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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층에게는 중년층에게 맞는 개그가 있다!
중년층에게는 중년층에게 맞는 개그가 있다! ⓒ 극단< 곤이랑>
그러나 솔직히 호기심은 생겼지만 '구식 개그를 구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공짜니 가서 보는 게 좋을지 아니면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하는 게 좋을지 많이 망설여졌다.

그러다 학교에서 가까운 대학로에서 하는 공연이기도 하고,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릴 수 있기도 해서 결국 호기심을 충족하는 길을 택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세 가지 이유로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게 되었다.

첫째는 어린 시절 멋모르고 보면서 웃었던 김형곤이 출연했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과 '탱자 가라사대' 등이 나름의 사회 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담고 있었다는 것을 20대인 지금 확연히 느꼈다는 점이다.

워낙 오래 전 일이고 그 프로그램에서도 길게 보여주지 않아 자세히 분석할 수는 없었지만 몇 장면만으로도 지금보다 자유롭지 않았던 시대였는데도 코미디만의 장점을 살려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 모습이 군데군데 보였다.

둘째는 엄마와 아들이 동시에 웃을 수 있는 자리였다는 점이다. 예전에 어머니와 같이 TV에서 하는 한 개그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아주 신나게 웃어젖혔지만 그를 본 어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게, 재미있니?"
"재미있잖아. 엄만 재미없어?"
"그래. 엄마는 저걸 보면 그냥 저렇게까지 해서라도 먹고살고 싶구나 해서 쓴 웃음이 나오던데."

어머니와 나 사이에 세대차이라는 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토록 간극이 넓을 줄 몰랐던 터라 사실 조금 당황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김형곤의 엔돌핀 코드'를 보던 날 '어쩌면 이 스탠딩 코미디는 어머니랑 같이 웃으며 즐길 수 있을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에 있던 관객은 90%이상이 다 중년의 아주머니들이었고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살아온 흔적이 비슷하고, 삶의 경험이 비슷한 사람이 들려주는 얘기가 역시 더욱더 마음에 와닿는 것 아닐까.

현대 대중문화의 흐름상 저절로 소외받고 있는 중년층들을 위한 코미디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공연이었다.

셋째는 프로그램을 마치면서 김형곤이 말했듯이 그가 국내에 처음으로 시도한 스탠딩 코미디라는 점이다. 스탠딩 코미디라는 것이 사실 위험부담이 굉장히 크다.

게스트도 없고, 색다른 것도 없이, 오로지 진행자 개인의 입담에 의지해 풀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코미디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말장난처럼 보이는 개그를 구사하기 위해 끝없이 공부해야 한다.

프로그램을 보는 도중 난 몇 번씩 '아, 저런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하고 생각했다. 자신이 한물갔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내게는 잊을 수 없는 공연이 되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다소 진보적인 젊은층들에게는 김형곤의 생각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측면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 그리고 성인용 개그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가족끼리 보기에는 약간 민망한 부분도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20대 이상의 아들, 딸들이라면 어머니, 아버지 손에 특히 어머니 손에 이 '김형곤의 엔돌핀 코드' 표를 쥐어드려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사실 김형곤의 <엔돌핀 코드>는 저보다는 어머니 세대가 좋아할 만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조금 거부감을 가지시는 분도 있을테니 신중히 선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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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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