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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대한민국사(史)> 세 번째 책을 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 오마이뉴스 남소연

최근 역사 교양 베스트셀러 <대한민국사(史)>(한겨레신문사) 세 번째 책을 낸 한홍구 교수(47. 성공회대)의 오지랖 넓음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지승호의 <마주치다 눈뜨다>(그린비)에 묘사된 그의 오지랖은 "학교 수업이 끝난 밤 10시20분에야 인터뷰를 할 수 있었고, 그 인터뷰가 끝난 밤 1시가 되어서도 정리할 원고가 있어 연구실에 남"아야 할 정도다.

그런데 그는 지금이 지승호와의 인터뷰 때보다 더 바쁘다고 했다.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인터뷰 시간과 장소를 정할 수 있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 15분 전 전화로 다시 연락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밤 10시가 아닌 낮 3시경에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상쇄하고 남는다.

인터뷰 약속을 위해 일전에 전화를 넣자 지금 올 수 있느냐고 할 정도로 스케줄 사이사이 짬을 활용해야 하는 그.

운동권에서 한때 '새끼 명망가'였던 그가 "가끔 허벅지를 꼬집어 꿈인지 생시인지를 확인해"봐야 하는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위원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약속 장소 도착 15분 전에 전화를 걸어 달라던 이유를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날 그는 그곳에서 15분쯤 떨어진 국가정보원에 있었다.

세상은 언제나 쓸거리를 만들어준다!

"우리사회는 날마다 희망과 반전의 무대입니다. '조선말 하는 일본놈'들이 나라를 다스리던 때가 있었고,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이상한 버릇을 가진 이름도 모르던 육군 소장이 총칼로 정권을 잡아 18년이나 나라를 농단하고, 한때 내로라하는 민주투사들이 저렇게 처참하게 망가지고…. 참으로 우리 역사는 날로 새롭습니다."

이미 <대한민국사(史)> 1, 2권을 통해 '소설보다 재미있고, 영화보다 짜릿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한홍구는 이번 3권에서도 독자들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이번 책에서 그는 '야스쿠니의 악몽에서 간첩의 추억까지'라는 부제에 걸맞게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변절과 변질의 역사적 기원'을 찾아보고,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과거청산문제, 2003년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대통령 탄핵사태, 권력에 의해 조작된 간첩 사건, 최근 총기난사 사건으로 사회적 문제로 불거진 군대와 병역 문제를 정면으로 짚는다.

그의 <대한민국사(史)>는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의 연재물을 묶은 것이다. 그는 2001년, 2002년 꼬박 두 해 격주로 연재하다가 중단했다. 자신의 원고를 담당하던 기자가 편집장이 되어 다시 강권(?)하자, 하는 수 없이 수락, 3주에 한번씩 연재하길 벌써 1년이 되었다고 했다.

"사실 너무 힘들어서 연재를 중단했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마감을 못 지키는 악성필자의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감 때가 되면 담당기자로부터 원고 달라는 독촉전화가 오는데, 특히 편집디자이너가 원고 언제 줄 거냐고 전화를 걸어오면 부담이 됩니다. 저 때문에 디자이너가 야근을 해야 되잖아요."

한홍구는 쓸거리는 늘 넘쳐난다고 했다. 쓸거리가 없을 때를 대비해 항상 쓸 준비가 되어있는, 자신의 전공 분야인 '김일성과 민생단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아껴두고 있지만 그다지 활용하지 못할 정도로 세상은 언제나 쓸거리를 만들어준다고 했다.

"386들이여! 사회가 부여한 상징성만큼 역할을 하라!"

ⓒ 오마이뉴스 남소연
'악성필자'의 명성에 걸맞게 언제나 마감에 쫓겨 원고를 쓰다보니 그에게는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기기도 한다.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열린우리당의 386 형님들에게 친구 유시민을 말하다'는 문제(?)의 글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이 글이 발표되자 인터넷을 한바탕 뜨겁게 달구었고, 강준만 교수까지 그의 잡지 <인물과 사상>에서 비판글을 실을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왕 얘기가 나온 김에 이런 비판들에 대한 그의 입장을 들어봤다.

"문제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마감에 쫓겨 글을 쓴 탓에 오해가 커진 느낌도 듭니다. 제가 그 글에서 얘기하려고 했던 의도는 친구 유시민을 변호하려 한 것이 아니라 386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그런데 급하게 글을 쓰다보니 유시민에 관한 이야기가 과도하게 들어갔고, 그 원고를 다시 수정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잡지사에 넘겨야 했었습니다."

그 유명한 '항소이유서'의 주인공답게 유시민이 2002년 여름 "바리케이드 앞에 화염병을 들고 다시 서는 심정"으로 날렸던 또 하나의 격문을 평가한다는 한홍구는 그러나 이라크 파병에 찬성한 유시민의 생각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유시민이 적어도 386들로부터는 "싸가지 없고, 독불장군이고, 독선적이고, 말을 함부로 하고, 동지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하고…" 하는 식의 비난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대신 그는 "학생운동의 역사로 볼 때 세대로서의 386은 너무 웃자랐다"며 386들에게 "사회가 부여한 상징성만큼 역할을 하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그는 "유시민과 너무 빨리 어른이 돼버린 386"에게 오지혜가 '오지혜가 만난 딴따라'에서 윤민석에게 했던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제발 철들지 말고 살라고….

그의 386에 대한 비판은 "도저히 '뉴'를 붙일 수 없는 낡은 모델"인 '뉴 라이트'에 대해서도 가해졌다.

