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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농사를 돕고 있는 서울대농활대(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효임 농활대장)
밭농사를 돕고 있는 서울대농활대(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효임 농활대장) ⓒ 정종인
"삼천리 방방곡곡 농민의 깃발이여 손가락 깨물며 맹세하면서 진리를 외치던 형제들 있다."

고양이 손도 빌린다는 바쁜 농번기. 쌀수입개방 등 농촌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현실속에서 농촌을 찾은 젊은 대학생들은 골깊은 농민들의 주름살을 어루만지며 아픔을 함께 했다. 농촌들녘은 고추, 담배 등 밭작물 관리, 논농사 피뽑기 등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농번기인 요즘 정읍과 부안지역은 서울대에서 찾아온 농민학생연대활동(이하 농활) 학생들로 모처럼 젊은 웃음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 농활대 김효임 대장(20, 여, 2년)은 "위기에 몰린 농촌에서 농민들과 아픔을 같이 하고 나니 그들의 노고가 얼마나 고귀한지를 느꼈다"며 "소중한 인연으로 간직하고 농촌이 잘살 수 있는 날까지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손자손녀같은 농활대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아쉬워하는 정읍시태인면매계리 노인들
손자손녀같은 농활대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아쉬워하는 정읍시태인면매계리 노인들 ⓒ 정종인
서울대 농활대 정읍·부안 등서 9박10일 봉사활동

"그동안 고생 많이 헌겨. 너무 잘해주지 못혀서 미안허구먼."

70세를 넘긴 김순덕 할머니(89·정읍시태인면매계리)는 손주나 다름없는 김효임양의 가녀린 손을 연신 만지며 헤어지기 섭섭해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학생들의 고운 얼굴이 구릿빛으로 물든 것과 고왔던 손마디가 어느새 괭이가 배긴 것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9박 10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마을회관을 떠나던 지난 8일 오전 10시께 서울대농활대 김효임양도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김옹과 부둥켜 안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고 있었다.

"내년에 할머니 꼭 다시 올테니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세요."

서울대 농활대는 지난달 29일 정읍과 부안에 도착, 면단위로 흩어져 10일간 혼신의 정열을 불태웠다. 서울대 사범대생 200여명은 정읍시 태인면과 북면, 칠보면에서 농활을 펼쳤으며 사회대는 신태인과 감곡면, 공대·자연대는 그밖의 면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농활대원들이 마을아이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농활대원들이 마을아이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정종인
올해로 두 번째 농활대에 참여한다는 김효임양(20). 경기도 양평군이 고향인 김양은 고향에서 양일중·고를 졸업하고 지난해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에 입학한 재원이다.

"선생님이 꼭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어린시절부터 짝사랑(?) 했던 별이 좋아 천문학과 지질학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졸업 후 임용고사를 준비하는 동료들은 시원한 에어콘이 가동되는 학교도서관에서 자신을 위해 사는 동안, 그녀는 검게 그을린 얼굴로 아픔을 느끼는 이들과 함께하며 '농민가'를 불렀다. 밭매기, 잎담배 따고 꿰기, 복분자 수확, 비닐하우스 치우기, 고추밭 관리, 농촌어린이 돌보기….

작업에 온 정성을 쏟고 있는 농활대 작업광경
작업에 온 정성을 쏟고 있는 농활대 작업광경 ⓒ 정종인
9박10일간의 강행군 '보람'

2000년대 학번인 대학생들의 농활 풍속도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이번 정읍·부안지역 농활에 참여한 서울대 학생들은 여타 대학에서 부여하는 학점(1학점) 가산점도 없었다.

더욱이 이들은 예전처럼 학생당국에서 총학생회를 통해 지원하는 농활자금도 없이 5만원씩 자비를 갹출해 농촌봉사활동이라는 거사(?)를 치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만큼 농촌에서 생활하는 농민들과의 공감대 형성과 현실을 체험하기 위한 의지가 대단했다.

"이번 농활을 통해 농촌현실이 너무 어렵다는 걸 실감했어요. 개발논리에 묻혀 고령화되고 있는 농촌에 희망이 없어 보이지만 농민들은 고통을 내색하지 않고 밝게 살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많이 울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받은 정(情)이 새로운 활력소가 될 거예요."

곁가지로 정부, 여당과 서울대간에 핫이슈로 부상한 본고사 부활논쟁에 대해 김양은 "본고사 부활을 반대하지만 학생선발에 대한 것은 대학에 자율권을 줘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농활대가 9박10일동안 사용했던 마을회관전경
농활대가 9박10일동안 사용했던 마을회관전경 ⓒ 정종인
대입전형 대학자율권 보장 시급

이어 김양은 "2008학년도 대입에서는 내신 반영비율을 높게 반영한다고 하지만 성적조작 등 내신에 대한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현실에서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라며 "대학 입장에서 보면 내신과 수능은 변별력을 갖는데 한계를 갖기 때문에 새로운 전형제도를 요구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김양이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대학진학시 전공에 대한 심층면접을 강화하는 대안을 만드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한편 농촌봉사활동을 마감하는 지난 7일 오후 6시 30분부터 태인면매계리 상산마을회관 광장에서 주민위안잔치가 흥겹게 펼쳐졌다. 동네 이장을 맡고 있는 김영상씨는 자비를 털어 고기류를 협찬하고 김영덕씨는 푸짐한 떡을 직접 해와 학생들은 물론 주민들과 정겨운 시간을 가졌다.

농활을 마친 학생들과 주민들은 어울려 흥겨운 춤판을 벌이며 석별의 아쉬움을 나눴다. 행사가 막바지에 이르자 서울대 농활팀과 농민들은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농활대 뒷바라지에 남다른 애정을 쏟은 김영상 이장은 "10여일 동안 학생들이 농민들과 함께 하며 고령화로 인한 부족한 일손을 많이 도왔다"며 "미래 한국사회의 지도자로 성장할 대학생들이 농촌의 현실을 체험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강원도 홍천출신이자 과대표로 작업 반장의 소임을 다한 방종렬군(3년)과 최고 학번으로 이번 농활 기간 동안 엄한 선임 하사처럼 '규율반장' 역할을 훌륭히 소화한 신현길군(4년), 막내로 풀독이 올라 고생했던 경기도 파주 출신인 염국현군(1년)도 이날만은 피로를 뒤로하고 시원한 막걸리잔을 농민들과 함께 기울였다.

"어머니, 아버님. 결코 잊지 않고 다시 찾아올게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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