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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닭갈비 먹고 복더위 쫓아내세요
ⓒ 이종찬

초복을 지나 복날의 배꼽, 복중(25일)을 맞아 복더위가 사람들의 숨을 턱턱 막는다. 조금만 움직여도 이마와 등에서 땀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서둘러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도 의욕이 나지 않고 짜증만 자꾸 난다.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아 어떤 일에 포옥 빠져들고 싶어도 이상하게 온몸이 나른한 게 기운이 하나도 없다.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그대로 드러누워 낮잠이라도 실컷 자고 나면 온몸에 쌓인 피로가 조금은 사라질까. 깊은 산 계곡이나 앞이 확 트인 바닷가에 가서 물놀이라도 즐기면 온갖 피로와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날아가 버릴 것도 같은데. 하지만 지금 내게 주어진 현실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자유롭지 못하다.

일년 중 가장 무덥다는 중복.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복날이 되면 땀으로 빠져나간 몸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여러 가지 보신탕을 먹으며 그 지독한 무더위를 이겨냈다. 그 중 닭고기는 개고기와 함께 여름철 빠지지 않는 대표적 보양식이었다. 게다가 닭은 다른 육류와는 달리 단백질이 많고, 지방질이 낮아 삼계탕, 백숙, 닭곰탕, 닭갈비 등 여러 가지 조리법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왔다.

특히 70~80년대부터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춘천닭갈비는 그동안 삼계탕이나 백숙에만 입맛이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새로운 닭고기의 맛을 선물했다. 그렇다고 닭갈비가 예전에는 아예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요즈음 우리가 먹고 있는 닭갈비와 비슷한 음식은 지금으로부터 1400년 앞인 신라시대부터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긴, 들이나 산에서 살던 멧닭을 집에서 기르기 시작한 역사가 무려 4000년 앞이라고 하니, 그럴 만도 하지 않겠는가.

▲ 밑반찬으로 물김치, 깍두기, 오이, 당근, 된장, 깻잎이 나온다
ⓒ 이종찬

▲ 이 집 닭갈비의 특징은 팬에 식용유 대신 다신물을 붓는 것에 있다
ⓒ 이종찬

<춘천문화원> 자료에는 "닭갈비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대략 1950~60년대"라고 적혀 있다. 1950년대 옛 강원은행 본점 자리에서 김씨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닭불고기집을 열면서 사람들의 입방에 오르락내리락했다는 것. 하지만 지금의 춘천닭갈비는 70년대 초 춘천시 명동 뒷골목에 들어선 우미, 육림, 뚝배기집, 대성닭갈비가 원조라고 한다. 그때부터 춘천 명동 뒷골목에 본격적인 닭갈비골목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춘천닭갈비는 양파즙과 청주, 소금 등에 잘 버무린 닭고기를 양배추와 고구마, 대파, 깻잎 등 여러 가지 채소에 양념장을 얹어 철판 위에 올려 구워 먹는 것이 특징이다. 그중 춘천닭갈비의 매콤달콤한 맛을 내는 것은 바로 양념장. 다진 마늘과 생강, 양파, 고춧가루, 설탕, 간장, 맛술 등 20여 가지 재료가 들어가는 이 양념장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저희 집 양념장의 포인터는 고추장에 있어예. 저희들은 고추장을 고를 때 가장 신경을 많이 써지예. 그 다음에 들어가는 재료는 다른 집과 똑같아예. 고춧가루, 다진 마늘, 생강, 설탕, 물엿, 간장, 참기름 등등. 더 이상은 묻지 마이소. 저희 집 비법을 다 가르쳐주고 나모 저희들 장사는 우째 하라꼬예."

지난 13일(수) 늦은 밤 10시. 경남민예총 창립준비회의를 마치고 일행들과 함께 찾았던 춘천닭갈비전문점 '원조춘천닭갈비'(경남 창원시 도계동 로얄볼링장 맞은 편). 10여년 앞부터 이곳에서 춘천닭갈비만 고집해왔다는 이 집 주인 권현근(42), 김옥자(38) 부부는 "30여년 전부터 춘천닭갈비를 만들어온 부모님에게서 비법을 배웠다"며, "저희 닭갈비는 느끼하지 않고 양이 푸짐한 것이 특징"이라고 말한다.

