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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8월 15일 건립된 '만리포사랑노래비'
1994년 8월 15일 건립된 '만리포사랑노래비' ⓒ 지요하
그로부터 36년 후인 1994년 만리포관광협회는 만리포해수욕장의 중앙이 되는 지점에다가 '만리포사랑노래비'를 건립해서 만리포를 '노래비를 가진 전국 최초의 해수욕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또 그로부터 11년 후인 올해 만리포관광협회는 또 한 가지 매우 의미 있는 일을 했다. 만리포해수욕장 개장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사업의 하나로 '만리포예찬시비'를 건립하는 일을 한 것이다.

'만리포예찬시비추진위원회'는 어느 유명 시인에게 시를 의뢰하지 않고 만리포예찬시를 널리 공모하는 방식을 택했다. 현재 충남 땅에서 살고 있거나 충남이 고향인 등단 문인들을 대상으로 했다. 그리하여 총 70여 편이 응모했는데 심사위원회(진태구 태안군수, 나태주 김윤완 이태호 시인, 필자)의 심사 결과 천안의 여성 시인 박미라(53)씨의 '만리포연가'가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박미라씨의 만리포예찬시는 태안의 서예가 림성만(52)씨의 글씨로 높이가 6m 10cm나 되고 폭이 3m 45cm나 되는 웅장한 돌에 새겨졌다. 무게가 30t에 이르는 이 거대한 비석은 해변으로 내려가는 중앙통 길목을 사이에 두고 '만리포사랑노래비'와 15m쯤 떨어진 곳에 세워졌다. 그리고 지난 1일 '만리포 개장 50주년 기념식 및 2005년 개장식' 때 '예찬시비 제막식'도 함께 거행되었다.

2005년 7월 1일 건립된 '만리포예찬시비'
2005년 7월 1일 건립된 '만리포예찬시비' ⓒ 지요하
1994년 '만리포사랑노래비'를 세운데 이어 올해 '만리포예찬시비'를 건립한 만리포관광협회 김봉영(金鳳永·63) 회장은 "노래비와 시비로 하여 만리포가 더욱 낭만적이고 문화적인 분위기와 풍모를 갖게 된 것을 스스로 기뻐한다"고 말한다.

노래비를 지니고 있는 해수욕장은 여러 곳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3월에는 대천해수욕장의 분수광장에도 가주 윤형주의 '조개껍질 묶어' 노래비가 세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예찬시비가 세워져 있는 해수욕장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조선조 세종 때 명나라 사신들을 전송하며 '수중만리 무사항해'를 축원한 데서 이름이 유래한 만리포에 올해 웅장한 규모의 만리포예찬시비가 세워졌다. 이로써 만리포는 노래비와 시비를 함께 지닌 전국 최초 유일의 해수욕장이 되었다. 진정으로 만리포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꾼 자랑스러운 면모다.

나는 이렇듯 만리포를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사람들이 고맙다. 노래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시비 건립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을 한 사람들이 문인 처지에서 참으로 고맙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978년 태안해안국립공원이 탄생하면서 관련법에 묶여 여러 가지로 발전상 제약을 받아왔던 만리포는 2003년 국립공원에서 제외됨에 따라 새로운 활기를 얻게 되었다. 환경 훼손의 위험성이 없지는 않지만, 만리포를 가꾸고 발전시키려는 움직임에 탄력이 생기게 되었다.

2003년 7월 1일부터 8월 22일까지 만리포를 찾은 피서 인파는 160만 명에 이른다. 지난해 2004년에는 151만 명이 찾은 것으로 기록되었는데, 올해는 약 2백만 명이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 동안 만리포를 찾는 사람들은 대략 284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만리포가 해안국립공원에서 제외되어 관련법의 제약을 받지 않게 된 상황에서도 천혜의 자연환경을 잘 유지 보존해 더욱 낭만적이고 문화적인 해수욕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만리포 연가


박 미 라


멀어서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마른 모래 바람이 가슴을 쓸고 가는 날이면
만리포 바다를 보러 오시라
오래된 슬픔처럼 속절없는 해무 속에서
지워진 수평선을 가늠하는 붉은 등대와
닿을 수 없어서 더욱 간절하다고
아득히 잦아드는 섬이 있다
누군들 혼자서 불러 보는 이름이 없으랴
파도 소리 유난히 흑흑 대는 밤이면
그대 저린 가슴을 나도 앓는다

바다는 다시 가슴을 열고

고깃배 몇 척 먼 바다를 향한다
돌아오기 위하여 떠나는 이들의 눈부신 배후에서
고단한 날들을 적었다 지우며 반짝이는 물비늘
노을 한 자락을 당겨서 상처를 꽃으로 만드는 일은
아무렴, 우리들 삶의 몫이겠지
낡은 목선 한 척으로도
내일을 꿈꾸는 만리포 사람들
그 검센 팔뚝으로 붉은 해를 건진다

천년 전에도 바다는 쪽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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