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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제가 화분에 심어서 올 봄에 피워 낸 민들레꽃입니다.
ⓒ 한명라
친정이 열두 남매이다 보니 친정 엄마는 29명의 손자, 손녀, 외손자, 외손녀를 두었습니다. 거기에다 2명의 증손자, 증손녀를 둔 지 오래입니다.

저에게는 27명의 조카들이 있습니다. 제일 큰언니의 맏딸인 큰조카가 제 여동생인 막내보다 3살 아래인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있습니다.

40대 초반 아직 젊은 제가 이모할머니가 된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큰언니께서 조금만 더 빨리 결혼을 했더라면 저보다 나이 많은 조카도 있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27명의 친정조카들 모두가 나름대로 개성이 강하지만, 지금까지 어느 한 명도 잘못된 길로 걷지 않고 바른 길로 잘 자라주어서 저는 친정조카들에게 남다른 자부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2년 전 어느 날이었습니다. 경북 경산에 살고 있는 둘째언니께서 큰딸아이가 대구에 약국을 개업했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약대를 졸업한 후, 다른 사람이 운영하는 약국에 취직하여 출근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렇게 빨리 약국을 개업할지 저도 예상치 못 했습니다.

동대구역에서 파티마병원 쪽으로 시내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쯤 떨어진 곳에 약국을 개업했는데, 그 약국의 상호에 '민들레'라는 단어가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 순간, 저는 기회가 되면 꼭 조카의 약국을 찾아가리라 마음으로 다짐했습니다.

민들레꽃은 제가 평소에도 좋아하는 꽃입니다. 노랗고 탐스러운 꽃을 좋아 하기보다는, 모진 비바람과 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히고도 보도블록의 작은 틈 사이에서도 끝끝내 꽃을 피우고 마는 강인한 정신력을 더욱 좋아합니다.

둘째언니에게서 '민들레'라는 상호를 듣는 순간, 어쩌면 조카가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 후 1년 후인 지난해(2004년) 5월, 아주 우연하게 조카의 약국을 찾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어느 인터넷 사이트의 운영자분이 그 사이트에 글을 쓰는 몇 분과 충북 황간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던 것입니다. '코리안라이프'라는 사이트를 운영하고 계시는 운영자분은 그 사이트 도메인과 관련하여 우리나라 유명 방송국과 소송을 진행하느라 무척 힘들어했습니다.

그래서 머리가 아플 만큼 힘든 상황에서 잠시 떠나와 좋은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여 황간에서 만났고, 점심식사도 함께 하면서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창원으로 돌아오기 위해 기차를 타야 했는데, 황간에서 창원으로 직통으로 운행하는 기차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동대구역에서 일단 하차를 하여, 바로 연결되는 열차로 갈아타기로 했습니다. 제가 동대구역에 내렸을 때에는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창원으로 가는 기차는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낯선 대구에서 저녁식사는 혼자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또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난감해 하던 그때, 동대구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파티마병원 방면으로 두 정거장쯤 가면 된다는 조카의 약국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갑작스런 저의 전화에 조카는 무척 반가워하며 찾아오는 길을 상세하게 일러 주었지만, 시내버스를 잘못 탄 까닭에 몇 번을 물어물어 찾아 간 곳에 조카의 약국이 있었습니다. 약국 간판에는 제가 예상했던 것처럼 몇 송이의 민들레꽃이 활짝 피어 있어서 마치 동화 속의 약국을 찾아 온 듯 했습니다.

아직 새댁인 젊은 약사가 운영하는 약국이어서 그런지 일반 약국과는 많은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아기자기한 작은 화분들이 많은 것도 그랬고, 아무런 부담없이 편안하게 맞아 주는 분위기도 그랬습니다.

이모에게 저녁밥을 사 주기 위해서 다른 날보다 조금 이르게 약국 문을 닫는다는 조카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음 뿌듯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약국 바로 앞에서 노점상을 하고 있는 할머니를 대하는 조카의 모습이 무척 남달라 보였기 때문입니다.

마치 외할머니를 대하듯 스스럼없이 편안하게 "우리 이모예요~" 하면서 저의 팔짱을 끼는 조카의 모습에서 그동안 그 할머니와 어떤 관계로 지내왔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 간 처의 이모를 동대구역까지 자동차로 태워 준 조카사위. 그리고 남보다 유난히 작은 체구를 가지고도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 그리고 친정의 남동생들까지 자상하게 챙겨주는 조카가 참으로 예뻐 보였습니다.