▲ 닭은 고단백이자 저지방이어서 다이어트에도 아주 좋다
ⓒ 이종찬

▲ 닭갈비를 깻잎에 싸먹는 그맛도 일품이다
ⓒ 이종찬

별다른 장식이 없는 10평 남짓한 비좁고 허름한 실내. 곳곳에 듬성듬성 놓인 둥근 탁자 주변에서는 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닭갈비를 즐기는 손님들이 제법 있다. 저만치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눈웃음을 주고받으며 닭갈비를 깻잎에 동그마니 싸서 아이의 입에 쏘옥 넣어주는 엄마의 모습도 보인다. 참으로 살가운, 살아 움직이는 풍경 그대로다.

그래, 이 무더운 여름밤.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끌어안고 멍하니 TV를 보거나 컴퓨터게임을 즐기는 것보다야 가족들끼리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밤나들이를 나와 닭갈비를 먹고 있는 저런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매콤달콤한 닭갈비 한 점 나눠먹으며 더위도 쫓고, 짜증도 쫓고, 정도 쌓고, 건강도 챙기는 저런 모습이야말로 복더위를 이겨내는 작은 지혜가 아니겠는가.

"국산 닭이 아니모 아예 상대로 안 하지예. 그라고 대부분의 춘천닭갈비집에서는 닭살만 사용하지만 저희들은 처음부터 뼈가 있는 닭갈비만을 고집했지예. 닭뼈에 붙어있는 쫄깃한 닭살을 뜯어먹는 재미가 있어야 제 맛이 나지예. 하여튼 지금까지 저희집 닭갈비를 드신 분들은 다른 집에 비해 닭 냄새가 나지 않고 뒷맛이 아주 깔끔하다고 그러지예."

일행들이 밑반찬으로 나온 오이와 당근을 안주 삼아 소주 몇 잔 홀짝거리고 있을 때 김옥자씨가 바알간 닭갈비(1인분 5000원)가 푸짐하게 담긴 커다란 무쇠냄비를 식탁 한가운데 움푹 패인 불판 위에 올린다. 이걸 언제 다 먹어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어 밑반찬으로 생굴이 든 깍두기와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이는 물김치, 파릇파릇한 깻잎이 놓인다.

▲ 아~ 이 닭갈비 먹고 무더위 날려버리세요
ⓒ 이종찬

▲ 이집 닭갈비는 매콤달콤하면서도 쫄깃한 맛이 끝내준다
ⓒ 이종찬

그때, 이 집으로 일행들을 안내한 우대식(마창민예총 의장)씨가 "저는 이 집이 아니면 닭갈비를 아예 먹지 않습니다"라며, 금세 숯불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닭갈비를 깻잎에 한 점 싸서 입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손짓으로 어서 먹으라는 시늉을 한다. 이 집 닭갈비의 맛에 대해서 더 이상 왈가불가하지 말고, 먼저 한 입 먹어보라는 투다.

송송 썰어 넣은 양배추와 양파, 당근 등 각종 채소들과 함께 맛깔스럽게 익어가는 닭갈비를 한 점 찍어 입에 넣자 코 끝이 찡할 정도로 매콤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맛이 혀끝을 맴돈다. 이내 이빨 사이로 쫄깃하게 씹히는 닭갈비의 부드러운 맛. 깻잎에 닭갈비를 싸서 먹는 맛도 그만이다. 깻잎의 향긋한 맛과 닭갈비의 매콤달콤한 맛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끝없이 혀끝을 농락한다.

