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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친구가 저보다 한 살 어려요."

(90년대 초반의 반응) "너무 어리지 않나? 난 나보다 몇 달 어린 것도 용서가 안 되던데. 어떻게 애랑 놀 수가 있어?"
(2000년대의 반응) "와! 너 능력 있다. 너무 좋겠네. 그냥 꽉 잡어!"


드라마에서도, 영화에서도 그리고 현실에서도 연상연하 커플이 넘쳐난다. 90년대 초반 필자가 "난 연하가 좋아요!"라고 주장했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던 것을 떠올려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 MBC드라마 <로망스>의 한 장면
ⓒ MBC
요즘 방영되는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도 남자 주인공 현진헌(현빈)이 여자 주인공 김삼순(김선아)보다 어리고, KBS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도 연하남(지현우)과의 연애가 등장한다. MBC 드라마 <사랑찬가>에서 홍수정(김민)을 따라다니는 강혁(김지훈)도 마찬가지로 연하이다. 이렇다보니 연상연하 커플이 등장하지 않는 드라마가 생뚱맞아 보일 지경이다.

이러한 현상은 급기야 <로망스> <러브홀릭> <건빵선생과 별사탕> <녹색의자>에서처럼 연하 남을 남자 고등학생으로까지 끌어내렸다(<녹색의자>의 남자 주인공은 사실 대학생으로 보이지만 만 열 아홉이므로 같은 범주로 묶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지난 2002년 사제간의 사랑을 소재로 한 드라마 <로망스>가 방송되었을 때, 교사의 권위를 훼손하며 남학생이 여교사를 연애의 대상으로 쉽게 볼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높았다. 그때 보다는 덜하지만 최근 방영된 <러브홀릭>과 <건빵선생과 별사탕>에 대해서도 여전히 그런 시각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이와 조금 다르다. 현직에 있는 여성 교사에게 남학생들은 다루기 쉬운 존재들이 아닐 뿐더러, 그런 내용의 영상물 몇 편을 보았다고 해서 현실과 드라마를 혼동할 만큼 어리석지 않기 때문이다.

왜 하필, 남학생과 여교사일까?

여교사와 남자 고등학생 커플은 교사의 권위 하락이라는 차원보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등장한 구도가 아닐까 싶다.

▲ <러브홀릭>에서의 강타
ⓒ KBS
첫째, 둘은 교사와 학생이기에 학교라는 공간에서 매일 만날 수 있다. <로망스> <러브홀릭> <건빵선생과 별사탕> 이 세 드라마의 사제 커플은 담임교사와 그 반의 학생 사이에서 이뤄졌다. 학교가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남자 고등학생이 20대 여성을 자주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는 게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두 사람은 사랑을 이루기 위해 많은 난관들을 넘어서야 한다. 남학생과 사귄다면 당장 교사에게는 어린아이를 꼬드겼다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고, 아직 고등학생인 남학생은 여교사의 애인(당연 성인이다)과 경쟁을 해서 이겨야 한다(이상하게도 드라마 속 여교사는 항상 멋진 애인이 옆에 있다. 필자의 개인적 생각으로는 이런 설정이 가장 현실과 동떨어진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여초지대'라 불리는 학교에서 자율학습 감독을 하고 밤늦게 집에 돌아가는 교사에게 어떻게 그런 멋진 애인이 생길 수 있냔 말이다).

셋째, 이제는 여러 번 등장하여 그 신선함이 다소 떨어졌지만, 그래도 다른 사랑 이야기에 비해 흔하지 않은 일이고 아직은 놀라운 소재이므로 여교사와 남학생간의 사랑 이야기는 시청률 상승에도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계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위에서 열거한 이유들보다 더 현실적인 원인은 여성의 사회·경제적 위치 변화에 있지 않을까.

여성의 사회·경제적 진출이 활발하지 않던 시절, 대중매체의 시각은 당연히 남성 중심적이었다.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여성은 예쁘고 어리며 순종적이었고, 남성은 강인하고 힘이 넘쳤다. 부드럽고 예쁜 모습의 남성이 등장할라치면 '기생오라비' 같은 놈(?)으로 취급하면서 남녀 어디에서도 환영하지 않았다.

▲ <건빵선생과 별사탕> 홈페이지 화면 중 일부
ⓒ SBS
하지만 시대가 달라지자 대중매체의 시각도 다양해졌다. 이제는 대중매체가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지닌 여성들도 만족시켜줘야 하기 때문에 구분을 두지 않고 여성과 남성을 모두 벗겨(?) 아름답고 탄탄한 몸매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남성들이 비로소 전면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뿐인가. 경제적 능력과 아름다운 미모를 갖춘 연상의 여인을 매력적인 존재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제는 마침내 남자 고등학생이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여성의 상대자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남성에 대한 '롤리타 콤플렉스'?

어떤 이는 이런 현상을 '롤리타 콤플렉스'가 남성들에 적용된 현상이라고 보기도 한다(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드메 신드롬'이라고, 이를 지칭하는 용어가 따로 있었다). 즉, 과거보다 힘을 얻은 여성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어린 소년들이 등장한 것이다.

롤리타 콤플렉스는 '어린 소녀에 대한 중년남자의 성적 집착 혹은 성도착'을 가리키는 용어로 러시아 출신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쓴 소설 <롤리타>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소설 <롤리타>를 매혹적인 작품으로 기억한다. 나이 먹은 남자가 추악하게 열두서너 살의 어린 소녀에게 성적 환상을 갖고 소유한다는 것은 용서하기 힘들다. 하지만, 자신의 사랑을 정당화 하며 늘어놓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작가의 유려하고 아름다운 문장 속에서 충분히 설득력을 얻었고, 그러기에 필자는 이것을 문학 작품으로서 충분히 예술성을 지녔다고 인정할 수 있었다.

문화나 예술에 관한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즐기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 여성주의 시각에서 비판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 해서 그가 창작 활동을 접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필자는 반대한다.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다. 국어 교과서에도 과거 음란하다고 평가하다가 재평가되어 실린 글들이 한두 개가 아니지 않은가.

무늬만 고등학생이던데….

▲ <녹색의자>에서의 현(심지호)와 문희(서정)
ⓒ 미로비젼
사실 고등학생으로 설정된 연하 남들은 설정만 그러할 뿐, 상대역인 연상의 여인보다 훨씬 더 어른스럽다. <러브홀릭>의 서강욱(강타)은 온몸을 바쳐 여교사(김민선)를 보호해주며 심지어 대신 죄를 뒤집어쓰기까지 한다.

<녹색의자>의 현(심지호)도 나이는 열아홉인데, 남성다움의 상징인 차를 소유했고, 운전을 하여 문희(서정)를 편안히 모신다. 때로는 감동적인 말로, 때로는 육체로 사랑을 표현한다. 연애 경험도 거의 없을 이 어린 남자들은 선천적으로 여자를 감동시키는 방법을 터득하고 태어난 모양이다.

즉, 영화와 드라마 속 연하남의 등장은 연상연하 커플이 유행이고 참신한 소재를 찾다보니 등장한 것에 불과하다. 무늬만 고등학생이지 현실에서의 고등학생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연상연하에 대한 사회의 비판적 편견을 누그러뜨리는 계기는 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드메 신드롬'이란 연상녀-연하남이 커플을 이루는 풍조를 이르는 말로 19세기 초 파리에 살던 청년 드메가 쇼팽의 연인이자 소설가였던 조르주 상드 등 연상의 여인에게만 사랑을 고백하고 다녔다는데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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