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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권이 당첨되어 경품을 받고 즐거워하는 아이들
행운권이 당첨되어 경품을 받고 즐거워하는 아이들 ⓒ 이양훈
87년 6.10항쟁을 기념하여 해마다 열리는 시민달리기대회가 있습니다. 그 날을 기념한다는 의미로 달리는 거리도 6.1km입니다. 시간제한도 없으니 가족들과 함께 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는 뜻인 듯도 합니다.

물론 대회와 관련하여 다채로운 행사도 많이 있습니다만 다른 그 무엇보다도 더 참가자들을 기쁘게 하는 것은 참가비가 '공짜'라는 것입니다. 한 푼도 내지 않으며, 참가비를 내는 대회보다 훨씬 더 흥겨운 한마당이 바로 이 6.10항쟁 기념 시민달리기 대회입니다.

네 식구 가족단체로 달리다

우리 가족도 참가신청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과 1학년에 다니는 아이들까지 총 4명이 '가족단체'로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신청을 해 놓고 보니 한 편으로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 대회 전 수시로 아이들에게 연습 좀 하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힘들면 걸으면 그만 아니냐?"는 배짱이었습니다.

힘차게 뛰고 있는 둘째아이
힘차게 뛰고 있는 둘째아이 ⓒ 이양훈
드디어 대회일인 12일! 대회가 열리는 상암동 월드컵공원에 조금 일찍 도착해 기념티셔츠를 받고 배번을 달고는 출발을 기다렸습니다. 둘째 녀석에게 물었습니다.

"야! 완주할 자신 있냐?"

"네! 자신있어요!!!" 녀석이 주먹을 불끈 쥐며 씩씩하게 대답합니다.

큰아이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나 녀석의 힘없는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자신 없어요. 완주 못할 것 같아요"

드디어 출발! 작은 녀석은 힘차게 앞으로 달려 나갑니다. 큰 녀석이 뒤에서 소리를 지릅니다.

"야! 이건 장기전이야! 그렇게 에너지를 소비해 버리면 완주 못해! 천천히 가!"

아니나 다를까! 작은 녀석은 겨우 500m 정도를 뛰고는 힘들어 못가겠다고 합니다. 손을 잡고 걷기도 했으나 그 역시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얼굴에서는 땀이 비오듯하고 다리는 풀려서 비실비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못 본 척 조금 앞서서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걸어갔습니다. 천천히라도 따라 오겠지 하는 생각이었지요.

동생을 업고 따라오는 큰아이

동생을 업고 걷고 있는 큰녀석
동생을 업고 걷고 있는 큰녀석 ⓒ 이양훈
그리고 잠시 후, 걱정스러운 마음에 뒤를 돌아본 저는 '멈칫'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큰 녀석이 힘들어하는 동생을 등에 업고 묵묵히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소 큰녀석은 작은 놈을 거의 자신의 부하쯤으로 생각해 부려먹고는 했습니다. 심부름도 시켜먹고 말 안 듣는다며 때리기도 하고 좋은 것은 자신이 다 독차지하려고도 했습니다.

아무리 그러지 말라고 해도 순간뿐, 뒤돌아서면 어느새 동생을 윽박지르고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에 애엄마는 요즘 큰 녀석과 싸우는 것이 하루일과가 되어버렸다고 푸념하고는 했습니다. 아직 어리니까 그렇겠지 하면서도 저 습관이 계속되는 것은 아닐까 은근히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듯 힘들어하는 동생을 위해 선뜻 도움을 손길을 내밀고 있는 녀석을 보는 순간 모든 걱정이 한꺼번에 다 날아가는 듯 했습니다. 동생을 업고 간 거리를 실제로 따져보면 기껏해야 몇 십 미터. 잠깐 업어주는 '시늉'을 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3km 지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3km 지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 이양훈
그러나 내리쬐는 한낮의 뙤약볕 아래에서 천 근의 무게보다 더하면 더 했을 동생을 업으려 한 형과, 땀냄새 나는 등짝에 '착' 달라붙어 웃음짓는 동생에게는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닥쳐올 크고 작은 어려움을 도와가며 이겨낼 수 있는 진한 형제애가 자라고 있음을 저는 압니다.

"피는 못 속이나 보다! 형제가 없이 달랑 하나만 있는 아이들은 얼마나 외로울까?"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사소한 다툼의 결과로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그저 빙그레 미소만 짓고 있는 부부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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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분야는 역사분야, 여행관련, 시사분야 등입니다. 참고로 저의 홈페이지를 소개합니다. http://www.refd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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