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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8개월여의 도피생활을 끝낸 대우 김우중 전회장이 14일 새벽 5시 57분 인천공항 A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5년 8개월여의 도피생활을 끝낸 대우 김우중 전회장이 14일 새벽 5시 57분 인천공항 A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대우가 자살이냐 타살이냐란 말이 있는데, 이는 말도 안되는 소리지요. 어떤 기업인이 평생 일궈놓은 기업을 자살시킵니까. 적어도 다른 곳(재벌)에 해준 정도만, 아니 중간에서 비틀지만 않았더라도 이렇게 서운해 하지는 않을 거란 말입니다."

지난 13일 저녁 서울 중구 한 호텔서 만난 전 대우그룹 임원의 말이다. 그의 시계는 2005년 6월이 아니라, 여전히 98년 7월에 멈춰있었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당시 금융감독위원회에서 대기업 CP(기업어음) 발행한도를 제한했는데, 모든 기업 대상이라고 하지만, 대우를 겨냥한 것이라는 것은 이미 시장에 알려진 것이었죠. 이어서 회사채 발행제한까지… '저쪽(경제관료)에서 우릴 죽이려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들 사이에서 '대우 해체 음모론', '대우 5적' 이라는 말이 공식화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14일) 공항에는 나가봐야 하지 않겠나' 라는 말이 이어졌다.

대우와 IMF가 남긴 김우중-이헌재의 악연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 오마이뉴스 권우성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 대한 검찰 조사가 본격화되면서, 대우 해체 당시 김 전 회장과 당시 경제관료 사이의 관계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김 전 회장이 명예회복 차원에서 대우 해체가 당시 필연적이었는가를 물고 늘어질 경우,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설명에 나설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DJ 정부 당시 대우사태 처리에 관여한 정부 고위관료는 강봉균 재경부 장관, 이헌재 금감위원장,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 그리고 채권단의 이근영 산업은행 총재였다.

99년 대우그룹이 해체되던 때, 이들과 김 전 회장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다리가 생긴다. 특히 대우 몰락 과정에서 '김우중-이헌재'의 악연은 지금도 재계에서 회자될 정도다. 고등학교 선후배이자 직장 동료였던 이들은 대우사태를 겪으면서 최악의 관계가 된다.

이헌재 금감위원장은 한때 대우 비서실에 근무하면서, 김우중 회장을 보좌하기도 했다. 82년이다. 재무부에서 고속승진을 하다가 '낙마'한 이헌재를 거둬준 사람은 김 전 회장이었다. 또 경기고 52회였던 김 전 회장은 이헌재의 고교 6년 선배였다.

이들 관계는 정확히 16년 후 1998년 역전된다. 한 사람은 외환위기 이후 '문어발식 경영'이라며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된 재벌의 방패막 전경련 회장이었고, 재벌 총수였다.

또 한사람은 정권이 바뀌면서, 금융감독위원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는 고교 선배이자, 한때 '상관'이었던 김 전회장에게서 '대우'라는 기업과 재산을 떼어 놓았다. '재벌의 저승사자' '구조조정의 전도사' 라는 말이 붙었다.

그리고 다시 7년여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김 전회장은 해외를 떠돌았고, 이 위원장은 참여정부의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으로 재기했다. 하지만 올해 초 부인의 위장전입 등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이 전 장관은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그리고, 김 전 회장이 돌아왔다.

"당신 뭐하러, 그 자리에 앉아 있나", 김우중과 강봉균의 갈등

강봉균 열린우리당 의원
강봉균 열린우리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강봉균 열린우리당 의원도 대우맨들이 꼽는 '5적' 가운데 한 명에 들어간다. 강 의원은 지난 98년 이후 김 전 회장의 수차례에 걸친 무역금융 지원요구를 묵살했다는 비판을 대우쪽 인사들로부터 받고 있다.

'세계 경영'이라는 이름으로, 수출로 먹고 살아온 대우 입장에서, 강 전 장관의 입장은 사실상 대우의 사망선고나 다름없었다. 김 전 회장과의 갈등은 당연했다. 김 전 회장의 한 측근이 전하는 이야기.

"98년인가, 김 전 회장이 청와대를 방문해 '수출지원 금융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는데, 당시 경제수석이던 강봉균씨가 '세상이 바뀌었는데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겠느냐'며 다른 소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김 전 회장이 '강 수석, 당신 뭐하러 그 자리에 앉아 있나'라며 호통을 쳤다고 합니다."

이후 이들의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강 의원은 지난 2001년 <한국경제신문>에 "당시 수출확대가 어려운데도, 김 회장이 비과학적으로 수출을 늘려잡은 흑자론을 들고와 설명하기에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김 회장이 무역금융을 받으려고 했지만, IMF와의 합의 등으로 대기업에 무역금융을 풀어줄 수 없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세계경영' 사망 신고서 접수받은 이기호 전 수석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 오마이뉴스 이종호
지난 99년 강봉균 의원의 뒤를 이어 청와대 경제수석에 오른 이기호 수석도 대우에 대해선 강경했다. 그는 당시 12개 대우그룹 계열사로부터 워크아웃 신청서를 받아낸 주인공이었다.

