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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계속되는 열대야 현상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여러 날입니다.
저의 사무실과 마트에는 에어컨이 있어서, 사무실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그런 대로 견딜만합니다. 하지만 여름방학을 맞이한 딸아이와 아들아이는 오전에 학원을 다녀오면 엄마도 없는 집에서 TV와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습니다.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에 퇴근하여 우리 집 현관을 들어서면, 그대로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두 아이가 제대로 된 점심식사도 하지 않고, 엄마도 없는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탓에 집안 정리와 저녁식사를 챙기느라 마음부터 바쁩니다.

중학교 2학년인 딸아이 은빈이와 중학교 1학년인 아들아이 승완이.
두 아이들은 엄마의 간섭 없이 TV시청이나 컴퓨터 게임을 하느라, 나름대로 즐거운 방학이겠지만, 저의 어릴 적 여름방학과 비교해 보면, 꽉 막힌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하루 온종일을 보내는 아이들이 참으로 안쓰럽고, 안되어 보입니다.

산이 무척 높고, 물도 맑았던 제 고향의 여름은, 내리쬐는 여름 햇볕이 한낮이면 정말이지 숨이라도 콱 막힐 정도로 온 대지를 뜨겁게 달구었었습니다.

일제시대 일본인들의 관사였다는 우리집은 정남향의 창문이 유난히도 많았던 집이었습니다.

텃밭의 상추와 콩잎들도, 옥수수들도, 헉헉 거리듯 축축 늘어지는 여름 한낮.
동생과 저는 우리 집 넓은 대청마루에 누워,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보곤 했습니다. 뭉게구름은 엄마의 얼굴을 그리기도 하고, 여러 종류의 동물들의 모습을 요리조리 그리기도 하며, 저의 상상의 세계를 한껏 부풀려 주었습니다.

어디선가 농약을 뿌리는 기계소리가 더운 한낮을 더욱 후덥지근하게 부채질 하고, 탱자나무 울타리 사이에 커다란 자태로 버티고 있는 은행나무 가지에서 매미는 무덥지도 않는지 줄기차게 그 목소리를 뽐을 냈습니다.

드디어 기세 좋게 내리쬐던 태양이 그 기세를 누그러뜨리는 오후가 되면, 한적했던 동네의 골목에서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왁자지껄 하다가, 모두들 의기투합하여 갈아입을 옷들을 챙겨 가지고 동네 옆을 흐르는 냇가로 향했습니다.

저는 대나무로 만든 소쿠리 하나를 더 챙겨듭니다.

드디어 아이들은 허물을 벗듯 훌훌 벗은 옷들을 풀섶에 던져 놓고, 첨벙 첨벙대며 냇물로 뛰어듭니다. 지금의 아이들은 수영장에서 기본부터 착실하게 수영을 배우지만, 그 시절의 우리들은 누구에게 배우지 않았어도, 자기 나름대로 개구리헤엄을 치며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물론 저 또한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첨벙대며 물장구를 치기도 했지요.

신났던 물놀이도 어느새 시들해지면, 물속의 모래밭을 두 발로 질질 끌면서 앞으로 걸어갑니다. 한참을 가다가 뒤돌아서서 갔던 길을 되돌아오면, 제가 발로 모래밭을 파던 곳에 조개들이 숨겼던 몸을 드러 내놓고 누워 있습니다. 그 조개는 지금 대부분 사람들이 "재첩"이라고 부르는 조개입니다. 우리 고향에서는 "경조개"라고 불렀었지요.

제법 그 크기가 백합조개만큼 큰 경조개도 많았습니다. 그 조개들을 소쿠리에 하나 둘 담다 보면, 어느 사이 소쿠리는 그 경조개로 가득 찹니다.

멱도 감고, 경조개도 잡고, 저는 일석이조의 피서를 했습니다.

그렇게 잡아 온 경조개를 엄마는 하루 동안 물에 담가서 해감을 시키고는,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는 시원한 조갯국을 끓이셨습니다. 그때 엄마께서 끓여 주신 추억속의 조개국은, 지금의 제가 아무리 흉내를 내려고 해도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엄마만의 손맛입니다.