닭갈비를 먹는 틈틈이 마시는 소주도 몹시 달다. 이렇게 쫄깃하면서도 혓바닥에 착착 감겨드는 닭갈비를 안주 삼아 소주를 먹다 보면 주량을 훨씬 넘기고도 별로 취하지 않을 것만 같다. 닭갈비를 먹으며 가끔 떠먹는 물김치의 상큼하면서도 시원한 맛도 끝내준다. 어디 그뿐이랴. 닭갈비와 함께 익어가는 쫀득쫀득한 가래떡을 집어먹는 그 맛은 또 어쩌랴.

"라면을 드릴까예? 공기밥을 드릴까예?"
"둘 다 주면 안 돼요?"
"그러면 라면은 비벼 드시고, 공기밥은 볶아 드이소."


▲ 마지막으로 남은 양념과 야채에 라면사리를 비벼먹거나 밥을 볶아먹는 그 맛은 쉬이 잊을 수 없다
ⓒ 이종찬
아무리 먹어도 결코 질리지 않을 것만 같은 맛깔스런 닭갈비. 닭갈비를 대충 골라 먹은 뒤 남은 양념과 채소에 삶은 라면사리를 넣어 비벼먹는 맛도 그만이다. 게다가 라면사리를 다 먹고 난 뒤 공기밥을 얹어 김가루와 참기름을 뿌려 볶아 먹는 그 기막힌 맛. 그 고소하고도 혀끝에 착착 달라붙는 그 맛을 어디에 비길 수 있으랴.

"대부분의 닭갈비집에서는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닭갈비를 볶아 먹지예. 하지만 저희들은 팬에 식용유를 두르지 않고 해조류로 4~5시간 동안 우려낸 다신물을 자작하게 붓지예. 팬에 식용유를 두르면 닭갈비의 맛이 약간 느끼해지지만 다신물을 두르면 닭갈비의 맛이 아주 깔끔하고 깊은 맛이 나거든예."

여름철 입맛 돋구는 춘천닭갈비 이렇게 만드세요
카레가루 살짝 뿌리면 닭고기 특유의 비린 맛 안녕

▲ 닭갈비
ⓒ이종찬

재료: 닭갈비살, 양파즙, 소금, 후춧가루, 청주, 양배추, 당근, 감자, 실파, 다신물, 양념장(고추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생강, 설탕, 물엿, 간장, 참기름).

1. 살만 발라낸 닭갈비를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은 뒤 물기를 뺀다. 뼈에 붙은 쫄깃한 살을 발라먹는 맛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뼈 있는 닭갈비를 준비하면 된다.

2. 물기를 쪼옥 뺀 닭갈비살에 양파즙, 소금, 후춧가루, 청주를 적당량 넣어 손으로 조물조물 주물러 밑간을 해둔다. 이때 카레가루를 살짝 뿌리면 닭고기 특유의 비린내가 사라진다.

3. 닭갈비를 구울 때 팬에 두를 다신물(멸치, 조개, 다시마 등 해조류)을 만든다. 다신물 대신 식용유를 사용해도 된다.

4. 고추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생강, 설탕, 물엿, 간장, 참기름을 골고루 섞어 닭갈비 양념장을 만든다.

5. 양파와 양배추, 감자는 굵직하게 채 썰고, 당근은 얄팍하게 채 썬다. 이때 실파도 5cm 길이로 같이 썰어둔다.

6. 중간불에 적당히 달군 팬에 다신물을 두르고 밑간한 닭갈비와 양념장, 준비한 채소를 푸짐하게 올려 지글지글 볶아가며 먹는다.

※맛 더하기: 닭갈비는 상치보다 싱싱한 깻잎에 쌈을 싸먹어야 깊은 맛을 즐길 수 있고, 남은 닭갈비에 김가루와 참기름을 뿌려 공기밥에 비벼먹는 맛이 그만이다. 밑반찬으로 오이와 당근 썬 것을 된장과 함께 내는 것도 조리의 지혜. / 이종찬 기자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대진고속도로-마산-창원-창원역-39사단-도계동 로얄볼링장 맞은 편-춘천닭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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