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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위에 입맛 없을 땐 등 푸른 생선 고등어가 최고여
ⓒ 이종찬

아무리 신선한 어물전이라도
한물간 비린내가 먼저 마중 나온다
한물간 생은 서로를 느껴 알지
죽은 자의 세상도 물간 비린내는 풍기게 마련
한마리씩 줄 지은 꽁치 옆에 짝지어 누운 간고등어
껴안고 껴안긴 채 아무렇지도 않다

오랜 세월을 서로가 이별을 염려해온 듯
쩔어든 불안이 배어 올라가 푸르러야 할 등줄기까지 뇌오랗다
변색될수록 맛들여져 간간 짭쪼름 제 맛 난다니
함께한 세월이 길수록 풋내 나던 비린 생은
서로를 길들여 한가지로 맛나는가

안동 간고등어요
안동은 가본 적 없어도 편안 안(安)자에 끌리는지
때로는 변색도 희망도 되는지
등 푸른 시절부터 서로에게 맞추다가 뇌오랗게 변색되면
둘이서도 둘인 줄 모르는
한 손으로 팔리는 간고등어 한쌍을 골라든
은발 내외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반백의 주부들.

- 유안진 '간고등어 한 손' 모두


어둠을 푹푹 찌는 열대야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이 잦아진다. 밤낮 선풍기 바람이나 에어컨 바람에 시달려서인지 얼굴도 푸석푸석하고 입 속도 껄끄럽다. 여러 가지 반찬이 널린 밥상 앞에 앉아도 얼른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그냥 끼니를 거르자니, 그렇찮아도 무더위에 시달려 축 늘어진 무거운 몸이 걱정된다.

이럴 때 뜨거운 해장국이라도 후루룩 후루룩 마시면 금세 피로가 확 풀릴 것만 같으련만 날씨가 너무 무덥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삐질삐질 나는 땡여름, 순식간에 입맛을 돋궈주는 음식은 없을까. 간편하게 먹을 수 있으면서도 무더위에 지친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그런 음식.

있다. 바다에서 나는 갈비 고등어다. 고등어는 등푸른 생선의 으뜸으로 머리를 좋게 한다는 DHA와 혈액의 흐름을 도와주는 EPA가 듬뿍 들어 있는 음식이다. 어디 그뿐이랴. 고등어는 사람 몸의 면역력을 키워주고, 눈을 밝게 하는 것은 물론 혈소판의 굳힘을 막고 혈압을 낮추는 역할까지 한다.

▲ 잘 손질한 싱싱한 고등어
ⓒ 이종찬

마산 창동 불종거리 어갈비 골목의 추억

1980년대 초, 스무살 시절 나와 동무들은 한여름 도심을 뜨겁게 달구던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떼 지어 몰려가던 곳이 있었다. 어쩌다 무슨 볼 일 때문에 혼자 멀리 떨어져 있다가도 그 시간이 되면 그곳이 늘 떠올랐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면 언제든지 막걸리잔을 부딪치며 제비새끼처럼 조잘대고 있는 살가운 동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곳은 마산 창동 불종거리 한 귀퉁이 외진 골목에 쭉 늘어서 있는 어갈비집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누구나 사람 두 명 정도가 겨우 지날 수 있었던 그 비좁은 골목을 '어갈비 골목'이라 불렀다. 또한 그 골목에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던 비좁고 허름한 가게에서는 어갈비와 막걸리를 뺀 다른 음식은 아예 팔지 않았다.

"올(오늘)도 땀을 서너 말쯤 흘렸는데, 갈비 서너 짝이라도 해야 안 되것나?"
"우리 주제에 갈비는 머슨 갈비. 탁주 반 되는 밥 한 그릇이라카이 막걸리라도 두세 발 쭈욱 마셨으모 원이 없것다."
"일마 이거 촌놈은 정말 촌놈이네. 니 안주꺼정(아직까지) 어갈비가 뭔지도 잘 모르나?"
"어갈비?"
"씰데없는 소리 고마(그만) 하고 무조건 따라온나. 바다에서 나는 갈비라꼬, 니도 한번 묵고나모 맨날 가자꼬 난리로 피울끼다."


그 당시 마산이나 창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고등어 양념구이'를 '어갈비'라 불렀다. 하지만 바다가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갈비'가 무언지 잘 몰랐다. 특히 함안이나 의령, 창녕 등지에서 살아가는 동무들 중에서도 '어갈비'가 뭔지 잘 몰라 갈비 서너 대 먹으러 가자고 하면 눈을 휘둥그레 뜨곤 했다.