또 이모 가족 모두의 영양제를 일일이 챙겨주는 조카에게 미안해서 그날 저는 딸기 한 바구니를 샀습니다. 그리고 그 바구니 밑에 10만원짜리 수표 한 장을 넣어 두는 것으로, 저는 조카에게 고맙다는 마음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일련의 일들이 있은 지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제 주변 사람들 중에 새로운 형태의 목걸이와 팔찌를 착용하고 다니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최신 유행하는 패션인가? 궁금한 마음에 물어 보았더니, 음이온이 나오는 건강 목걸이와 팔찌라고 합니다.

그 효능이 어떠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어떤 분은 팔과 어깨가 많이 아팠는데 그 통증이 많이 줄었다고 하고, 아침이면 늘 피곤한 상태로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거뜬하게 하루를 시작한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평소 왼쪽 손목과 두 어깨가 자주 아팠던 제가 "그럼 저도 하나 사야겠네요" 했더니, 유사품이 시중에 많이 나돌고 있기 때문에 잘 알아보고 구입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대구의 조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조카에게 음이온 목걸이와 팔찌의 효능을 물어 보았더니, 제대로 된 제품만 구입하면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마침 조카의 약국에서도 판매하고 있다고 하면서 우편으로 보내 주겠다고 했습니다.

선뜻 남편과 저의 몫으로 2세트를 주문하려고 하니, 순간적으로 연세 70대 중반인 시아버님과 80대 중반인 친정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신경통과 관절염이 심하여 지팡이에 의지하여야만 걸음을 떼어 놓으시는 친정엄마를 생각하면서, 외할머니처럼 다리가 많이 아프신 분도 그 목걸이와 팔찌를 하면 효과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조카는 "그럼~ 이모 당연하지~~" 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시아버님 몫으로 하나, 친정부모님 몫으로 둘, 우리 부부 몫으로 둘. 이렇게 5세트를 주문했습니다. 저의 사무실 주소를 불러 준 후, 조카의 은행 계좌번호를 물었더니 조카는 끝끝내 대답해 주지 않고 전화를 끊고야 맙니다.

며칠동안 바쁘게 보내느라 깜빡 잊고 있었는데, 지난 목요일(7월 28일)에 조카가 보내 준 소포가 제 사무실에 도착을 했습니다.

야무지게 포장을 해서 보낸 소포의 포장지를 조심스럽게 풀어 보았습니다. 제가 주문한 물건 이외에도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 주라며 팔찌 2개도 함께 보내왔습니다.

▲ 검정과 빨간 팔찌는 아이들 것, 하얀색의 목걸이와 팔찌는 저의 것입니다.
ⓒ 한명라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는 직접 외갓집에 우편으로 보내 드리겠다는 조카의 말을 들으며, 이 철없는 이모가 괜한 짓을 하여 조카에게 적지 않은 물질적인 부담을 지우고 말았다고 때늦은 후회를 했습니다.

▲ 조카는 간단한 안부인사도 함께 보내 주었습니다.
ⓒ 한명라
너에게 괜히 전화를 했나보다 하는 저에게, 조카는 1년 전 딸기 바구니 밑의 10만원짜리 수표를 이야기하면서 이모에게 뭔가를 꼭 선물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조카는 저에게도 받고 싶은 선물이 있다고 했습니다.

언제인가 이모가 1년동안 길러서 민들레꽃을 피우게 했다는 글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때 민들레꽃 사진이 너무 예쁘더라면서, 그 민들레꽃 사진을 선물로 받아서 프린트하여 액자에 넣어 약국에 걸어 놓고 싶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면서,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던 모든 파일이 삭제되어 버렸지만 꼭 민들레꽃 사진을 찾아보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겨우 민들레꽃 사진 한 장을 선물로 보내지만, 제가 조카에게 특별한 선물을 보낼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결혼 4년째인 조카는 아직 아이가 없습니다. 부부가 워낙 바쁘게 살고 있는 탓에 아이를 가질 여유가 없었다고 하는데, 빠른 시일 내에 건강하고 귀여운 아이를 낳았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된다면 40대 초반의 이 이모는 이미 듣고 있는 말이지만 '이모할머니'라는 호칭을 기꺼이, 행복하게 들을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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