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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임
음력 4월 그믐 오후 3시, 현충일 연휴가 조용히 끝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북제주군 조천읍의 해안도로는 벌써 여름이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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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바다는 썰물로 흰 속살을 드러냈다. 썰물로 바닷물을 잃은 백사장은 벌써 사람들로 북적댄다. 드라이브를 즐기던 관광객들도 가던 길을 멈추고 하나둘 바닷속으로 빠져 든다.

일곱물 물때를 기다려왔던 사람들이다. 달이 차고 기우는 시간에 따라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바다. 그중에서도 보름과 그믐의 썰물 때를 일곱물 물때라 한다. 썰물의 시간이 가장 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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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기다리는 일곱물 물때, 일곱물 물때는 오후 3시부터가 절정이다. 아무래도 그것은 썰물 틈에서 바다사냥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바다 한가운데 흠뻑 빠져 볼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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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양말을 벗어 던지고 시커먼 갯바위 위에 서면 삶의 허울을 벗어버린 느낌이 든다. 그리고 모래 위를 걸어 보라. 바닷물 속에 발을 담가 보면 어떨까? 어느덧 해방감에 마음까지 넓어지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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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속살 위에 듬성듬성 누워 있는 갯바위는 강태공들의 천국이다. 그리고 그 갯바위 아래에는 미처 빠져 나가지 못한 바다생물들을 줍는 사람들, 6월의 제주 바다는 온통 잔치 분위기였다.

일곱물 물때 제주바다는 파도 하나 없다. 그저 은빛 물결과 금빛 물결로 융단을 깔아 놓았을 뿐. 바다만큼 고요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백사장 너머엔 강태공이 빠져 있고, 허벅지까지 몸을 담근 강태공은 낚싯줄을 드리운다. 일상의 잡념 모두 벗어 던지고 해탈의 경지에 이른 모습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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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을 따는 아낙은 바다를 가로질러 썰물 끝에 서 있다. 그 아낙을 보니 제주 아낙들의 끊질긴 삶을 보는 것 같다. 숱한 바닷바람과 파도와 싸워왔을 사람들. 이들의 가슴이 바다만큼 넓게만 느껴진다.

그런데 해안도로 아래 갯바위에 서 있는 나는 벌써 조바심이 생긴다. 밀물이 밀려올까봐 걱정이다. 그리고 아낙을 위해 기도를 드린다. "주여! 한 시간만 더 일곱물 물때를 주게 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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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을 따는 사람, 톳을 따는 사람, 보말을 잡는 사람, 바짓가랑이를 허벅지까지 올리고 바닷물에 발을 담근 사람들은 바다가 놀이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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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말 잡았어요."

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인 아이들이 빨간 바구니에 반쯤 찬 보말을 보여준다. 바구니 속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바다생명. 생동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일곱물 썰물의 빈터를 채워주는 사람들, 세상의 이치는 빈 공간의 '허'를 누군가가 채워주기 마련이다.

일곱물의 제주 바다는 백사장 위에서 여름을 부르는 소녀들의 깔깔거림으로, 갯바위 위엔 강태공의 입질로 그리고 바다 끝에는 제주 아낙들의 삶을 채취하는 풍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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