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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에 염전에 '물'을 앉힌다.
새벽녘에 염전에 '물'을 앉힌다. ⓒ 김준

바닷물 백 바가지로 소금 한 바가지 만든다

소금생산량은 바람이 어느 쪽에서 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염전을 동서로 가르는 소금창고를 기준으로 좌우에 직사각형으로 염전이 바둑판처럼 나누어져 있다. 대초리(염전 남쪽에 있는 마을) 쪽에서 바람이 불면 소금창고를 좌측에 있는 소금밭 염전에 소금이 많이 난다. 반대로 증동리 쪽에서 바람이 불면 반대로 우측에 있는 염부들이 즐거워한다. 바람에 방향에 따라 염부들의 얼굴빛이 다르다.

소금밭은 크기를 1판, 2판 등 '판'으로 규모를 나눈다. 1판은 4정으로 1만2000평이다. 지역에 따라 1판이 3정인 경우도 있지만 증도의 회사염전은 모두 4정씩 규격화되어 있다. 그리고 가운데 소금창고를 반으로 나뉘어 생산한 소금을 보관하고 있다.

소금밭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염전은 저수지, 누테, 난치, 결정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염전 가운데 '해주'라고 불리는 소금물(함수) 저장고가 있으며, '똘'이라고 부르는 고랑이 있다. 그리고 결정지와 결정지 사이에 소금을 만들고 나서 남은 함수('구간수')가 모이는 '자구'(똘보다 크고 깊은 고랑)가 있다.

모두 생소한 용어들이다. 누테와 난치는 '증발지'로 저수지에서 바닷물을 받아 증발시키는 곳이다. 이곳은 각각 6단으로 만들어져 있다. 1단씩 저수지 쪽에서 결정지로 이동할 때마다 염도는 0.5-1도씩 올라간다. 해주의 역할은 일정한 염도에 이른 함수를 보관하는 곳이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소금작업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 이때 며칠에 걸쳐 염도를 높인 함수를 '해주'에 보관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3도 정도의 바닷물이 각 단을 이동하면서 25도의 함수가 되어 결정지로 공급되어 소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바람과 햇볕을 만나 소금이 만들어진다.
바람과 햇볕을 만나 소금이 만들어진다. ⓒ 김준

자구의 모습과 소금창고. 소금을 거두기 전에 결정지에 남아 있는 함수는 자구로 모여서 해주에 보관된다.
자구의 모습과 소금창고. 소금을 거두기 전에 결정지에 남아 있는 함수는 자구로 모여서 해주에 보관된다. ⓒ 김준

인부들이 모두 잠에 빠져 있을 이른 새벽에 황인섭씨는 염전에 물을 앉히고 있다. 일찍이 무녀도에서 소금농사를 지었었고, 국내에 내놓으라는 건설회사에서 토목기술자로 근무도 했었다. 몇 년 전까지 괌을 비롯해 외국에서 토목기술자로 일하던 그가 귀국해서 다시 시작한 것이 염전이다.

두어 시간정도 물을 앉히고 아침을 마친 후 결정지에 사용할 '물'(함수)을 만들기 위해 한 단계씩 이동시킨다. 매일 염도를 높이면서 한 단씩 결정지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소금창고도 정리하고, 오후 5시 무렵부터 소금을 거둔다. 이때가 여름철에 지열이 최고로 올랐다 주춤해지는 시간이다. 소금을 거두는데 걸리는 시간은 생산된 소금량에 따라 다르지만 3-5시간가량 걸린다. 바람과 햇볕이 좋아 소금이 많이 나오는 날이면 저녁 11시 무렵까지도 작업을 해야 한다.

소금량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이다. 흔히 소금은 바닷물을 햇볕에 노출시켜 증발시키기 때문에 햇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햇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람이다. 아마 빨래를 말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금방 수긍할 것이다.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주고 햇볕이 내리 쬐이는 날이면 염부들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날일이다. 그런 날이 소금질도 좋고 소금도 많이 난다. 그래서 사계절 중 오뉴월 봄소금을 최고로 쳐주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밭일을 할 때 '봄볕에 며느리 내놓고 가을볕에 딸 내놓는다'고 했겠는가.

