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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금방 내릴 것 같은 사람을 알아채는 기술을 말이다. 일본에서는 이렇듯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뻔해 보이는 기술을 활자화 해 성공한 사람이 있다.

▲ <출퇴근 전철에서 앉는 기술!>의 책표지
ⓒ 간키출판사
<출퇴근 전철에서 앉는 기술!(通勤電車で座る技術!)>.
인쇄회사에 근무하는 27세의 평범한 샐러리맨 요로즈 하지메(萬大)는 전철로 출퇴근 하면서 지루함을 달랠 흥밋거리를 찾아냈다. 인간관찰을 시작한 것. 즉, 어떤 사람 앞에 서면 의자에 앉아서갈 수 있을까 유심히 관찰하던 그는 이것을 자신이 운영하는 메일 매거진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런 행동은 간키출판사 편집자 눈에 띄게 돼 지난 3월 출판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책은 현재 3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이 책은 영국, 터어키 등 비슷한 출퇴근 전철 환경을 가진 나라들에 소개되면서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게 됐다. 특히 지난 4월6일자 <더 타임스>에 이 책이 소개되면서 일본에서도 더 유명해졌다. 여름에는 영국에서 번역본이 출판될 예정이다. 또 영화사에서도 영화화를 계획중이다. 편집자인 마키모토 타로(牧本太郞)씨는 이런 추세라면 가을까지 5,6만부 이상 팔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요로즈 하지메는 도대체 어떤 노하우를 터득한 걸까.

연인 뒤에는 줄 서지 말라

△ 앉기 위해서는 타기 전에 먼저 줄을 잘 서야한다
① 3열일 경우 확률 상 앞에서 4번째 줄에 서있는 사람까지 좌석을 차지할 수 있다. 5번째 줄에 선 사람은 다음 열차를 이용하는 게 낫다. ② 3열로 줄을 설 경우 가운데 줄에 서는 게 자리 선택의 폭이 넓어 유리하다. ③ 2열로 줄을 서 있을 경우 용기를 내 3열을 만든다.(이상 시발역의 경우) ④ 계단에서 두 번째로 가까운 출입문에 선다. 가장 가까운 문은 타고내리는 사람이 많아 빨리 탈 수 없다. ⑤ 열차의 양쪽 끝 출입문 앞에 선다. 역시 타고내리는 사람이 적은 편이다. ⑥연인들 뒤에는 서지 않는다. 남녀가 함께 움직이므로 재빨리 자리를 잡을 수가 없다.

△ 앉으려면 잘 서야한다
① 앉은 사람의 정면에 서지 말고, 내릴 통로를 감안해 약간 비켜 서 있는다. ② 서있을 때 선반에 짐을 올려놓지 않는다. 짐을 내리는 사이 자리를 뺏길 수 있다. 이는 서서 가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동작이기도 하다. ③ 양쪽 끝자리에 앉은 사람 앞에 선다. 인기가 있는 자리이므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이동해서 앉는 경우가 많다. 즉 장시간 앉아있던 승객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내릴 확률도 높아진다. ④ 옷차림이 반듯하고 일 잘하고 자존심이 셀 것 같은 사람 옆에 선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자존심을 지키느라 자리가 나도 잘 앉지 않는다.

△ 내릴 승객을 알아낸다
① 같은 시간, 같은 위치에서 타면 대개 낯익은 얼굴을 보게 된다. 그들이 어디에서 내리는지 기억해 둔다. 리스트가 많을수록 좋다. ② 자는 사람 중에 고개를 정면으로 향하고 자는 사람이 금방 내린다. 고개를 숙이고 자는 사람은 자리를 양보할 의사가 없는 사람,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자는 사람은 먼 길을 가는 사람이므로 피한다. ③ 두꺼운 책을 보는 사람보다 문고판 책을 보는 사람을 노린다. ④ 학생들의 교복을 알아두면 어디서 내릴지 짐작할 수 있다. 회사원의 경우 회사 배지를 살핀다. ⑤ 여성들의 경우 패션에 따라 내리는 곳이 다르다. ⑥ 내릴 전조동작을 놓치지 않는다. 창밖을 흘끗흘끗 보거나, 책이나 이어폰 등을 정리한다거나, 손잡이나 선반을 쳐다보는 등의 행동이 전조동작에 해당된다.