해질 무렵이면, 저녁밥을 먹기 위해서 널찍한 마당에 모깃불을 놓습니다. 조금 덜 마른 쑥이며, 여러 가지 풀 더미를 쌓아 놓고 피우는 모기불의 매캐한 연기가 온 집안을 휘감아 돌아도, 동생과 저는 마당 한가운데 서서 밤하늘을 목이 아프도록 올려다보곤 했습니다.

밤하늘에는 은하수와 수많은 별들이 금방이라도 와르르 쏟아져 내릴 듯, 그 크고 작은 빛들을 쉴 새 없이 반짝이곤 했습니다.

우리는 초등학교 자연시간에 배운 별자리들을 아는 데로 경쟁을 하듯 읊어 댔습니다. 저것은 북극성, 저건 카시오페아 자리, 또 저것은 북두칠성, 정말 국자를 닮았네.

▲ 그 시절, 고향집 꽃밭에서 언니와 동생, 제가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 한명라
꽃밭 가장자리를 따라 빙~ 둘러 피어 있는 봉숭아꽃과 그 잎을 땄습니다. 그리고 검정 숯과 백반, 소금도 조금 넣고 돌로 콩콩 찧어 놓습니다. 저녁밥을 먹은 후 밤이 깊어져서 잠자리에 들기 전,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 약지 손가락에 비닐봉지를 잘라 대어 놓고 실로 촘촘하게 묶습니다.

손톱에 봉숭아 꽃물을 들이는 날이면, 제대로 몸을 돌아눕지도 못하고 잠자리를 설치기가 태반입니다. 비몽사몽간의 꿈속을 헤매다 보면, 어느새 안개가 뿌연 아침이 되어 버리고, 제대로 눈은 떠지지 않지만 봉숭아 꽃물이 빨갛게 잘 들여졌는지 손끝으로 온 신경이 쏠렸지요.

꼭 한두 개쯤은 그 실을 너무도 세게 동여 맨 탓인지, 잠결에 자신도 모르게 빼 버려서 유난히 멀건 손톱도 있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빼버린 비닐뭉치를 다시 손톱에 꽂아 보기도 하고,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아서 그 날 밤 또 봉숭아 꽃물을 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물들인 봉숭아 꽃물은 부디 첫눈이 올 때까지 남아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기도 했습니다.

여름휴가 때 언니 오빠들이 고향을 찾아오면, 온 가족들이 원두막을 찾아가 그동안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었던 참외와 수박을 원 없이 먹었습니다.

늦은 밤, 엄마와 언니들을 따라 냇가로 목욕을 하러 가기도 했지요. 저는 그날 낮에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미역을 감았기에 굳이 갈 필요가 없었지만, 다 큰 언니들과 엄마와 함께 그 은밀하고 조심스러운 목욕을 함께 해 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심야에 여자들만 떠나는 목욕행렬에 꼭 빠지지 않으려고 늦은 밤까지 눈꺼풀을 치켜 뜨며 쏟아지는 잠과의 전쟁을 힘겹게 치러내곤 했습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자그마한 돌들이 쫙 깔린 야트막한 냇가에서는 다슬기들이 정말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 고향에서는 대수리(대사리)라고 불렀는데, 돌멩이들을 들춰 가면서 다슬기를 잡는 재미는 또 얼마나 쏠쏠했는지요.

그렇게 잡아 온 다슬기도 하루쯤 물에 담가 놓습니다. 깨끗하게 씻어서 펄펄 끓는 물에 삶습니다. 저녁 밥상머리에 온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탱자나무 가시로 다슬기의 알맹이를 빼 먹던 기억들도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저의 어렸을 적 고향에는, 무더운 여름날 오염되지 않은 냇가에서 하루, 하루를 소일하던 추억들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에게도 저희만큼 어린 시절이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요? 아직도 잊지 못하는 생생한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요?

저희들 나름대로 만화영화와 컴퓨터 게임으로 보내는 지금의 시절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제가 보냈던 어릴 적 그 추억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듬뿍 듬뿍 나눠 주고 싶습니다.

가끔 삶에 지치고 힘들 때, 입가에 작은 미소를 떠 올릴 수 있는, 꼭 한번은 되돌아가고 싶은 추억들을요.

덧붙이는 글 | '이 여름을 시원하게' 특집 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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