또 다른 대우그룹 전직 임원은 "이 수석은 대우의 사망신고서를 접수받은 사람"이라며 "그는 '워크아웃이라도 하지 않으면, 너희들(대우그룹) 다 죽는다. 만약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험한 꼴을 볼 것'이라고 압박해 왔다"고 회고했다.

99년 7월 대우그룹은 워크아웃 신청서를 정부에 제출했고, 그 신청서에는 대우그룹 김우중의 '세계경영 30년' 종말이 담겨있었다.

정부 고위관료와 함께 채권단쪽에선 이근영 당시 산업은행 총재가 대우 해체에 관여했다. 특히 대우쪽에선 "대우 해체가 진행되던 지난 99년 여름 정부 고위관료와 채권단쪽으로부터 김 전 회장의 외유를 권유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출국 권유 의혹의 이근영 전 산업은행 총재와 재벌개혁의 전윤철 공정위원장

지난 2003년 미 경제주간지 <포천>지와의 인터뷰에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출국을 권유받았다'고 밝힌 김 전 회장도 14일 검찰 조사에서 이같은 입장을 뒤집었다. 채권단쪽으로부터 출국을 권유 받았다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의 보다 정확한 진술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의 출국을 권유한 장본인'으로 이 전 총재가 꼽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이 전 총재는 "그런 사실이 없다"며 전면 부인하고 있다.

재벌개혁의 또 다른 선봉장은 공정거래위원회. 당시 위원장은 전윤철 현 감사원장이다. 98년 7월31일. 공정위는 5대그룹 부당내부거래와 100억원의 과징금 부과를 발표했다.

이날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조찬간담회에 참석한 김우중 회장은 "요즘처럼 어려운 때 100억원이 어디 푼돈인가? 국내의 취약한 자본시장에서 선진국 수준의 부채비율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된다"며 정부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근영 전 산업은행 총재(왼쪽)과 전윤철 전 공정거래위원장(현 감사원장)
이근영 전 산업은행 총재(왼쪽)과 전윤철 전 공정거래위원장(현 감사원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김태동 정책기획수석과 DJ 정권 실세도 거론

해당 부처인 공정위는 발칵 뒤집혔고, 재벌총수가 공개적으로 정부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며 불쾌한 반응을 숨기지 않았다. 김 전 회장은 곧바로 전 위원장에게 사과 전화를 걸어야 했다.

이들 이외에 당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지낸 김태동 현 금통위원과 DJ 정권의 핵심 실세였던 A씨도 김 전 회장과는 몹시 불편한 관계로 알려졌다. 특히 A씨의 경우 지난 2002년 DJ의 선처(?) 지시에도 불구하고 김 전 회장의 귀국을 막은 것으로 알려져, 김 전 회장쪽에서 적지 않은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자신을 '실패한 기업인'으로 규정하고, 5년 8개월의 유랑 생활을 마친 김 전 회장의 입이 누굴 향하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별로 할 말 없다"...구체적 언급 꺼려

99년 대우그룹 해체를 주도했던 당시 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이들 대부분은 구체적으로 언급을 꺼리고 있다. 대신 김 전 회장이 국민경제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부분에 대해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 전 회장에 대한 신뢰를 보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쪽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최경환 비서관은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김 전 대통령은 현재 6.15 선언 5주년행사 등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면서 “김우중씨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으셨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은 외부와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거나, 해외에 나가 있어 반응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 부총리는 지난 3월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퇴한 이후, 일부 지인들과 운동하는 것을 빼고 외부활동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현대 대북송금 특검으로 형사처벌을 받았던 이 전 수석은 지난해 사면복권을 받은 후, 영국으로 건너가 연구 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수석도 언론 뿐 아니라 가까운 친척들과도 연락을 꺼리고 있다.

당시 재경부 장관을 지냈던 강봉균 의원은 그나마 언론 등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히는 편이다. 강 의원은 “김 전 회장이 개발연대 성장을 주도하고 해외 시장을 개척한 공 등을 누가 부정하나”라고 반문하면서도, “하지만 대우가 워크아웃에 들어간 것은 정부 요직에 있던 몇몇 사람의 의견에 따라 결정된 것이 아니라 시장에 의한 것 이었다”고 강조했다 .

한편, 이종구 한나라당 의원은 “난 대우사태 끝물에 있으면서 뒤처리만 했을 뿐”이라며 “하지만 대우사태로 28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이 들어갔고, 국민경제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부분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하지 않나”라며 원론적인 답을 내놓았다. 이 의원은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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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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