위와 같은 내용을 일러스트와 그림 앙케트를 통한 통계를 곁들여 소개하고 있는데 저자의 독특한 표현법이 웃음을 자아낸다. 저자 나름대로 유형화하여 차근차근 정리하고 꾸준히 연재해 온 끈기와 인간관찰의 예리함이 돋보인다. 확률과 인간심리를 적절히 섞어 개그를 보는 듯한 재미도 있다.

책에는 위에 소개한 것 외에도 △ 타자마자 앉는 기술 △ 쾌적하게 앉는 기술 △ 앉기 위한 일상생활 기술 △ 앉는 기술·악의 매뉴얼 △ 양보야말로 최대의 기술 등도 소개돼 있다.

전철과 인터넷의 결합 "재밌네"

독자들의 반응도 어쨌거나 재미있다는 쪽이다. 복잡한 전철도 마음먹기에 따라 즐거운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 책에 실린 기술을 적용해 앉을 확률을 높였다는 사람, 지방의 한적한 전철에서는 의미가 없다는 사람, 다들 똑같은 기술을 적용한다면 앉을 확률도 그만큼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 반론하는 사람, 전철 안에서의 매너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는 사람 등 이 책으로 인해 전철이 또 하나의 화두가 된 것만은 사실이다.

▲ 일본도쿄전철노선도(http://vagabond.air-nifty.com)
사실 철도왕국이라 불릴 만큼 전국이 철도로 잘 연결된 나라 일본의 철도를 살펴보면 이 책의 성공은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다. 동경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철도노선도에는 지하철, 사철, JR (일본국철의 민영화된 이름)선, 신칸센 등 37개 노선이 뒤엉켜 있다. 거기에 보통, 급행, 특급 등 종류도 다양해 미로게임을 연상할 정도다. 심지어 출퇴근 시간엔 만원전철 안으로 손님을 밀어 넣어주는 요원이 배치된 역도 있다.

2000년도 일본국세조사에 의하면 통근·통학 시 철도 및 전철을 이용하는 사람은 전국적으로 23.6%(1466만명 가량)이며, 철도 노선이 많은 수도권 및 오사카 등은 그 이용자수가 더 많아 동경의 경우 이 지역 통근·통학인구의 52.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만큼 전철을 비롯한 철도는 일본인들에게 아주 중요하고 친숙한 교통수단이다.

한편 요로즈 하지메는 자신의 일명 '싯 다운 테크닉 (sit down technique)'에 3가지 전제조건이 있음을 밝히고 있는데, ① 주위에 폐를 끼치지 말 것 ② 양보정신을 잊지 말 것 ③ 무엇보다 출퇴근 전철을 즐기도록 노력할 것이 그것이다.

전철에서 발생한 연애사건 <전철맨>, 일본열도를 강타하다

요로즈 하지메의 <출퇴근 전철에서 앉는 기술!>이 복잡한 전철에서의 실용적 테크닉 노하우 소개로 성공했다면, 이보다 먼저 '전철'이라는 공간을 로맨틱하게 풀어내 대박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책도 있다.

<전철맨>에 담긴 러브스토리

내용은 대강 이렇다. 별 볼일 없는 22세의 오타쿠(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등 특정 분야에 몰두해 그것 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 청년이 전철에서 술주정꾼에게 봉변을 당할 뻔한 여성들을 얼떨결에 구해준다. 그는 이 이야기를 인터넷 게시판의 불특정 다수에게 털어놓는데, 이틀 후 그 중의 한 젊고 세련된 여성으로부터 감사의 뜻을 담은 편지와 선물이 도착한다.

22살이 되도록 연애경험이라곤 전혀 없었던 그는 어찌할 바를 몰라 익명 게시판의 '독신남성방'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후 그 청년은 '전철맨'으로 그녀는 '에르메스'로 명명된다. 전철에서의 선행으로 그가 받은 선물이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찻잔 세트였던 것.

이 선물의 의미를 두고 게시판에선 이런저런 의견이 오가고 결국 '전철맨'이 '에르메스'에게 감사의 전화를 해서 식사에 초대해야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다. 이들의 조언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세심하다. 통화예절, 말투, 초대방법, 음식점 선택법, 의상코디, 헤어스타일, 데이트 에티켓, 시뮬레이션 등 각자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총동원해 '전철맨'을 지원한다.

