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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곰탕은 여름철 몸의 허한 기를 보태주는 데 아주 좋다
ⓒ 이종찬
"임 주사가 돈도 안 받고 자기 집에서 기르던 닭을 두 마리나 주었다. 군대 간 아들 녀석 백일 휴가로 집에 오거든 닭곰탕이나 끓여주겠노라, 토종닭 한 마리 구해 주십사 아침에 돈을 주었더니, 저녁 퇴근길 내가 준 돈과 함께 임 주사 자기 집에서 봄부터 기르던 토종닭을 두 마리나 잡아 내게 준 것이다.

우리 학교 조무원으로 일하는 임 주사. 내 봉급의 반도 안 되는 수입으로 여섯 명이나 되는 아들들 틈실하게 길러서 대학 보내고 장가 들여서 시아버지도 되고 할아버지도 된 자존심 높은 가장. 그러나 이적지 집 한 칸 마련이 없어 학교 관사를 빌어서 사는 초로의 사내.

임 주사는 나보다 나이가 두어 살 위여서 공석에서는 내가 윗사람 노릇을 하지만, 사석에서 나는 꼬박꼬박 그를 형님이라 부른다. 그러한 임 주사가 준 토종닭을 집에 돌아와 마늘과 대추를 넣고 끓였다. 닭이 익으면서 솥뚜껑 사이로 김과 함께 빠져 나오는 구수한 닭고기 내음새, 그 속에는 시장통 닭집에서 사다가 끓이는 양계닭에서는 맡을 수 없는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었다. 그것은 희미한 닭똥구린내다.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고 아늑하게 감싸 안아주는 내음새다. 그것은 또 내 어린 날 객지로 떠돌다가 외갓집에 모처럼 들르면 외할머니 손 때 먹여 기르던 닭을 잡아 닭곰탕을 끓여주셨을 때, 내 코가 즐겨 맡던 내음새다. 우리 학교 임 주사가 준 토종닭을 끓이는 냄새 속에는 임 주사의 마음의 내음과 어린 날의 외할머니의 마음의 내음이 한 데 어울려 오두막집을 짓고 이웃하여 살고 있었다. 휴가 와서 이 고깃국을 먹는 아들 녀석, 이 고깃국 속에서 내 마음의 내음도 조금 맡아주었으면 좋겠다." --나태주 '닭곰탕' 모두


초등학교 다닐 때 나는 심한 빈혈에 시달렸다. 땅따먹기를 할 때나 장수풍뎅이를 잡아 노느라 땅바닥에 한동안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나면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노오란 별들이 반짝거리곤 했다. 매주 월요일마다 학교 운동장에서 조회를 하는 날이 가장 싫었다. 교장 선생님의 긴 연설을 들으며 오래 서 있다 보면 나도 몰래 쿵, 하고 쓰러지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내 어머니께서는 그런 소식이 서너 번 들릴 즈음이면 집에서 애지중지 기르던 닭을 잡아 닭곰탕을 만들거나 백숙을 끓여주곤 하셨다. 하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육류든 생선이든 멀찌감치서 쳐다보기만 해도 이상하게 비릿하고 속이 메스꺼워지는 게 아예 거들떠보기조차도 싫었다.

'니는 커서 부처새끼가 될라꼬 그라나'

오죽했으면 어머니께서 나더러 '니는 커서 부처 새끼가 될라꼬 그라나? 와 고기로 통 안 묵노? 다른 아들은(아이들은) 고기만 보모 눈을 뒤집어 뜨고 한 점이라도 더 묵을라꼬 환장을 하는데' 라는 말씀까지 내뱉으셨겠는가. 오죽했으면 마을 사람들이 멀찌감치서라도 나만 보면 '은진미륵! 은진미륵!' 하며 놀려댔겠는가.

"이렇게 맛있는 닭곰탕을 못 먹는 아가(아이가) 오데 있노. 그라이 맨날 밥도 못 얻어묵고 핵교에 댕기는 아들처럼(아이들처럼) 자빠지기나 하지. 이거는 고기가 아이라 약이다, 약!"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리는 거로 우짜라꼬예?"
"그라모 국물에 밥이라도 말아 묵어라. 그래야 니 몸에 왕거머리처럼 들러붙은 그 지독한 빈혈귀신이 떨어져 나갈 거 아이가."


