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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이다. 버스타고 가는 길 내내 걱정이다. 끝까지 갈 수 있을까? 가다 못가면 어떻게 하나? 포기하면? 지리산까지 가는 동안 버스에서 잠간 자기로 한다. 잠이 오지 않는다. 나는 산을 모른다. 산을 모르고 백두대간을 종주하려니 불안하다. 인터넷을 뒤져 자료를 찾았고, 지도는 볼 줄 몰라 아예 구입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인터넷에 있는 산행 개념도만 들고 간다. 준비는 했으나 아무것도 준비한 것은 없다. 불안하다. 잠이 오지 않는다. 버스에서 내려, 중산리로 간다. 중산리 민박에서 일박을 한 후 새벽에 천왕봉을 향해 출발한다. 배낭도 어색하다.

첫 걸음을 걸었으니 시작이다. 매표소까지 가는 동안 날이 밝는다. 시멘트길 아래, 골짜기가 보인다. 온통 초록이다. 매표소가 보인다. 표를 끊는다. 백두대간, 첫 산행의 걸음을 시작한다.

시작이 너무 무모한 것 아닌가? 매표소를 통과하면서부터 반성은 끝이 없다. 그러나 이미 배낭은 어깨에 메어져 있고, 출발했다. 돌아갈 수는 없다. 나는 도전하고 싶다.

배낭이 무겁다. 배낭에 너무 많은 것을 넣은 듯하다. 천왕봉을 오르다가 힘들어 로타리 대피소 전 너럭바위에서도 쉬고, 흔들다리 지나서도 쉰다. 중간 중간 가다 쉬다, 가다 쉬다를 반복한다. 지도상에선 정상까지 3시간 40분이면 오른다 했는데, 로타리 대피소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이 2시간 30분이 넘어선다. 걸음이 너무 느리다. 배낭이 땀에 절어 등에 달라붙었다. 햇빛도 배낭에 달라붙었는지 땀과 열 때문에 견딜 수 없다. 배낭을 벗어버리고 가벼이 가면 빠른 걸음으로 갈 듯한데, 배낭을 버릴 순 없다. 배낭안의 내용물을 생각한다.

배낭이 무거워지자 머릿속은 온통 버릴 생각뿐이다. 버릴게 무언가 생각하지만 버릴 게 없다는 결론이다. 꼭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온 듯하다.

“무엇하나 버릴 것 없다.”

상의 3벌 하의2벌, 속옷 각2장씩, 텐트, 비상약, 비옷, 미숫가루, 치약, 칫솔, 비누, 수건, 된장, 고추장, 쌀, 들기름, 카메라, 건전지, 랜턴, 노트, 필기구, 부탄가스, 모기약, 그라운드시트, 성경, 찬송, 그리고 책 몇 권. 버릴 물건은 없다. 다 필요한 물건이다. 버릴 수 없는 물건이라 생각한다. 천왕봉까지는 계속 오르막인데 땀이 자꾸 눈으로 들어간다. 눈이 따갑다. 땀이 최루가스 보다 매웁다. 몸이 무거워진다.

로타리 산장에 도착해서 간단하게 점심을 준비한다. 아래서부터 나를 추월해 미리 산장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중년의 산악회 분들이 나를 알아본다. 백두대간 종주 한다니까, 자신들의 밥을 먹으라 한다. 나는 배낭을 풀기도 힘들고 복잡해서 얻어먹기로 한다. 밥을 먹고 다시 천왕봉을 오른다. 천왕봉을 오르기만 하면 주능선으로 접어들어 힘든 코스는 없는데, 자꾸 몸이 무거워진다. 오전에 늦게 출발한 등산객들도 나를 추월한다.

천왕봉 밑 가파른 곳에서 쉰다. 몇 번을 쉬었는지 모른다. 힘들어서 쉬고. 배고파서 쉬고. 목말라서 쉬고. 다리아파 쉬고. 어지러워 쉬고. 무거워서 쉬고. 무릎아파 쉬고, 이러다가 정상에는 해질 무렵 도착하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여기 오기 전까지 나는 무릎이 아파 운동도 심하게 못했다. 무릎 때문에 가다 쉬다를 더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반바지를 입은 삼십대 등산객이 가벼이 오르면서 나를 힐끔힐끔 보고 간다. 무어, 저런 달팽이가 있나 싶은 모양이다.

천왕봉이 보인다. 가파르고 잔돌이 많아 미끄러운 길에 넘어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허리를 펴려고 해도 배낭이 무거워 펴지질 않는다. 허리를 펴다가 무게 중심이 뒤로 넘어가면 급경사 지대여서 그대로 굴러 떨어진다. 천왕봉까지는 엉금엉금 기어오르는 수밖에 없다.

엉금엉금 기어가는 나는 거북이다. 나는 달팽이다. 나는 굼뱅이에다가, 가파른 경사를 기어오르는 나무늘보였다.

천왕봉이다. 도착했다.

천왕봉에서 멀리 진주시내의 풍경을 본다. 시원하다. 맑은 날씨에, 하늘은 푸르다. 가려고 일어서려니 하늘이 노랗게 변한다. 빈혈이다. 땀을 너무 많이 흘린 탓이다. 도로 앉아 물을 마시고 사탕을 먹는다. 쉰다. 가볍게 올라온 사람들은 서로 어울려 사진도 찍고 여기까지 몇 시간 만에 올라 왔는지 서로 자랑한다. 부러웠다. 나도 배낭만 가벼우면 지도에 있는 산행시간에 맞출 수 있다는 생각한다. 이제부터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밟는다. 백두대간 연속종주가 시작된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004년 5월 16일 부터 7월 4일까지 백두대간 종주했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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