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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원하고 담백한 골뱅이무침 드세요
ⓒ 이종찬

한낮이면 30도를 훨씬 웃도는 요즈음 골뱅이가 날로 인기를 더하고 있다. 특히 우리 나라 동해안의 맑고 푸른 바다(수심 70~130m)에서 해조류를 먹으며 살아가는 골뱅이는 사람 몸에 좋은 필수 아미노산과 불포화지방산이 듬뿍 들어 있어 개나 닭고기와 더불어 여름철 대표 보양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부드럽게 쫄깃쫄깃 씹히면서도 혀끝에 남는 담백한 맛이 그만인 골뱅이는 남성들에게는 스테미너의 대명사요, 여성들에게는 피부미용에 좋은 음식이다. 오죽했으면 <동의보감>이나 <본초강목>에서도 골뱅이의 효능에 대해 피부노화를 방지하고 여름철 남성의 정력을 보강하는 대표적 음식이라고 적어놓았겠는가.

골뱅이는 조리법도 아주 많다. 파를 듬뿍 넣고 비벼먹는 시원한 골뱅이무침에서부터 골뱅이 야채무침, 골뱅이 냉채, 골뱅이 튀김, 골뱅이 전골, 골뱅이 낚지 볶음 등이 그것들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골뱅이의 쫄깃하면서도 담백한 감칠맛을 즐기기 위해서는 골뱅이무침이 으뜸 중의 으뜸.

▲ 을지로 골뱅이 골목에 있는 20년 전통의 영락골뱅이집
ⓒ 이종찬

▲ 골뱅이는 여성에게는 피부미용에, 남성에게는 스태미너에 아주 좋다
ⓒ 이종찬

"저희들은 골뱅이무침을 할 때 참기름이나 깨소금은 일체 쓰지 않아요. 그저 자연산 골뱅이에 쥐치포와 얇게 썬 파절임을 듬뿍 얹고, 빻은 마늘과 고춧가루를 뿌리지요. 그래서 그런지 손님들이 먹을수록 감칠맛이 난다고 해요. 하지만 처음 먹어보는 사람은 그 독특한 감칠맛을 쉬이 느끼기가 힘들지요."

해가 기울고 거리가 어둑어둑해 질 무렵이면 젊은 연인들로 넘쳐나는 먹자골목이 있다. 그렇다고 그 먹자골목에 자리 잡은 식당들이 인테리어가 아주 잘 된 그런 집들도 아니다. 그저 시끌벅적한 시골장터에서나 보았음직한, 나이 든 사람들이 드나들 법한 그런 허름하고도 어수선한 모습의 식당들뿐이다. 그런데도 식당 안에는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젊은 연인들로 가득하다.

일명 을지로 골뱅이 골목. 처음 을지로 골뱅이 골목에 간 사람들은 고개를 두 번 갸우뚱거리게 된다. 첫 번째는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연인들이요, 두 번째는 저마다 원조 골뱅이라고 붙여놓은 간판 때문이다. 이 골목에서 진짜 원조 골뱅이집인 영락골뱅이집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는 말이다.

▲ 이 집 골뱅이무침은 자연산 골뱅이, 쥐치포, 파절임, 빻은 마늘, 고춧가루를 쓴다
ⓒ 이종찬

▲ 얇게 썰어놓은 파가 푸짐하게 담긴 골뱅이무침 한 접시
ⓒ 이종찬

지난 6월 9일(목) 오후 7시. 홍일선, 이승철 시인과 함께 찾아간 자연산골뱅이전문점 '영락 골뱅이'(서울 중구 저동 2가 80-1)는 을지로 골뱅이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는 집이다. 이 집에서 자연산 골뱅이만 조리한지 20여 년이 훨씬 넘었다는 주인 권희철(58)씨는 "겨울이든 여름이든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음식은 시원한 맛이 나는 골뱅이무침"이라며 일단 들어가서 한번 먹어보라고 말한다.

허름하고도 어수선한 실내에 들어서자 골뱅이무침(1만7천원)을 안주 삼아 맥주 혹은 소주를 홀짝거리고 있는 젊은 연인들로 가득하다. 과연 골뱅이무침 하면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집이 영락골뱅이집이라는 귀동냥이 그리 틀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대체 이 집 골뱅이무침이 얼마나 맛있기에 락 카페나 들락거릴 법한 세련된 연인들이 저리도 많이 앉아있단 말인가.