▲ 둘이 먹다 셋이 죽으면 한 그릇 더 준다는 닭곰탕전문점 호반집
ⓒ 이종찬
근데, 한 가지 참으로 신기한 것은 그렇게라도 닭곰탕 국물에 밥을 말아 억지로 몇 숟가락 떠먹고 나면 한동안은 아무리 오래 쪼그리고 앉아있다 일어서도, 한 자리에 아무리 오래 서 있어도 현기증이 나는 일이 없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때 나는 악성 빈혈이 아니라 고기를 통 먹지 않아 영양실조에 걸려 있었던 것 같았다.

그즈음부터 나는 어머니께서 가끔 끓여주시는 닭곰탕과 닭백숙을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간혹 생선이 상 위에 올라오더라도 한두 점은 억지로라도 반드시 먹었다. 맛이 있어서 먹었던 게 아니었다. 그저 약으로 생각하고 먹었다. 사실, 내가 육류와 생선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된 것은 스물하고도 세 해가 조금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때부터 술을 많이 마신 뒷날 아침이면 어릴 적 어머니께서 끓여주던 그 닭곰탕이 몹시 먹고 싶었다. 닭고기를 잘게 찢어넣은 그 맛난 닭곰탕 국물에 밥을 말아 한 그릇 후루룩 마시면 쓰린 속이 금세 확 풀릴 것만 같았다. 어린 날 내내 나를 괴롭혔던 그 악성 빈혈이 닭곰탕 국물 몇 숟가락에 스르르 사라지는 것처럼 그렇게.

닭고기는 다른 육류에 비해 칼로리가 매우 낮은 음식이다. 그런 까닭에 비만에 시달리는 사람이나 회복기 환자와 노인은 물론 운동량이 부족하기 쉬운 샐러리맨들에게 아주 좋은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이다. 닭고기는 쇠고기나 돼지고기는 물론 흰 살 생선보다 훨씬 더 낮은 칼로리를 지니고 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따르면 닭고기는 "허한 것을 보하는 데 매우 좋아서 음식으로 병을 치료하는 처방에 많이 사용된다"고 적혀 있다. 또한 닭고기에는 사람 몸에 필요한 단백질과 필수 아미노산이 많이 들어있어 여름철 몸의 기를 보충, 각종 면역기능을 튼튼하게 만들어준다고 되어 있다.

▲ 닭뼈를 넣고 4~5시간 이상 끓여 닭곰탕의 다싯물을 낸다
ⓒ 이종찬
조금만 움직여도 이마와 목덜미에 땀이 삐질삐질 나는 오뉴월, 닭고기는 인삼(삼계탕)과 만나면 음식궁합이 아주 잘 맞아 피로회복은 물론 약이 되는 음식으로 탈바꿈한다. 게다가 껍질을 벗겨낸 닭의 살코기(닭곰탕)는 칼로리가 다른 육류나 생선에 비해 엄청나게 낮은 저 칼로리 식품이어서 사람 몸에 아주 이롭다.

'닭곰탕과 삼계탕이 홰를 치며 싸우다'

그렇다면 삼계탕과 닭곰탕이 홰를 치며 싸우면 과연 누가 이기게 될까. 둘 다 닭을 재료로 하여 '탕'으로 만든다는 점에서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삼계탕과 닭곰탕에 들어있는 영양가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삼계탕과 닭곰탕은 만드는 방법과 그 탕 속에 들어가는 재료가 조금 다르다.

삼계탕은 어린 닭의 내장을 빼고 그 속에 인삼과, 대추, 밤, 찹쌀 등을 넣어 푹 끓여내면 된다. 하지만 닭곰탕은 어린 닭이든 어미 닭이든 가리지 않고 삼계탕처럼 푹 끓여낸다. 그리고 끓여낸 닭의 살코기를 잘게 뜯어내 갖은 양념을 한 다음 오래 고운 닭국물에 다시 한번 끓여낸다. 삼계탕과 다른 점은 인삼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자, 이쯤되면 대략 승부는 닭곰탕 쪽으로 더 많이 기우는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닭곰탕에는 닭과 찰떡궁합이라는 인삼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점을 꼼꼼히 따지다 보면 둘 다 무승부임에 틀림없다. 근데, 만약 닭곰탕이 삼계탕을 이기기 위해 인삼을 넣는다면 어찌될까. 과연 닭곰탕 본래의 맛이 그대로 살아날 수 있을까.