"그들은 왼쪽으로 치달아 사람들을 놀라게 하더니, 지금은 오른쪽으로 치달아 놀라게 하고 있다. 그들이 각광받는 것을 보면서 서글퍼지는 것은 그들이 딱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설치는 바람에 진짜 합리적인 보수세력 출현이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지금 뉴 라이트 문제는 이념이 아니라 주체사상식으로 말하면 품성의 문제이고, 우리의 일상의 말로 바꾼다면 '싸가지' 문제일 뿐이다."

"기회 되면 <김일성 평전> 쓰고 싶다!"

내친김에 정형근 의원이 김승규 국정원장 인사청문회에서 그를 '김일성 찬양론자'라고 했던 주장에 대한 입장도 들어봤다.

한홍구는 누구인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홍구는 <한국사시민강좌>로 유명한 출판사 ‘일조각’집 넷째이다. 늘 책 더미 속에 파묻혀 있던 그는 어려서부터 역사를 좋아했고, 열 살 무렵부터 생각했던 역사공부를 하기 위해 서울대 국사학과에 들어갔다.

유시민 의원과 친구 사이인 그는 대학시절 운동을 하기도 했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에 유학했다.

강연회에 나갈 때면 으레 듣게 되는 ‘김일성 가짜 여부’에 대한 질문에 자극받아 김일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성공회대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사이버NGO 자료관장을 맡고 있다.

오지랖 넓기로 유명한 그가 현재 관여하는 일은 베트남 진실위원회 집행위원을 비롯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공동 집행위원장,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 규명을 위한 발전위원회 민간위원 등이다.

낸 책으로는 '한겨레 21'에 연재하면서 골수팬을 확보한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를 묶은 <대한민국사(史)> 1, 2, 3권이 있다.
/ 조성일 기자
"솔직히 제 글을 읽지도 않고 하는 비판에 대해 코멘트 할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 의원은 제가 '김일성을 민족의 영웅으로 찬양했다'는 식으로 주장했는데, 제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 글의 논지는 그런 게 아니잖습니까."

1980년대 후반 현대사 강의 자리에 서면 박정희 얘기를 하든 학생운동사를 강의하듯 으레 받게 되는 질문 "김일성이 진짜예요, 가짜예요?" 때문에 아예 김일성 연구자(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상처받은 민족주의 : 민생단 사건과 김일성>)가 되었다는 그는 김일성은 "공산주의자였지만, 또한 민족주의자였다"면서, "20세기형 지도자"로 평가했다. '김일성이 20세기형 지도자'란 평가는 김일성이 21세기의 지도자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부정적인 의미이며, 나아가 현재적 인물이 아니라 역사적 인물로 정리하려는 의도였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김일성에 대한 평가가 남쪽 사회 내에서 갈릴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한 가지만은 분명히 해야 한다"며, 그것은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깎아내리는 일만큼은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아울러 한홍구는 한반도의 분단 극복을 위해서 "남과 북이 서로 고무하고 찬양하자"고 했다. 박정희와 김일성에 대한 비판은 남과 북 각각의 자기 몫으로 두고, 대신 남은 김일성의 긍정적인 면을, 북은 박정희의 긍정적인 면을 서로 평가하자는 것이다.

또한 한홍구는 "김일성은 민족의 태양일 수는 없지만 형제들의 수령"이었음을 인정해야 하고, 기회가 된다면 <김일성 평전>을 쓰고 싶다고도 했다.

"역사는 자기 눈으로 보자!"

ⓒ 오마이뉴스 남소연
총기사건이 터지자 그는 솔직히 부담스러웠다고 털어놨다. 그 일이 또 자신의 일이 되면 안 되는데 하는 심정에서였단다. 총기사건이 나던 그날도 그는 평화박물관에서 미리 예정된 대단히 중요한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을 젖혀두고 텔레비전 토론자로 나가야할 만큼 몸이 열개라도 부족해서 미칠 지경이라고 했다.

군대문제에 대해서 시민사회단체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길 원하면서 그는 국회의원이 10명'씩'이나 있는 민주노동당에서 노동문제만큼은 아니더라도 군대문제에 관심을 좀 가져주길 바란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모병제보다 징병제가 낫다고 생각하는 그는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쟁은 군대가 하지만 전쟁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민간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전쟁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평화박물관 건립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7월27일 저녁 7시30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리는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후원의 밤 행사 '춤추는 평화' 소식만은 꼭 써달라고 기자에게 청탁(?)했다. 1994년부터 정신대할머니 돕기 공연을 해오고 있는 홍순관이 공연하는 이날 행사에는 KBS국악관현악단도 나오고, 장사익씨도 나오고, 시인 도종환씨도 특별출연한다며 그는 볼거리도 많으니 많이들 와서 적극적으로 후원해달라고 했다.(자세한 내용은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홈페이지 www.peacemuseum.or.kr 참조).

그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이 또 한 가지가 있다고 했다.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의 복지문제에 대한 실태조사를 해보는 것이 그것이다. 이젠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인권과 복지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라며 '인권 없는 인권활동가'라는 형용모순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말자고 했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누가 뭐래도 오지랖 넓은 그의 본업은 역사학자가 아닐까? 그래서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는 그에게 역사를 바라보는 입장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물으면서 인터뷰를 끝냈다.

"늘 한결같이 주장하지만 역사는 자기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주의자는 민족주의, 유물론자는 유물론 등 다양한 입장이 있습니다. 따라서 각자가 자기의 눈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래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사 3 - 야스쿠니의 악몽에서 간첩의 추억까지

한홍구 지음, 한겨레출판(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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