swallowed the night
For it was all ripe for dreaming
Oh, how we danced away all of the lights
We've always been out of our minds

The rum pours strong and thin, beat out the dustman with the rain dogs
Aboard a shipwreck train, give my umbrella to the rain dogs
For I am a rain dog, too

Oh, how we danced with the Rose of Tralee
Her long hair black as a raven
Oh, how we danced and you whispered to me
You'll never be going back home
Oh, how we danced with the Rose of Tralee
Her long hair black as a raven
Oh, how we danced and you whispered to me
You'll never be going back home

-톰 웨이츠의 노래 'Rain Dogs' 전문


'레인독(Rain Dog)'은 내리는 비가 자신이 살던 집의 냄새를 씻어가 버려 길을 잃어버린 개를 말합니다. 개는 연신 코를 벌름거리지만 살던 집의 냄새는 영영 맡아지지 않습니다. 초점이 맺히지 않는 멍한 눈. 끝내 기억의 지평선으로 집의 형태가 떠오르지 않는 겁니다.

짐승에게 혹은 사람에게 집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집이란 존재의 불안을 묶어주는 일종의 동아줄이 아닌지요. 말 못하는 개라고 해서 존재에 대한 불안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지요.

비로 인해 물이 불어난 대전천. 존재의 확장을 경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비로 인해 물이 불어난 대전천. 존재의 확장을 경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 김유자
제 인생에도 한때 몇 날 며칠 장맛비가 내린 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레인독처럼 삶에 대한 지향을 잃어본 적이 있다는 뜻이랍니다. 지향 없이 산다는 것, 흐름에다 되는 대로 몸을 맡긴다는 것은 내 존재의 집을 찾아가는 길을 잃어버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제야 터놓고 하는 말이지만, 그때 제 존재는 정말 무책임하고 위태로웠습니다. 제 후각은 무디어질 대로 무디어져 삶이 풍겨주는 본질적인 체취를 맡을 수 없었으며 끝내 내 존재의 궁극적 지향점을 찾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제 자신은 한 마리 레인독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알고보니 이 비둘기도 집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해 헤맨 적이 있다더군요. 서로의 은밀한 자아를 드러내는 시간은 즐겁습니다.
알고보니 이 비둘기도 집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해 헤맨 적이 있다더군요. 서로의 은밀한 자아를 드러내는 시간은 즐겁습니다. ⓒ 김유자
쉬지 않고 흘러가는 제 생각을 멈추게 하려는 듯 어디선가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파닥거립니다. 저 새도 레인 독처럼 길을 잃은 걸까요? 비 오는 날 뿐만 아니라 지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바람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에도 길을 잃곤 합니다.

그렇게 모든 존재에는 허점이 있고, 그 허점으로 사랑이, 깊은 연민이 파고드는 것이지요.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자만이 연민을 압니다. 아마 새도 저에게 알게 모르게 연민의 감정을 보내고 있겠지요.

강아지도 집을 찾아가버리고, 저도 집으로 돌아옵니다. 우린 둘 다 레인독처럼 굴었지만, 진짜 레인독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레인독도 아닌 것들 끼리 만나서 그냥 청승 한 번 떨어본 것이지요.

삶은 언제나 규격이나 방편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줌도 안 되는 분별이 순간 순간 우리를 머뭇거리게 하지만 때로는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더군요.

다시 비가 내립니다. 빗방울 수를 손가락으로 일일이 헤아려 봅니다. 한 방울, 두 방울… 그러다가 끝내는 빗방울의 수를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래도 그렇게 숫자를 세다 잃어버리고 나면, 어느 새 무심의 경지에 다다른 나를 느끼곤 합니다.

방안에 갇힌 가엾은 존재를 위하여 톰 웨이츠가 다시 노래를 불러줍니다. 존재의 본능적인 쓸쓸함을 자극하는 목소리가 빗속에 젖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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