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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잘린 목련. 하지만 다시 잎이 자라고 있습니다.
목이 잘린 목련. 하지만 다시 잎이 자라고 있습니다. ⓒ 이기원
아파트 경비실 옆 화단에 목련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새하얀 목련꽃이 꽤 많이 피어 그 그늘 아래에서 읽을 편지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던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목이 잘린 채 흉한 몰골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잘린 목 아래로 잎이 자라서 죽지는 않았구나 싶지만 목 잘린 뒤에 본 첫인상은 참담 그 자체였습니다. 가지 하나 남겨둔 곳에 새하얀 목련꽃 한 송이만 매달려 있었습니다. 물론 잎은 돋기 전이었지요.

아파트 화단에 뿌리를 내린 죄겠지요. 가지와 잎이 무성한 나무로 마구 자라다보면 비슷한 높이에 사는 주민들의 시야를 막을 수 있으니까 미리 잘라낸 것입니다. 나무 주제에 인간의 시야를 막다니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기가 막힐 일입니다. 필요하다고 화단에 심어놓을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곧고 바르게 자라 새하얀 꽃향기를 자랑한다고 목을 날립니까. 화단 바닥에 나뒹굴던 분신들을 내려다보던 목련나무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살다보면 참 많은 잣대와 기준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잣대와 기준도 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일 텐데 때로는 그 때문에 다른 생명체의 건강한 삶과 생존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목 잘린 목련나무 가지에는 다시 새 잎이 자라고 있습니다. 강요된 고통을 딛고 일어선 생명의 힘입니다. 희망이란 저런 모습으로 우리 곁으로 다가옵니다. 비온 뒤의 찬란한 무지개 고운 빛은 아니어도 목련나무에 돋아난 잎을 보며 희망을 간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http://www.giweon.com)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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