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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중학생들은 무엇보다도 순진합니다. 이들에 비하면 고등학생들은 중늙은이에 해당됩니다. 특히 중학교 1학년들은 아직도 볼에 젖살이 보얗게 남아 있지요. 설익은 풋 냄새가 말, 행동 하나하나에 배어 있습니다. 초등학생들에게 볼 수 없는 단정함도 있어 더 귀여운 것 같습니다. 말썽꾸러기들에게도 미운 구석은 별로 없답니다.

이들에게 등굣길 아침은, 잠이 덜 깨 몽롱하기도 하고, 무슨 재미있는 일을 꾸미느라 시끌벅적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학생들을 보면서 아침 등굣길 지도를 합니다. 고등학교에서 중학교에 온지 5년째입니다. 좀 더 일찍 왔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괜찮은 등굣길에서 4살 먹은 한 아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의 엄마는 제가 지도하는 그 시간에 출근을 합니다. 아이는 엄마 손에 매달려 집을 나섭니다. 할아버지 또는 할머니, 둘 중의 한분도 꼭 따라 나오십니다. 엄마와의 작별 후,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다 같이 모퉁이에 있는 '슈퍼'로 들어갑니다. 아이의 두 손에는 틀림없이 과자와 음료수가 들려 있습니다. 다음, 엄마와 아쉬운 작별인사를 해야 합니다. 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이끌려 다시 언덕길을 올라갑니다. 얼마 못 가서 돌아보며 "어엄마아, 어엄마아!"하고 쉰 목소리를 냅니다. 엄마는 돌아보면서 출근길을 재촉합니다. 이런 날은 그런 데로 정겨운 날입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저도 박수를 보냅니다.

꼬맹이가 출근(?)하지 않는 날은 엄마의 모습도 볼 수 없습니다. 엄마는 가벼운 마음으로 일찍 출근했을 겁니다. 이런 날은 '꼬맹이가 늦잠을 자는가?', '갑자기 철이 들었는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는 날이 더 많아 안쓰럽습니다. 어떤 날은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 다 나오십니다. 할머니의 힘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런 날은 보통 그 아이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거나, 큰 얼굴에 불편한 심기가 가득 묻어 있는 날입니다. 출근 시간에 쫓기는 엄마의 발목을 잡는 아침이 됩니다. 녀석의 가슴에 과자, 음료수를 품고 있어도 별 소용이 없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엄마는 가다가 돌아와서 아이를 또 달랩니다. 매달리는 아이의 응석에 엄마는 발걸음을 쉬 떼지 못합니다. 결국 엄마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우는 아이를 떠맡기고 갑니다. 이런 날은 직장에 가서도 아이의 모습이 눈에 밟힐 겁니다.

다행히 이런 홍역을 몇 달 치르면서 아이의 태도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도 출근길이 한결 가벼워 졌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수월하게 아이를 모시고(?) 올라가는 날이 많아 졌습니다. 녀석도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했을 지도 모릅니다. 녀석은 세상살이를 그렇게 한 수씩 배워 가는 중입니다.

아이가 "어엄마, 안녕!" 하고 아쉬워하면, 저는 옆에서 "아이구, 잘한다! 엄마 다녀오세요, 해야지"하고 기를 돋워 줍니다.

요즘은, 만날 때마다 이 딱한 '어린 왕'과 서로 눈을 맞춥니다. 저의 관심에 그도 이제는 반응을 잘 보입니다.

과자를 품에 안고 서툰 말로 아침 인사를 합니다.
"아자씨, 안녕하세요."

저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착하네, 그래야 엄마가 돈 많이 벌어서 또 과자 사주지­…."

덧붙이는 글 | 경제적 사정으로 이런 모자간의 아쉬운 아침들이 많아졌습니다. 어릴 적, 엄마의 사랑은 제일 귀한 덕목으로 자식에게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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