한 바가지 소금을 만드는데 바닷물이 얼마나 필요할까? 물을 앉히는 황씨가 따라다니는 필자에게 갑자기 던진 질문이다. 정답은 '백 바가지'였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나락 한 톨을 만들기 위해 손이 백번 간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소금 한 바가지에 바닷물 백 바가지는 처음 듣는 말이다.

소금을 거두는 일을 '대패질'이라고 한다.
소금을 거두는 일을 '대패질'이라고 한다. ⓒ 김준

농부들이 곡식을 거두듯 , 대패질을 하여 소금을 '거둔다'.
농부들이 곡식을 거두듯 , 대패질을 하여 소금을 '거둔다'. ⓒ 김준

'백금밭'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

한 판의 소금밭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성인 4명 정도의 노동력이 필요하다. 가족노동을 고려하더라도 2명 정도는 고용을 해야 한다. 이들 인부들은 대부분 직업소개소에서 공급되고 있다. 전국 천일염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신안의 염전노동자들은 대부분 목포에 있는 직업소개소에서 공급되고 있는 것이다.

직업소개소에서 사람을 소개받을 때 소개비로 적게는 100만원에서 많게는 몇 백만 원까지 지불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직업소개소에 염전 일을 하겠다고 일부러 찾아온 사람은 거의 없다. 소개받은 인부들은 대부분 가족이 없거나, 정신이나 신체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며, 일반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간혹 이를 악용해 임금을 주지 않거나, 정신이나 신체장애를 빌미로 임금체불은 물론 폭행까지 일삼는 악덕업주가 있었다.

이들에게는 숙식과 담배가 제공되며, 소금생산이 이루어지는 봄부터 가을까지 60-70여만 원의 월급이 주어진다. 물론 소금생산자들이 인부들을 직업소개소에서 데려다 쓰기 위해서는 그들이 직업소개소에 머물면서 쓴 돈을 모두 갚아야 한다. 악덕 직업소개소에서는 일자리를 찾기 전에 소개소에서 머물면서 3-4명에게 닭을 한 마리 넣어주고 각각 닭 한 마리를 올려놓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체류하면서 든 비용을 부풀려놓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술, 여자 등을 제공하고 터무니없이 높은 소개비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대패질로 모은 소금을 창고로 운반한다.
대패질로 모은 소금을 창고로 운반한다. ⓒ 김준

소금창고로 운반된 소금은 간수가 빠지면 30kg 포대에 담겨 유통된다.
소금창고로 운반된 소금은 간수가 빠지면 30kg 포대에 담겨 유통된다. ⓒ 김준

이렇게 해서 염전에 일꾼으로 들어온 사람들 중에는 '반장'을 아버지처럼 따르며 정착한 사람들도 있지만, 일은 고사하고 술을 먹고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염전이 많은 신안일대의 섬에서는 소금철이 되면 지역파출소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곤 한다. 최근에는 어느 염전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국가인권위원회에 민원이 제기되어 증도의 염전도 관할 경찰에서 모두 신상조사를 해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염전은 희망이기도 하다. 젊은 사람들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시기에 먹고, 자고, 충분하지는 않지만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염주들에게는 염전은 매우 수지맞는 사업이다. 우선 바닷물을 이용하기 때문에 원료대가 들지 않고, 햇볕과 바람을 이용하기 때문에 생산비용이 들지 않는다. 대신 인건비, 식비, 염전시설 및 유지비용이 목돈으로 들어가는 비용들이다. 염전 한판을 운영하는데 정확하게 계산하지 않았지만 작업반장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3000만 원정도 소요된다. 따라서 적어도 5천만 원 벌이는 되어야 가족노동의 품삯정도를 건지는 셈이다.

그래도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 염전일이 훨씬 낫다고 한다. 농사지어 일 년에 2-3천만 원 건지기는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소금은 봄에 시작해서 가을까지 짧으면 6개월여 기간에 마무리되기 때문에 더욱 수지맞는 일이다. 중국산 소금만 들어오지 않는다면 말이다.