▲ 고등어는 혈액순환을 돕고, 눈을 맑게 하며, 사람 몸의 면역력 강화에도 그만이다
ⓒ 이종찬
그렇게 우리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던 곳이 어갈비 골목이었다. 그때 우리들이 단골로 삼았던 그 집에서는 잘 다듬은 고등어에 고추장 등 여러 가지 양념을 발라 앞뒤로 잘 구워낸 뒤 잔파를 송송송 뿌려 막걸리 한 주전자와 함께 내주었다.

값도 쌌다. 천 원짜리 한 장(그 당시 커피 한 잔이 300원)이면 어갈비 몇 접시와 막걸리를 실컷 먹고도 집에 갈 차비가 남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안타깝게도 그 어갈비 골목은 몽땅 다 사라지고 없다. 아니, 꼭 한 집이 남아 있긴 한데 밤이 깊어서야 문을 여는지 오후 5시까지도 문이 꼭꼭 닫혀 있었다.

장어값 오르면 장어 대신 갈아 넣었던 고등어

1980년대 초, 마산 어시장과 부림시장 주변에는 추어탕과 맛이 엇비슷한 장어탕을 파는 식당이 널려 있었다. 그때 장어탕을 파는 식당에 들어가 장어탕을 시키면 장어탕과 국수, 밥 한 공기가 제피를 뿌린 열무김치와 함께 나왔다. 하지만 어떤 식당은 차림표에 '장어국수'라 써놓고 장어탕에 국수만 말아주기도 했다.

입맛이 별로 없는 무더운 여름철에 장어탕에 밥을 말아먹는 사람들보다 아예 국수를 말아 후루룩 들이마시는 사람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장어탕에 밥을 말아먹는 것보다 국수를 말아먹으면 장어탕 특유의 깊은 감칠맛이 나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나 또한 장어탕에 국수를 말아먹는 것을 참 좋아했다.

▲ 불판 위에 고등어를 올려놓고 소금과 후춧가루를 뿌린 뒤 중간불에서 굽는다
ⓒ 이종찬
"아지메! 오늘 장어탕이 심심한 걸 보이(보니까) 장어를 적게 갈아 넣었는 갑지예?"
"요새 장어가 울매나(얼마나) 비싼지 아능교? 그렇다꼬 장어국수 값을 올릴 수도 없고. 그래가꼬 장어는 쪼매 넣고 고등어를 쪼매 갈아넣었지예."
"고등어예? 장어탕에 머슨 고등어로 갈아넣능교?"
"참! 아재는 뭘 잘 모르시네. 요즈음 고어탕이라 캐가꼬 고등어탕을 파는 집이 울매나(얼마나) 많이 늘었는데. 그라고 고어탕을 한번 먹어본 사람들은 고어탕만 찾는다카이."


그 당시 마산이나 창원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등어로는 좀처럼 탕을 끓여 먹지 않았다. 고등어는 주로 소금을 철철 뿌리거나 양념을 해서 구워먹거나 무를 큼직하게 썰어 넣어 조림을 해서 먹었다. 고등어로 탕을 끓이면 비린 맛을 없애기 위해 장어탕에 들어가는 재료보다 더 많은 재료를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고어탕을 끓이는 방법도 장어탕을 끓이는 방법과 별 다를 게 없었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은 고등어의 비린 맛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 팔팔 끓고 있는 탕에 소주나 청주를 약간 붓고 제피가루와 방아잎을 듬뿍 넣는 것뿐이었다. 맛도 장어탕과 비슷했다. 아니, 장어탕을 몇 번 먹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고어탕을 장어탕이라 해도 모를 정도였다.

숙성시킨 간고등어와 쫄깃한 생고등어구이

요즈음 들어 안동 간고등어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맞벌이를 하는 부부로서는 시장에서 파는 싱싱한 고등어를 사서 일일이 손질하여 구워먹는 것보다 손질도 필요 없고 간까지 맞춰져 있는 안동 간고등어가 훨씬 편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숙성된 고등어여서 그런지 쫄깃하게 씹히는 맛도 생고등어보다 훨씬 더 맛깔스럽게 느껴진다.

▲ 고등어의 비린맛을 없애기 위해서는 레몬즙이나 청주를 약간 뿌리는 것이 좋다
ⓒ 이종찬
근데, 왜 하필이면 안동 간고등어란 이름이 붙었을까. 바다와 멀리 떨어진 내륙지역인 안동에서 웬 고등어 타령? 고등어도 숭어처럼 바다에서 강을 거슬러 오르다가 안동 강기슭까지 가서 알을 낳고 죽었느냐구? 천만에. 만약 그랬다면 안동 사람들이 굳이 간고등어를 만들 필요가 없었지 않겠는가.

옛날, 바다와 멀리 떨어진 안동에서 고등어는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그런 생선이 아니었다. 게다가 요즈음처럼 바다생선을 발 빠르게 옮길 수 있는 그런 교통수단도 없었다. 안동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인 강구나 축산, 후포에서 고등어를 안동까지 옮기는 데는 빨라도 꼬박 이틀이 걸렸다고 한다.

