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위에만 남은 봉숭아 꽃잎이 애잔하다.
위에만 남은 봉숭아 꽃잎이 애잔하다. ⓒ 염종호
얼마 전 딸내미의 학교 숙제로 봉숭아를 작은 화분에 심었다. 그 동안은 작은 화분에 심어서인지 아니면 정성이 부족해서인지, 봉숭아를 비롯하여 몇 가지 식물들을 심어 보았지만 번번이 싹만 내고 죽였던 기억이 있던 터라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번에는 싹이 나는가 싶더니 갓난아기 자라듯이 쑥쑥 자랐다. 그러더니 어느새 꽃까지 피웠다.

그러자 딸내미는 기다렸다는 듯이 봉숭아물을 들여 달라며 학교 파하고 오는 길에 아예 돌멩이까지 주워 와서는 조르니, 아내는 결국 성화에 못 이겨 봉숭아물을 들여 주기로 한다.

이렇게 짱 돌로 자근자근 찧어야 제 물이 우러나온다.
이렇게 짱 돌로 자근자근 찧어야 제 물이 우러나온다. ⓒ 염종호
그런 봉숭아를 보자 문득 내 어릴 적 생각이 떠올랐다.

국민학교(지금 초등학교) 시절, 우리 가족은 작은 단칸방에서 세 들어 살았다. 주인집인 안 집에는 주인어른 내외분하고 딸이 셋 있었는데, 그 중 막내누나가 그나마 나와 나이 차이가 많지 않아 나를 친 동생처럼 아껴주며 귀여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 봉숭아가 한창일 즈음일 것이다.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봉숭아 잎을 내게 보여주며 손가락에 꽃물을 들이려는데 너도 한번 해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하얀 백반은 착색을 잘 시키며, 잎사귀의 빛깔을 더 곱게 해준다.
하얀 백반은 착색을 잘 시키며, 잎사귀의 빛깔을 더 곱게 해준다. ⓒ 염종호
아무리 내가 어렸다 해도 초등학교 4, 5학년이면 알 건 다 안다고 자부하던 터라 "에이~ 남자가 어떻게 그런 물을 들여"하며 나는 그만 내빼버렸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호기심으로서는 그 물들이는 과정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모양이다.

돌에 잎을 가녀리게 찧어서 손톱에 올려서는, 비닐로 예쁘게 쳐 매어 고무줄로 묶는 것들을 멀리서 바라보다가 그만 그 꼬임 아닌 꼬임에 빠져 내 손가락들을 내주고 말았던 것이다.

손톱 위에 다소곳이 얹어진 봉숭아 잎
손톱 위에 다소곳이 얹어진 봉숭아 잎 ⓒ 염종호
엄마와 딸내미가 나란히 앉아 봉숭아 잎을 다지고, 또 손톱 위에 올려서는 비닐로 묶는 것을 보던 큰아들놈이, 슬금슬금 다가서며 예의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 또한 그 때를 생각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비닐로 한 나절은 쳐 매고 있어야 고운 물이 든다.
비닐로 한 나절은 쳐 매고 있어야 고운 물이 든다. ⓒ 염종호
그러나 아들은 나처럼 그 꼬임에 빠지지 않고 결국 내빼었다.

그런 정겨움 속에 작은 행복도 풋풋한 봉숭아꽃처럼 피어나는 것 같아 그 작고 가녀린 봉숭아에 고마운 마음마저 든다.

자연스럽고도 순결한 빛깔을 드러낸 봉숭아 물.
자연스럽고도 순결한 빛깔을 드러낸 봉숭아 물. ⓒ 염종호
다음날, 아내와 딸내미의 어여쁜 손을 보자 문득 아내의 손을 매만져 보고 싶은 충동이 인 것은 왜 일까.

덧붙이는 글 | 화장품이 적었던 옛날에는 봉숭아 물들이기가 소녀나 여인들의 소박한 미용법이었을 것이다. 봉선화로 손톱을 물들이는 것은 손톱을 아름답게 하려는 여인의 마음과 붉은색이 벽사(壁邪)의 뜻이 있으므로 악귀로부터 몸을 보호하려는 민간신앙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한국민족대백과사전> 참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브리태니커회사 콘텐츠개발본부 멀티미디어 팀장으로 근무했으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스마트스튜디오 사진, 동영상 촬영/편집 PD로 근무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