이들의 따뜻한 조언과 응원, 질책에 힘입어 '전철맨'은 연애과정의 장애를 하나씩 해결해가고, 결국 에르메스와 맺어진다.

<전철맨>은 현재까지는 실화로 알려졌으나 두 남녀가 신분노출을 꺼려 언론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 장영미
이미 100만부를 돌파하여 밀리언셀러 반열에 오른 <電車男(덴샤오토코)(이후 '전철맨'으로 번역함)>는 인터넷의 익명 게시판 '2채널'의 '독신남성방'에서 탄생했다. 지난 해 3월, 전철 안에서 술주정꾼에게 봉변을 당할 뻔한 여성을 구해준 한 청년이 이 사연을 독신남성방에 올리면서 시작된 이 글은 익명의 한 여인과 그 청년이 맺어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인터넷 상 노출된 글은, 수많은 네티즌들이 두 연인이 맺어지는 데 어떻게 일조할 수 있는지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다.

인터넷 상의 러브스토리를 지상으로 끌어올린 것은 이를 눈여겨 본 출판사였다. 일본 유수의 출판사 <신초샤(新潮社)>는 지난해 10월, 이 글을 단행본으로 엮어 출판했다.

단행본으로 엮어진 <전철맨>은 대박행진의 시발판이었다. <전철맨>은 증식을 거듭해 올해 3월 성우들에 의한 낭독극과 6월 영화 개봉이 이뤄졌으며 7월 7일부터 후지TV를 통해 드라마로 방영중이다. 또 8월에는 연극으로 무대에 올려질 예정이다. 이밖에 만화판도 무려 5종류가 발간됐다.

특히 흥행성공에 힘입어 연장 상영중인 영화로 인해 단행본의 판매부수도 다시 급증했다. 급기야 지난 6월22일에는 영화관객수와 단행본 판매부수가 거의 동시에 100만을 돌파, "더블밀리언을 달성했다"며 더욱 화제가 됐다. 이중 영화 <전철맨>은 지난 13일 관객수 200만을 돌파했다. 드라마 <전철맨>도 첫회 18.3%, 2회 21.3% 등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처럼 '전철맨'은 다양한 쟝르로 증식을 거듭하면서 화제가 끊이질 않고 있다. 언론에서는 이런 현상을 "전철맨 축제 (電車男お祭り)"로 부르고 있다.

인터넷상의 러브스토리가 '대박' 터트린 비결

▲ 서점의 특별코너에 진열된 단행본, 만화판, 드라마판 '전철맨'들
ⓒ 장영미
스토리상으론 흔한 연애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전철맨>이 이렇듯 인기를 끌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종합해보면, 먼저 <겨울연가>로 시작된 일련의 '순정 붐'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둘째, 인터넷을 통한 '참여형' 연애 스토리라는 점이다. 게시판의 불특정다수가 '전철맨'의 연애에 구체적으로 개입해 조언하고 질책하며 연애의 진행과정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독자는 자신도 마치 그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 마치 자신의 일처럼 '전철맨'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

셋째, 신뢰를 바탕으로 한 따뜻한 인간관계를 들 수 있다. 비방, 모함, 폭로 등으로 유명한 게시판이란 공간에서 <전철맨> 이야기만큼은 신뢰와 우정, 사랑, 배려, 협동 등 따뜻한 인간관계를 보여준다.

넷째, 허구 같지만 실화라는 점 때문이다. 물론 <전철맨>의 허구성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다.

한편 '전철맨' 커플은 영화화된 자신들의 이야기를 보고 코멘트를 내기도 하고, 번역을 제외한 원작의 2차 사용료 전액(약 1000만 엔 예상)을 일본적십자사를 통해 기부하기로 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제 <전철맨>은 국내 성공에 힘입어 해외진출을 앞두고 있다. <신초샤>에 따르면 이미 중국과 대만에서는 <전철맨>이 번역출판된 상태이며, 한국, 태국, 미국에서도 출판을 위해 번역작업이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이탈리아, 프랑스, 불가리아에서도 출판제의가 들어와 검토중이라고 하니 과연 전철맨의 증식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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