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조선군의 수가 생각보다 많지만 걱정할 것은 없다. 저들이 왜 산성 안에 있지 않고 밖에다 진을 치고 있겠나?”

보얀의 지적에 토올은 머리를 갸웃거렸다.

“저들의 머릿수도 만만치 않으니 한번쯤은 이런 야지에서 크게 싸워보려는 심산이 아니겠습니까?”

보얀은 크게 웃으며 토올을 나무랐다.

“저들의 태세를 보고 겁이라도 먹은 것이냐! 언덕을 점령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평지에서 조선군은 단 5백의 병사를 보고도 먼발치에서 겁을 먹고 총을 쏘았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조선군은 원래 산성에서의 싸움에 능숙한데도 어떤 이유로 억지로 야지에 나와 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다만 지금 땅이 굳지 않아 말을 달리기 어려운 게 문제일 뿐이다.”

보얀의 지적처럼 성을 바로 앞에도 두고서도 들어서지 못하고 보급마저 여의치 않은 조선군의 분위기는 어수선 하기만 했다.

“이거 무슨 수를 써야 되지 않겠소? 왜 성에서는 우리를 모른 채 하는 것이오?”

답답해진 차충량이 장판수를 잡고 하소연 했지만 장판수라고 별반 뾰족한 수는 생각나지 않았다.

“성안의 놈들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것 같은데…, 내래 산성의 암문을 알고 있으니 그리로 병사들과 들어간다면….”
“그래서는 아니 되오. 우리 병사들끼리 말썽이 생겨서는 곤란하지 않소.”

한참을 고민하던 장판수는 좋은 생각이 떠올라 자신의 무릎을 탁 쳤다.

“왜 그걸 생각하지 못했지! 진중에 남한산성을 제 집 드나들 듯이 했던 자가 있습네다. 그 자를 시켜 성안의 사정을 염탐하게 하면 어떻겠습네까?”
“그게 누구요? 어서 데려 오시오.”

장판수는 지체 없이 서흔남을 불렀고 그에게 성안으로 들어가 그 사정을 염탐해 오도록 부탁했다.

“자네는 모른다고 하지만 상황이 이 모양이니 내래 자네를 온전히 믿지는 않아. 하지만 어쩌갔어. 마음 같아서는 내가 들어가고 싶지만 그럴 사정이 못되니 말이네.”

서흔남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초관께서 절 믿지 못하겠다니 섭섭할 따름입니다. 남한선성에 드나드는 것이야 이제는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이니 꼭 다시 돌아와 안의 사정을 전하겠습니다.”

서흔남은 그 즉시 남한산성의 암문을 통해 들어가 두청을 찾아갔다.

“말씀 하신대로 일을 진행했습니다. 예상 하신대로 상황이 답답해지니 절 이리로 보내더이다.”
“밖의 사정은 어떠한가?”
“병마사는 완전 허수아비나 다름없습니다. 장수들은 이미 진을 떠났고 병사들은 장판수와 의병대장, 그리고 종사관 하나가 지휘하고 있는데 사정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습니다.”
“장판수?”

두청은 잠시 눈살을 찡그렸다가 풀었다.

“그 자를 성안으로 끌어들여라.”
“예?”

서흔남은 두청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잊었나? 남한산성에 있을 때 성안의 병사들이 그 놈을 중심으로 모여들지 않았나? 의병대장이나 종사관이 어떤 자인지는 내 모르겠지만 장판수만한 자들일까.”
“어찌 해야 그를 불러들일 수 있습니까?”

두청은 장삼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더니 서흔남에게 낮은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말했다.

“…이리저리 하면 그 자가 성안으로 들어올 터이네. 안의 일은 신경 쓰지 말고 데리고 오기만 하면 되네.”

서흔남은 고개를 숙였다가 한 참 뒤에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자를 죽일 것입니까?”

두청은 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누가 어찌한다고 했나? 쓸데없이 토 달지 말고 자네는 내가 시킨 일이나 하게! 자네가 잘 되는 길은 내 말을 잘 따르는 것이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