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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끝내고 잠시 쉬고 있는 제시카와 이소벨, 한국문화를 배우기 위해 흠뻑 땀을 흘려 맨 얼굴이지만 화장을 한 그 어느 얼굴보다 훨씬 아름답게 보였다.
운동을 끝내고 잠시 쉬고 있는 제시카와 이소벨, 한국문화를 배우기 위해 흠뻑 땀을 흘려 맨 얼굴이지만 화장을 한 그 어느 얼굴보다 훨씬 아름답게 보였다. ⓒ 서정일
정권지르기도 어설퍼 보인다. 발차기는 더더욱 그렇다. "태퀀도"하면서 열심히 기합은 넣지만 발음까지도 엉성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열심히 땀을 뻘뻘 흘리며 연습을 하고 있는 호주에서 온 제시카(26)와 이소벨(25). 후덥지근한 한국의 초 여름밤 무더위 속에서도 수도(?)에 정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순천시가 국내 최초로 '국제 교육특구'로 지정되면서 제시카와 이소벨같은 원어민 영어교사를 각 초등학교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30명을 배치했고 9월말까지 11명을 더 배치할 예정인데 1차로 한국 땅을 밟은 셈. 그래서인지 요즘 순천시내에선 심심찮게 외국인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이렇듯 태권도 체육관에서 그들을 발견하기란 쉽지만은 않은 일.

힘찬 구령과 함께 발차기를 하고 있는 제시카, 비록 아직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할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충분히 한국을 받아들이고 있다.
힘찬 구령과 함께 발차기를 하고 있는 제시카, 비록 아직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할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충분히 한국을 받아들이고 있다. ⓒ 서정일
"한국에서 한국 태권도 배우고 싶어요."

호주에는 한국인도 많이 살고 있다. 그런 만큼 태권도도 많이 보급되어 있다. 하지만 한번도 도장을 기웃거려본 적이 없다는 제시카와 이소벨, 원어민 교사로 한국 땅을 밟은 이상 제대로 태권도를 배워봐야겠다는 굳은 마음으로 태권도장의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조례태권도 이원형 관장이 그동안 짬짬이 배워 온 동양화를 제시카와 이소벨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조례태권도 이원형 관장이 그동안 짬짬이 배워 온 동양화를 제시카와 이소벨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 서정일
그런데 그런 열정만큼 웃지 못 할 사연도 있었다고 말하는 이원형 조례태권도 관장, "수련한 지 이틀 뒤에 안보이더군요. 나오자마자 결석하니 속이 상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더니 피식 웃고 만다. 정말 무슨 재미난 사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못 일어났어요."

얼마나 태권도가 재미있던지 샌드백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지르고 자유대련 한답시고 도장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더니 3일째엔 방안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고 말하는 제시카. 파김치가 되어 샛노란 얼굴로 도장에 나오던 날, 이 관장이 더 놀라 앉아서 쉬라고 했다면서 아이들이 운동하는 것만 쳐다봤던 기억을 떠올린다.

지난 4월에 왔으니 한국생활 2개월째, 한국인들이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고 자연도 매우 아름답다고 말한다. 특히 한국 어린이들이 매우 자유스럽고 에너지가 넘친다는 말을 덧붙인다. 예전에 비해 많이 활달해졌다는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그들의 입을 통해서 확인하는 순간이다.

운동이 끝날 무렵 이 관장은 화선지를 펼쳐놓고 그들의 손에 붓을 쥐어준다. 그동안 자신이 짬짬이 배워온 동양화 그리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던 것. 외국인들이기에 한국문화에 관해 한 가지라도 더 배울 수 있게 배려를 하고 있었다.

허리를 깊숙이 숙여 관장에게 인사를 하는 제시카와 이소벨, 그들이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배우려는 자세는 매우 진지하다.
허리를 깊숙이 숙여 관장에게 인사를 하는 제시카와 이소벨, 그들이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배우려는 자세는 매우 진지하다. ⓒ 서정일
"감사합니다."

오늘의 모든 수업이 끝이 났다. 그들은 관장을 향해 깍듯하게 고개를 숙인다. 깊숙이 숙인다. 비록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태권도의 깊이를 깨달아 가는 중이었다. 계약직이기에 1년 혹은 길어야 2년 정도 한국에 머물지만 태권도만큼은 떠나는 그날까지 열심히 배워보겠다고 말하며 도복을 갈아입는다.

외국인이면서 한국문화를 배워보고자 한국 땅에 땀방울을 흘리는 그들, 힘든 운동으로 화장기가 지워져 맨얼굴이지만 화장을 곱게 한 그 어느 얼굴보다 훨씬 아름답게 보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부디 계약이 만료되어 고국으로 돌아가더라도 한국을 잊지 않기를 당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호주에서 온 제시카(Jessica)와 이소벨(Isobel)의 한국문화 사랑에 큰 박수를 보낸다. 아울러 그들에게 올바른 한국문화를 소개하고자 애쓰는 순천 조례태권도 이원형 관장에게도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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