"닭곰탕이나 삼계탕이나 사실 영양가에서 보면 그게 그거지요. 깔끔한 맛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은 인삼이 들어간 삼계탕을 많이 찾고, 구수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로 닭곰탕을 시키지요. 어찌보면 아우 형님 사이라고 봐야지요. 닭곰탕이 어미닭을 주로 쓰니까 형님 아니겠어요?"

▲ 이 집 닭곰탕의 밑반찬은 깍두기, 부추나물, 마늘장아찌, 매운 고추, 된장, 소금이다
ⓒ 이종찬
지난 6월 11일(토) 오후 1시. 홍일선, 이승철 시인과 함께 찾은 닭곰탕 전문점 호반집(중구 인현동 2가 135-13). 풍전호텔 건너편 기업은행 왼쪽에 마치 포장마차처럼 허름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 집은 이 주변에서 일하는 샐러리맨들이 닭곰탕, 하면 '아, 그 집!'이라고 할 정도로 이름 높은 집이다.

그렇다고 이 집 역사가 오래된 것도, 이 집 인테리어가 깔끔하게 잘 된 것도, 널찍하고 시원한 실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집 역사라고 해봐야 기껏 만 2년. 게다가 식당 안으로 들어서면 시골의 목로주점처럼 낡고 촌스러운 데다 5평 남짓한 비좁은 실내에는 손님 10여 명만 찾아와도 앉을자리조차도 없다.

근데도 닭곰탕(4천원)을 먹으려는 손님들이 꾸역꾸역 이어지고, 자리 또한 끝없이 물갈이 된다. 때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 때문에 닭곰탕을 천천히 즐기지 못하고 얼렁뚱땅 먹어치워야 할 때도 많다. 그런 까닭에 이 집에서 닭곰탕의 제 맛을 느끼려면 아예 식사시간을 피해서 가는 것이 좋다.

"어이~ 이형! 이 집 바로 옆에 25년 전통의 닭곰탕 전문집이 있었거든. 그런데 이 집이 문을 열고 난 뒤 한 달 만에 문을 닫아버렸다니까. 그 정도면 이 집 닭곰탕이 얼마나 맛이 있는지 알만 하지? 일단 한번 먹어보라니까. 먹고 나면 서울 올 때마다 이 집으로 가자고 할 걸."

'둘이 먹다 셋이 죽으면 한 그릇 더 준다'

겉으로 보기에 비좁고 허름하게 보인다고 이 집 닭곰탕의 맛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투로 말하는 이승철(47)시인. 그래서일까. 닭뼈가 그득히 담긴 뽀오얀 국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는 주방 옆에는 '둘이 먹다가 셋이 죽으면 한 그릇 더 줌'이라는 아주 재미난 글씨가 붙어 있다. 그 아래엔 '엄마가 만들어준 그 손맛'이라는 글씨도 덧붙어 있다.

▲ 3시간 이상 다싯물에 끓여낸 닭
ⓒ 이종찬
대체 이 집 닭곰탕이 얼마나 맛있기에 찾아오는 손님이나 이 집을 지키는 주인이나 저리도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일까. 잠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식탁 위에 깍두기와 부추무침, 마늘장아찌, 매운 고추, 된장, 소금과 함께 닭곰탕이 놓인다. 닭곰탕이 담긴 커다란 스테인리스 국그릇 안에는 잘게 찢은 살코기가 푸짐하게 담겨 있다.

어디 한 번 맛 좀 볼까. 과연 어릴 때 내 어머니께서 만들어준 그 손맛이 날까. 먼저 소금으로 적당히 간을 맞춘 뒤 닭곰탕 국물 한 수저를 떠서 입에 넣자 국물이 칼칼한 게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그때 홍일선(55) 시인이 부추무침을 조금 넣으라고 귀띔한다. 그렇게 먹으면 훨씬 더 맛있다는 투다.