근데, 한 가지 재미난 것이 있다.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오이와 풋고추가 담긴 자그마한 접시 하나와 커다란 국그릇에 푸짐하게 담긴 골뱅이무침이 식탁 위에 턱 놓인다. 골뱅이무침과 함께 딸려 나오는 병맥주도 마찬가지다. 따로 병맥주를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리에 앉은 사람의 수만큼 병맥주가 나온다.

▲ 파절임 속에 사리처럼 든 쥐치포
ⓒ 이종찬

▲ 쫄깃하고 달착지근한 골뱅이를 골라먹는 맛도 그만이다
ⓒ 이종찬

"간혹 파절임을 따로 달라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저희들은 아예 골뱅이와 파절임을 무쳐서 내지요. 추가로 파절임을 더 달라고 할 때에는 그냥 주지만. 그리고 골뱅이무침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이면 계란말이를 그냥 줘요. 후식으로 계란말이를 먹고 나면 입 속에 남아있는 매운 맛과 파 냄새가 사라지거든요."

얇게 썰어놓은 파가 푸짐하게 담긴 골뱅이무침 한 접시. 맥주 한 잔 입에 털어 넣고 고춧가루가 벌겋게 묻은 골뱅이무침 한 젓가락을 입에 넣자 시원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이어 매끌매끌한 골뱅이의 쫄깃한 속살과 쥐치포가 파절임과 함께 씹히면서 담백한 맛과 함께 독특한 감칠맛이 난다.

이 맛을 대체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매콤하면서도 시원하게 씹히는 파절임의 맛은 어릴 적 어머니께서 금방 밭에서 뽑아낸 상치와 파를 섞어 무쳐주시던 생김치의 맛이라고나 해야 할까. 매끄러우면서도 쫄깃하게 씹히는 골뱅이와 쥐치포의 고소하고도 달착지근한 맛은 또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신혼여행을 떠나는 그 맛?

▲ 이집 맛의 비결은 싱싱한 재료와 매운 맛이 나는 고춧가루를 쓰지 않는 것에 있다
ⓒ 이종찬

▲ 골뱅이를 다 먹어갈 때쯤이면 계란말이가 공짜로 나온다
ⓒ 이종찬

맥주 반 잔 홀짝거린 뒤 골뱅이 속살과 쥐치포를 골라먹는 그 맛도 그만이다. 입천장이 매콤해지면 남겨둔 맥주 반잔을 몽땅 입에 털어 넣고 고춧가루가 벌겋게 묻은 파절임만 골라 사각사각 씹어 먹는 그 맛은 매콤달콤하면서도 시원한 뒷맛이 깊다. 말 그대로 먹으면 먹을수록 감칠맛이 더한다.

골뱅이무침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공짜로 나오는 계란말이의 맛도 그만이다. 기름기가 짜르르 흐르는 계란말이 한 점을 입에 넣으면 입속에 남은 매콤한 맛과 파내음이 저절로 사라진다. 손님들 중 문인들을 가장 반긴다는 권씨는 간혹 문인들이 찾아오면 덤으로 얇게 저민 소시지 안주도 내준다.

"저희 집 골뱅이무침의 맛은 무엇보다도 그날 쓸 재료는 그날에만 쓴다는 거죠. 그리고 매운 맛이 나는 고춧가루는 쓰지 않아요. 실제로 코를 톡 쏘는 매운 맛이 나는 고춧가루를 파절임과 함께 버무리면 별 맛이 없어요. 매운 고춧가루는 파가 갖고 있는 향긋하고도 시원한 맛을 죽이거든요."

▲ 기름기가 쫘르르 흐르는 계란말이를 먹으면 입속의 매운 맛과 파내음이 사라진다
ⓒ 이종찬

그날, 함께 골뱅이무침을 나눠먹은 홍일선 시인은 "이 집 골뱅이무침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신묘한 맛"이라고 극찬했다. 이승철 시인은 "이 집 골뱅이무침은 자다가도 생각난다"며 "벗들이 영락골뱅이에 앉아있다는 전화가 오면 아무리 한밤중이라도 신나게 달려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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