그 때문에 안동을 드나들었던 장사치들은 어쨌든지 고등어를 상하지 않고 안동까지 무사히 옮기는 것이 가장 큰 화두였다. 그 당시 고등어를 상하지 않게 하면서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소금을 듬뿍 치는 것뿐이었다.

소금 간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째는 어부들이 바다에서 고등어를 갓 잡아올리자마자 배를 따고 소금을 뿌리는 방법이 있었다. 둘째는 바다에서 잡은 고등어를 고깃배에 싣고 포구까지 옮긴 뒤 소금을 뿌리는 방법이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조금 위험하기는 했지만 고등어를 안동까지 옮긴 뒤에 소금을 뿌리는 방법이었다.

▲ 고등어구이를 집간장에 찍어먹으면 한층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 이종찬
장사치들은 마지막을 택했다. 그 당시 장사치들은 이미 고등어가 상하기 직전에 나오는 효소가 맛을 더욱 좋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특히 이틀 정도 지난 고등어는 거의 상하기 직전이어서 이때 소금을 듬뿍 뿌려 간을 하면 가장 맛있는 고등어가 된다는 걸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안동 간고등어의 맛의 비결은 지리적 조건이 안동 주민에게 안겨준 큰 선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교통수단의 발전으로 언제 어디서든지 갓 잡아올린 싱싱한 바다생선을 맘껏 즐길 수 있다. 인동 간고등어의 맛도 그만이지만 직접 시장에 가서 싱싱한 고등어를 고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직접 산 고등어를 집에서 손질하여 후춧가루와 소금, 레몬즙을 뿌려 지글지글 구워먹는 그 맛을 어디에 비길 수 있겠는가. 옛사람들이 오죽했으면 음식은 손맛이라고 했겠는가.

낮밤 가리지 않고 무더위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 요즈음, 식탁 위에 생고등어구이를 한번 올려보자. 생고등어구이를 먹을 때는 다른 반찬도 거의 필요 없다. 그저 집에서 담근 간장에 잘 구워진 고등어살을 뜯어 찍어 먹으면 밥이 절로 술술 넘어간다. 또한 그렇게 밥 한 공기와 고등어구이를 뚝딱 먹어치우고 나면 무더위에 지쳐 늘어졌던 무거운 몸이 절로 가벼워진다.

▲ 고등어구이는 껍질이 더욱 맛있다
ⓒ 이종찬


※고등어의 깊은 맛을 맘껏 즐기고 싶다면 집간장에 고등어구이를 찍어 먹어보자. 이 때에는 고등어를 구울 때 소금을 조금 적게 치는 것이 좋다. 비린 맛을 특별히 싫어하는 사람들은 레몬즙을 살짝 뿌린 뒤 생강즙을 곁들이면 된다.

'바다의 갈비' 고등어 이렇게 구워 드세요
레몬즙 뿌리면 비린내 사라지고 살 단단해져

▲ 고등어구이
ⓒ이종찬

재료: 고등어, 레몬, 후춧가루, 소금, 집간장.

1. 싱싱한 고등어의 등 주변을 칼등으로 살살 긁어낸 뒤 배를 반 갈라 내장을 빼내고 머리는 잘라낸다. (싱싱한 고등어는 등이 푸르고 눈빛이 선명하다.)

2. 손질한 고등어는 2~3토막으로 자른 뒤 10분 정도 옅은 소금물에 담가둔다.

3. 핏물이 충분히 빠진 고등어를 소금물에서 건져내 찬물로 살짝 헹군 뒤 구멍이 송송 뚫린 바구니에 담아 물기를 뺀다.

4.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른 뒤 고등어를 올리고 소금, 후추를 뿌려 중간불에서 서서히 굽는다.

5. 고등어가 반쯤 익으면 레몬즙을 뿌린 뒤 뒤집는다. 이때 뒤집은 고등어에도 소금과 후추를 살짝 뿌린 뒤 1분 정도 굽다가 다시 레몬즙을 뿌린다. 레몬이 없으면 청주를 약간 뿌리는 것도 좋다.

6.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고등어는 접시에 담아 집간장과 함께 상 위에 차려낸다.

※맛 더하기: 고갈비를 즐기려면 손질한 고등어에 소금과 후춧가루, 청주를 살짝 뿌려 1시간 정도 숙성시킨 뒤, 칼집을 골고루 내고 양념(고춧가루, 설탕, 고추장, 맛술, 생강즙, 다진 마늘, 레몬즙, 물엿)을 발라 숯불에 구워야 제 맛이 난다. 이때 구운 고등어 위에 송송 썬 실파를 뿌리는 것도 조리의 지혜. /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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