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양력으로 7월 8일이 딸아이의 생일이다. 바꾸어 말하면 딸아이는 지금 같은 한여름에 태어난 것이다.

어찌나 더웠던지 적어도 삼칠이 지날 때까지는 배냇저고리를 입히고 아이가 놀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싸개로 몸을 싸주어야 한다고 시어머니께서 말씀 하셨지만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반팔에 달랑 기저귀만 채워 놓았었다.

덕분에 아이는 한겨울에도 절대 이불을 덥고 자는 법이 없는, 그럼에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는, 추운 것에 대한 절대적인 면역성을 기른 듯했다.

겨울에 강한 반면. 딸아이는 여름이란 계절에 한없이 약했다. 온 몸은 땀띠로 도배를 하다시피 했고 가만있어도 줄줄 흐르는 땀방울로 늘 모기가 친구하자고 덤비는 통에 아이의 여름 날 하루하루는 수난의 연속이어야 했다.

내겐 올 여름이 이 시골에서 맞는 4번째 여름이고 딸아이는 할머니 댁에서 1년을 더 있었기에 3번째 여름이 된다.

사방이 툭 트인 시골마을. 매연에 범벅이 된 도시의 찌든 바람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천연의 서늘한 바람. 녹색의 숲에서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넘치는 싱그러움들. 딸아이가 보낸 두 번의 여름은 아이에겐 분명 천국 이었다.

요즘. 딸아이는 아예 밖에서 산다. 유치원에서 돌아와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 놓기 위해 잠깐 집안으로 들어오는 게 고작이다.

꼬리 긴 여름태양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손바닥만한 그늘을 찾아 마당 이곳저곳으로 자리를 옮겨 놓느라 발걸음이 분주하다. 적당한 그늘을 찾으면 은박이 반짝거리는 자리를 편다. 거기서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또 할아버지와 찰흙놀이를 한다. 먼데 하늘에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얼마 전. 저녁밥을 차려놓고 딸아이를 소리쳐 불렀다.

"복희야! 밥 먹자. 어서 들어와 손 씻어야지."
"엄마! 우리 밖에서 밥 먹어요. 그리고 잠도 밖에서 자요. 여기 엄청 시원해요. 엄마도 나와 보세요."


아이는 얼굴은 내밀지도 않은 채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만 질러 대었다.

"복희야! 어서 들어 와. 아빠 기다리신다."
"……"


반응이 없었다. 남편이 수저를 들다말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아이를 데리고 들어 왔다.

"아빠! 꼭 약속 지켜야 돼요!"
"알았어."


밥을 먹다말고 남편과 아이는 내가 모르는 뭔가를 이야기 하고 있었다.

"뭐야? 뭔데?"
"그런 게 있어. 그건 아빠하고 딸 사이의 비밀이니까 알려고 하지 마."
"뭐야 나를 왕따 시키는 거야?"


난 그렇게 남편과 딸아이 사이에서 불쌍하게 왕따를 당하고 말았다. 그 후 며칠동안 남편과 딸아이는 내 앞에서 철저하게 입단속을 하는 듯 그저 둘이서만 뭔가를 속삭이곤 했다.

오늘 오후. 남편과 딸 사이의 그 비밀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노란 택배차가 뭔가를 집에다 내려놓았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자기 앞으로 택배가 왔는데 이거 뭐야?"
"벌써 왔어? 저번에 복희가 마당에다 시원한 자기 집 하나 지어달래잖아. 그래서 그러마고 했지 뭐. 그거 그늘막이야. 이거 복희하고 나하고의 비밀이니까 복희에겐 아는 체 하지 마."


유치원에서 돌아온 딸아이는 여느 때처럼 손바닥만한 그늘을 찾아 커다란 은박지 자리를 들고 온 마당을 동동 거렸다. 그런 딸아이를 바라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남편이 돌아와 시원한 자기 집을 만들어 주면 아이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남편이 이른 퇴근을 했다. 한참을 마당에서 아이와 시끌벅적했다. 아이는 나더러 부를 때까지 나오지 말라고 했다. 아이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 이제 딸아이의 집이 될 그늘막
ⓒ 김정혜

"엄마! 밖에 나와 보세요!"
"어머! 이게 뭐야?"

▲ 햇볕을 막아 아이가 시원하게 놀 수있는 그늘막
ⓒ 김정혜

"이거 이제 복희 집이예요. 아빠가 만들어 줬어요. 근사하지요?"
"와! 정말 멋진데! 엄마도 한번 들어가 보면 안돼?"
"들어오세요. 엄마! 복희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이는 두 손으로 치마 끝을 얌전하게 들어 올리고 허리를 구부리며 제법 숙녀 티가 나는 환영인사를 했다.

▲ 보기에도 시원한 그늘막
ⓒ 김정혜

그늘막 안에서 저녁밥을 먹었다. 남편과 아이는 9시가 넘도록 그늘막 안에서 떠들고 놀았다. 뭐가 그리 좋은지 둘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더니 어느새 아이는 아빠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다. 모기를 쫓는 남편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 그늘막 안에서 할아버지와 놀고 있는 딸아이
ⓒ 김정혜

내일부턴 딸아이의 여름이 더 행복해 질 것 같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