부추무침을 넣고 닭곰탕 국물을 한수저 입에 떠넣자 부추의 향긋한 맛과 함께 담백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입안에 그득하다. 닭곰탕에 들어있는 잘게 찢은 살코기를 소금에 찍어먹는 맛도 끝내준다. 잘게 찢은 살코기가 이와 이 사이에 부드럽게 쫄깃거리면서 깊숙한 감칠맛이 혀끝을 마구 농락한다.

그래, 바로 이 맛! 어릴 때 내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시던 그 닭곰탕도 바로 이런 맛이었어. 그래. 그때 내 어머니께서도 닭곰탕에 든 살코기를 건져내 소금에 찍어 내 입에 넣어주시곤 했지. 그리고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인상을 찌푸리면 매운 고추를 된장에 푸욱 찍어 한 입 베어먹게 했지.

갑자기 소주 생각이 간절하다. 소주 한 병 시켜놓고 소주를 홀짝거리며, 닭곰탕에 푸짐하게 들어있는 살코기를 건져내 소금에 찍어먹는 맛! 고슬고슬 하게 지은 밥을 닭곰탕에 말아 살코기와 함께 떠먹는 맛! 사이사이 곁들여먹는 매운 고추 맛! 그리고 마지막 남은 소주 한 잔 입에 털어넣고 남은 닭곰탕 국물을 후루룩 비워내는 이 맛! 이 맛을 어디에 비기랴.

▲ 이 집의 도 하나의 명물 닭백숙
ⓒ 이종찬
호반집 주인 박지희(54)씨는 "닭곰탕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싯물이 가장 중요하다"고 귀띔한다. 박씨의 다싯물 내는 비결은 닭 살코기를 발라낸 닭뼈를 4~5시간 이상 중간불에서 우려내는 것. 그리고 그 다싯물에 다시 닭을 3시간 이상 삶아 살코기를 뜯어내고 양념을 한 뒤 다싯물을 부어 다시 한번 푹 끓여내야 한다는 것.

"닭곰탕을 제대로 만들려면 무엇보다도 좋은 닭을 사용해야 해요. 신선한 닭은 살이 미끌거리지 않고 금방 목욕을 한 것처럼 뽀송뽀송하지요. 하여튼 음식은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가장 중요해요. 닭을 고를 때도 정성, 닭을 삶을 때도 정성, 살코기를 뜯어낼 때도 정성, 손님 상에 낼 때도 정성을 다해야만 해요. 그래야 그 정성이 손님의 입맛이 되거든요."

여름철 별미, 닭곰탕 이렇게 만드세요
싱싱한 닭 3시간 이상 끓여야 제맛

▲ 부추무침을 넣은 닭곰탕
ⓒ이종찬

재료/닭 1마리, 감자, 파, 소금, 참기름, 후추, 마늘, 대추, 매운 고추, 양파, 깍두기, 부추무침.

1. 싱싱한 닭의 내장을 뺀 뒤 깨끗이 손질한다.

2. 커다란 솥에 닭을 넣고 찬물을 닭이 푸욱 잠기도록 부은 뒤 대추와 마늘을 넣고 센 불에서 팔팔 끓인다.

3. 솥에서 김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면 중간불로 낮춰 3시간 가량 고다가 닭을 건져낸 뒤 살코기를 뜯어내고 남은 닭뼈는 다시 솥에 넣어 30분 가량 더 끓인다.

4. 뜯어낸 닭의 살코기에 파, 마늘 다진 것, 참기름, 소금, 후추가루를 넣어 잘 버무린다. 이때, 닭의 살코기가 물러지거나 부서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5. 잘 버무린 닭의 살코기를 냄비에 넣고 닭국물을 부은 뒤 감자와 굵직하게 송송 썬 대파를 넣고 센불에서 팔팔 끓인다.

6. 닭곰탕이 팔팔 끓으면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뒤 깍두기, 부추무침, 매운 고추, 양파 썬 것, 된장을 상에 올려 밥과 함께 차려낸다. 이때 닭곰탕에 든 살코기를 찍어먹을 소금을 같이 내는 것도 조리의 지혜.

※맛 더하기/닭곰탕에 말아먹을 밥은 고슬고슬 하게 지어야 밥알이 퍼지지 않으며, 닭곰탕에 부추무침을 넣어먹는 것도 별미 중의 별미. /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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