프랑스 천일염(좌)과 우리나라 천일염, 토판에서 직접 만든 프랑스 천일염은 갯벌 색깔이 나며 우리 천일염은 하얀색을 띠고 있다.
프랑스 천일염(좌)과 우리나라 천일염, 토판에서 직접 만든 프랑스 천일염은 갯벌 색깔이 나며 우리 천일염은 하얀색을 띠고 있다. ⓒ 김준

소금은 식품이 되어야 한다

중국산 소금이 들어오기 전까지 소금은 '백금밭'으로 통했다. 하얀 소금이 갯벌에서 건져내는 백금이라는 말이다. 그만큼 돈벌이가 좋았다는 의미이리라. 신안에 소금을 내는 섬들은 '개들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돈이 흔했다는 이야기이다. 제주도에서는 귤 팔고, 완도에서는 김 팔아 대학생을 가르쳤다면, 신안에서는 소금 팔아 대학생을 가르쳤다고 한다.

하지만 1990년대 중국산 소금이 들어오면서 국내소금업계는 큰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바닷물을 퍼다 소금만 만들 줄 알았지, 연구개발에 등한시 한 탓에 중국의 값싼 인건비를 이용한 소금물량에 버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염전규모를 축소하는 '감단정책'이었다. 중국산 소금을 수입하는데 부과한 관세('수입부담금'이라고 함)를 이용해 폐전하는 생산자들에게 지원을 해주는 정책이었다. 급한 대로 생산량을 줄이려는 궁여지책이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었다.

토판(갯벌)에서 직접 만들어내는 프랑스 소금은 '식품'이지만, 깔판위에서 만들어낸 우리 소금은 '광물'이다.
토판(갯벌)에서 직접 만들어내는 프랑스 소금은 '식품'이지만, 깔판위에서 만들어낸 우리 소금은 '광물'이다. ⓒ 김준

다양한 포장으로 유통되는 프랑스의 천일염
다양한 포장으로 유통되는 프랑스의 천일염 ⓒ 김준

소금수입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이 마련되지 않는 것은 천일염전 생산자들이 대부분 영세한 섬 주민들이라는 점도 한 몫 했다. 물론 대규모로 염전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천일염 생산자들은 1-2판이 염전을 가족노동을 기반으로 운영하는 영세업자들이다. 이들의 이해요구를 수렴해 정책결정에 반영을 해야 하는 '대한염업조합'이 있기는 하지만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반면에 기계염이나 소금수입업자들은 거대한 기업들이다.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가는 봉지소금, 식염소금 등을 공급하는 것은 모두 이들 기업들이다. 식품관련 전문학자들이나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인들이 자금과 로비력을 갖춘 기업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분산되어 있는 천일염 생산자들의 요구를 반영해 줄 턱이 없다.

천일염은 김치를 비롯한 다양한 절임식품 등에 첨가되어 이용되지만 '식품'이 아니라 '광물'의 적용을 받는다. 규제에서부터 시작해서 지원에 이르기 까지 식품과 광물의 차이는 매우 크다. 여기에는 식품 인정을 받는 소금을 생산하는 재제염 등 대규모 가공업자들의 기득권 유지와 관련된 이해관계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소금의 식품기준이 우리 소금의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외국의 기준에 적용을 받고 있는 것도 문제라 할 수 있다.

우리 소금은 갯벌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이러한 소금을 순수한 염화나트륨만 가지고 성분 측정을 할 경우 식염이 될 수 없다. 이미 프랑스 등지에서는 갯벌 즉 토판위에서 만들어낸 소금을 식품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전문 자격증까지 부여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염전을 소금생산만이 아니라 습지, 생태공원 등 다양한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고 있다.

염전이 염전으로 이용될 때 갯벌은 자연 상태로 지속될 수 있다. 그곳이 양어장으로 사용되어도 인근 갯벌에는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하물며 골프장이 들어선다고 생각해보라. 염전에서 소금생산이 지속되는 한, 바닷물을 이용해 소금을 만들어낸 한 그곳 갯벌의 생태계는 지속될 것이다. 굵은 소금은 김치 등 절임식품과 젓갈 등 발효식품의 기본이다. 우리문화의 뿌리인 셈이다. 문화에 대한 관심은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등 IT나 CT에만 국한일이 아니라 우리 생활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소금에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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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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